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기재 지역과 세계 연구소 소장)
요즘 협동조합을 모르면 대화가 안 된다.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같은 공동체운동을 하던 사람뿐 아니라 중소기업, 자영업 등 비즈니스에 주력하던 사람들도 일제히 협동조합에 뛰어들고 있다.
동네 봉사단체 모임에서도 협동조합이 핫 이슈다.
그럼 왜 갑자기 협동조합이 대세를 타고 있나.
국제협동조합연맹(ICA: 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은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 사회,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으로 정의하고 있다.
조합 구성원들이 1인1표의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으로, 공동의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기업의 지나친 시장 지배력과 재벌오너의 독점권력 앞에 늘 불만이 쌓여 있던 국민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말이다.
사실 협동조합이 요즘 시작된 것은 아니다. 유럽의 협동조합은 이미 백 년 전부터 만들어졌고, 우리나라도 관 주도의 농협, 수협, 신협 등 협동조합이 이미 오래전에 구성돼 있었으며, 민간 주도의 한살림, 아이쿱, 의료생협 등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전 세계가 협동조합에 재 주목하게 된 것은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월가가 아큐파이(Occupy)를 외치는 시위대에 점령되면서, 탐욕적 자본주의에 대한 자성이 일었다. 새로운 자본주의 모형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유럽의 협동조합은 큰 피해가 없었다. 오히려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했으며, 근로자에게 닥친 실업과 연금고갈의 위협을 조합내에서 기업복지로 해결했다.
이 때문에 UN은 2009년에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선언하고 관련법제의 정비를 전 세계에 권고했다. 우리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2011년 9월 기재부를 중심으로 법제정을 위한 TFT을 결성했다.
국회에서는 민주당 손학규 의원이 2011년 10월,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이 11월에 협동조합기본법을 각각 발의했다. 김성식 의원의 법안은 정부 TFT안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두 법안은 기재위의 대안 입법으로 통합 수정되면서 국회를 통과했다.
한 달에 수백 개씩 협동조합 탄생…왜?
정부가 주도하고 여야 국회의원이 각각 법안을 발의하다보니 큰 논쟁 없이 쉽게 통과된 것이다. 2011년 12월 29일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자 협동조합을 추진했던 운동가들조차 법이 이렇게 빨리 될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올해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한 달에 수백 개씩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다. 너무 빠른 속도에 전문가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왜냐하면 협동조합은 ‘한 사람이 백 걸음 보다는 백 사람의 한 걸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효율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해야 한다. 빠른 성장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에 주목하고 있기에 지금 출발하는 협동조합의 성공적 안착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밭에 첫 발자국을 내는 것과 같다. 성공하면 사회적 경제라는 제 3섹터의 경제영토가 생긴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협동조합의 영역은 매우 넓다. 이 중 아파트 공동체를 협동조합으로 만들고 있는 좋은 선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청구3차아파트는 아파트 공동체 협동조합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보통 아파트 거주자들은 위 아래층 이웃 얼굴도 모르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독립성과 폐쇄성이 아파트 문화의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청구3차 주민들은 회색의 아파트 문화를 무지갯빛 공동체 문화로 바꿔 가는데 성공하고 있다.
중계동 청구3차아파트는 협동조합의 메카
이 아파트의 변화는 변영수씨가 아파트입주자 대표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변영수씨는 2008년에 59세의 나이로 회사를 퇴임했다. 그 후 평소 생각했던 아파트 공동체 문화운동을 해보기로 결심 후 입주자 대표가 되었다.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주민들과 ‘함께 사는 아파트 만들기’를 고민했다. 그들은 첫 작품으로 아파트관리소 3층을 독서실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비대한 아파트관리소 사무실과 회의실을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조한 것이다. 독서실은 50평 규모로 83석의 좌석을 만들었다.
밤늦게 독서실에서 귀가하는 아이들 때문에 불안했던 주민들은 크게 환영했다. 이용료도 월70,000원으로 시중가보다 훨씬 저렴하니 대기자가 줄을 섰다.
그 후 미생물을 활용해 음식물쓰레기를 퇴비화 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주민들과 제주도까지 찾아가서 유용미생물(EM) 발효기술을 배워왔다. 이 방법으로 미생물 발효액과 세탁비누를 만들었다. 제품의 판매를 위해 마을기업인 (주)청구이엠환경을 설립했다. 이 마을기업은 작년에 1천만 원의 이익을 냈고, 금년에는 2천만 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2층은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 되었다. 관리사무소는 귀퉁이 작은 방으로 옮겨졌다. 넓은 중앙 홀은 요가, 바둑, 공예, 요리 등의 강좌와 미생물 발효액 판매대로 이용되고 있다. 다른 방 하나는 5천권의 책을 구비한 어린이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모든 것들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토론을 통해 이뤄졌다.
이 아파트는 ‘소나기 아파트 협동조합’이란 이름으로 협동조합 신청 예정이다. 소(통), 나(눔), 기(쁨)의 줄임말이다. 현재는 마을기업 청산절차와 전환 총회 등을 진행 중이다.
그 동안 해왔던 아파트공동체 사업에 협동조합이 가장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협동조합기본법의 통과가 천사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변영수 대표는 “모든 주민을 조합원으로 구성해서 신고하려다보니 늦어졌다”며 “그래도 아파트라는 공동의 자산을 이용하여 사업을 벌이는 만큼, 혜택은 모든 주민에게 돌려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민주적 의사결정과 참여를 생명으로 한다.
‘더디더라도 함께 가야 한다’는 협동조합의 기본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소나기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면 ‘로컬푸트·그린푸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주민들과 고구마 밭, 고추밭 등을 찾아 가서 직접구매를 통해 양질의 먹거리를 주민들에게 공급할 생각이다. 어르신들에게 콩나물을 키우게 해서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주부들을 통해 반찬가게도 운영할 예정이다. 야외 카페로 만들어 진다. 변 대표는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며 활짝 웃었다.
협동조합은 구성원의 필요에 의해 다양하게 구성된다. 민주적 토론문화와 의사결정 과정은 조직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작은 아이디어는 이내 새로운 창업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만족을 느끼고, 행복감을 맛본다.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청구3차 주민들의 실험은 법률적으로 아직 협동조합이 아닐 뿐이지, 이미 협동조합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이행하고 있었다.
‘소나기 협동조합’은 차가운 아파트 문화를 따뜻한 공동체문화로 바꾸는 전도사가 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