‘실리주의자’ 이재명, 유비(劉備)를 배워라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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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주의자’ 이재명, 유비(劉備)를 배워라 [기자수첩]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5.03.05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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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이익 따라 움직이는 이재명…대권 도달하려면 ‘감동’ 줄 수 있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비(劉備)는 승자가 아니었다. 그는 조조(曹操), 손권(孫權)과 함께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의 주역이었지만, ‘주인공’과는 거리가 있었다. 당대에는 조조의 위세가 훨씬 강했고, 결국 삼국을 통일해 난세(亂世)를 평정한 건 사마염(司馬炎)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관중(羅貫中) 소설 삼국지(三國志)의 주인공은 유비다. 후대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깊숙이 들어선 영웅도 그다. 당대를 지배하지도, 삼국을 통일하지도 못했지만 ‘최후의 승자’로 남은 셈이다.

왜일까. 답은 ‘스토리’에 있다. 유비는 최선의 선택만을 내리는 군주가 아니었다. 신야 탈출 당시, 삼십육계(三十六計)로 도망쳐야 할 상황에서도 백성들이 자신을 따라오자 군사들의 속도를 늦췄다가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위기에 몰렸던 건 유명한 일화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면 절대 일으켜서는 안 됐던 전쟁을, 오로지 의형제 관우의 복수만을 위해 일으켰다가 평생을 바쳐 일군 촉한(蜀漢)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어떻게 봐도, 늘 이익이 되는 선택만을 하는 영민하고 냉철한 군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어리석음이 지금의 유비를 있게 했다. 온갖 굴욕을 겪으면서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얻은 열매를, 의형제에 대한 복수라는 지극히 ‘비이성적인’ 이유로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그 ‘낭만’이 유비를 역사의 승자로 만든 것이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명실상부(名實相符) 차기 대권 0순위다. 민주당 내에서는 물론이고, 보수 진영에서 누가 출마해도 이 대표와 맞서기는 쉽지 않다는 게 대다수 여론조사 결과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이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사법리스크’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대표의 한걸음 한걸음에 ‘감동’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이 대표는 2022년 대선에서 패한 직후 곧바로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연고도 없는 데다 야권의 ‘텃밭’으로 꼽히는 지역이라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금배지’라는 실익을 위해 모든 걸 감수했다.

국회 입성 직후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대표로 당선됐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24년 8월엔 다시 당대표로 출마해 연임까지 했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당대표가 연임을 한 건 ‘제왕적 총재’ 시절의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2023년 6월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가 석 달 뒤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 검찰의 공작 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한 적도 있었다. 명분보다는 철저히 실리를 챙기는 행보다.

‘명분보다 실리’라는 이 대표의 스타일이 그를 ‘비주류’에서 ‘유력 대권주자’로 만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자리’라고들 한다. 이성과 합리로 쌓아올린 이득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게 대권이다. 국민의 감성을 건드리는 ‘감성적 서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유비를 역사의 승자로 만든 건 이익이 되는 ‘실리적 선택’이 아니었다.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무모하더라도 명분을 위해 모든 걸 던질 줄 아는 ‘승부사 기질’이 그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밀어 올렸다. 이 대표가 진정 ‘하늘이 내리는 자리’를 노리고 있다면, 한 번쯤은 명분을 위해 모든 걸 던져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어리석은 도전’을 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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