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게 없는 홍준표…경남도지사 그 너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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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게 없는 홍준표…경남도지사 그 너머는?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3.07.08 17: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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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주목할 정치인(5)>“진주의료원 사태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오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 진주의료원 정국 중심이 된 홍준표 경남도지사 ⓒ뉴시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대한민국 정치계의 대표 이슈메이커다. 홍준표 지사는 1980~1990년대 ‘모래시계 검사’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성역 없는 수사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범법자라면 무조건 잡아들였다. 6공의 황태자 박철언도 그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대통령 YS의 눈에 띄였다. 그렇게 정계에 입문했다. 홍 지사는 거침없는 행보로 'DJ 저격수'가 됐다. DJ 집권 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고려대 선배인 형님 MB와 손을 잡았다. MB정권에서 4선의 경력을 쌓은 후, 결국 집권여당의 대표까지 올랐다. 물론 가끔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홍준표 지사는 항상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경남도지사가 된 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해서일까? 홍 지사는 이른바 ‘진주의료원’사태로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야당은 총력을 다해 홍 지사를 맹공하고 있다. 여당 일부도 가세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준표는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집권 여당의 대표를 거친 도지사의 다음 도전에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모래시계 검사 VS 돈키호테

홍 지사는 경남 창녕출신이다. 가난 때문에 이리저리 이사 다녔다. 대구에서 영남고등학교를 다녔다. 그가 고교를 다닐 시절 대구는 경북고 천하였다. 영남고는 대구의 비주류였다. 고대 재학시절 경북여고 출신과의 미팅에서 경북고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은 일도 있었다. 비주류였던 홍준표는 불공평한 세상을 바꾸고 싶어졌다. 이런 홍준표한테 검사는 딱 맞는 역할이었다. 드디어 몇 번의 낙방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대한민국의 검사 ‘홍판표’는 후에 ‘세인의 표상’이 되고자 홍준표로 개명했다. 1989년에는 전두환의 외조카와 사돈, 측근 관련 사건을 척결했다. 이제 타겟은 조폭이었다. 전라도 광주 국제 PJ파는 홍준표에 의해 일망타진됐다.

그는 1993년 전·현직 고위층이 연루된 슬롯머신 사건을 적발했다. 6공의 황태자 박철언은 홍준표에 의해서 사법처리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철언은 대표적인 경북고 출신이었다. 검사 선배 이건개도 예외가 아니었다. 슬롯머신 사건의 내사를 무마한 혐의로 기소했다.

홍준표는 몇 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철언과의 악연을 밝힌 적이 있다. 홍 지사의 말을 들어보자. “박철언 전 장관이 잘나가던 시절에 언젠가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박 전 장관이 나더러 ‘홍 검사 어느 고교 출신이요’라고 묻더라. 내가 ‘영남고 나왔다’고 했더니 박 전 장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거기 나와도 사시가 되냐’고 하더라. 속으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너 이놈 한번 두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홍준표에 의해서 박철언은 사라져 갔다.

빠칭코계의 대부 정덕진도 그의 칼날을 맞았다. 정덕진을 비호하는 세력들의 갖은 협박과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홍준표를 ‘돈키호테’라 불렀지만, 국민들은 그를 ‘모래시계 검사’라며 환호했다. 그에게는 정치계 입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 홍준표를 정계입문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 ⓒ뉴시스

DJ 저격수에서 여당 대표까지

1995년은 홍준표의 인생에서 특별한 해다. 그의 검사시절 명성을 들은 대통령 YS가 그를 불렀다. 15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YS의 영원한 라이벌 DJ 저격수가 됐다. 1999년 DJ가 집권한 후, 그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미국으로 간 홍준표는 ‘형님’ 이명박을 만난다. 이명박도 선거법 위반으로 홍준표와 같은 처지였다. 둘은 고대 선후배사이다. 일명 원조 MB계의 탄생이다. 고국으로 돌아와 1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된다. 성공적인 복귀였다. 

하지만 홍준표는 MB와 사이가 멀어진다. 3선이 된 17대 국회에서 2007년 대선후보경선에 나갔다. 원조 MB계로 자처하던 홍준표가 MB를 지지하지 않았다. 의외의 선택이었다. 2006년 서울시장 경선에서 자신 대신 오세훈을 지지한 MB에 대한 홍준표다운 대답이었다. 

그의 끊임없는 도전은 지속됐다. 드디어 2011년 7월 그는 꿈에 그리던 주류가 됐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된 것이다. 그는 그날 당선 인사를 통해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채 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 다니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이 보여주셨다"며 "이제 저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와서, 그러나 변방의 그 치열했던 정신을 잊지 않고 총선과 대선에서 압승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다짐과 달리 얼마 안 돼 그는 다시 비주류가 됐다. 그해 10월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되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했다. 악재는 이어졌다. 고승덕 의원이 박희태 국회의장의 돈봉투 사건을 폭로했다. 결국 박희태 의장도 사퇴했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총체적 난국을 맞이한 홍준표의 한나라당은 급격히 침몰했다. 홍준표 대신 박근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무대에 올랐다.

홍준표는 19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낙선의 쓴 맛을 봤다. 당분간 그를 정치무대에서 보기 어려울 듯 했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민주당 대선후보경선에 나서면서 도지사직을 던져버렸다. 홍준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12년 12월 19일은 박근혜 대통령만이 웃은 날이 아니었다. 홍준표도 경남도지사가 됐다. 창녕 촌놈이 도백이 된 것이다. 홍준표는 다시 돌아왔다.

▲ 2012년 12월 19일의 승자, 박근혜대통령과 홍준표 경남도지사 ⓒ뉴시스

진주의료원 사태, 藥이 될까? 毒이 될까?

경남도지사 홍준표는 정치적 변방에 머물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진주의료원 폐업 카드를 내놓자 국민들은 다시 그를 주목했다. 야당의 반발은 거셌다. 야권의 대선주자 급 인사들이 경남도를 찾았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진주의료원을 방문했다. 문 의원은 “일방적·비민주적 폐업 결정은 잘못됐다”며 “진주의료원 정상화를 위해 노력 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철수 의원도 질세라 지난 6일 진주의료원을 직접 찾았다. 안 의원도 “(진주의료원 사태가)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며 “홍준표는 정의롭지 못한 정치인이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여권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의 한 인사는 “문, 안 두 의원이 아직 정치초년생이어서 홍 지사의 노련한 수에 걸려든 것이다”며 “이제 홍 지사는 이번 일로 야권 대선주자들의 상대로 격상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홍 지사는 4선으로 집권여당의 대표를 역임한 현직 도지사다. 이제 그가 도지사를 넘어 무엇을 생각하겠냐”고 반문했다.

이번 진주의료원사태에 대한 홍지사의 주장은 단호하다. 그는 지난 1일 YTN 라디오 '전원책의 출발새아침'에 출연해 “진주의료원은 공공의료기관이 아니라 강성노조의 해방구다. 노조원들 200명한테 1년에 70억 원을 쏟느니 경남도에 극빈자 7만 8000명에게 직접 의료비를 지원 하겠다”며 특유의 뚝심을 드러냈다. 

우군도 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간지 사설을 통해 “진주의료원은 누적적자 279억 원을 내고도 직원 240명이 하루 환자 200명을 돌보는 너무 한가하고 조용한 병원이다”며 “(홍 지사가) 적자 충당금을 ‘빈곤층 무상의료’에 쓰겠다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대안이다”고 긍정 평가했다. 

하지만 홍준표 지사가 자기식대로 갈수록 그를 싫어하고 견제하고 싶은 세력도 많아졌다. 국회는 지난 2일 여야합의로 지방자치단체의 일방적인 지방의료원 폐업 조치를 막기 위한 일명 ‘진주의료원법(지방의료원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국정조사도 앞두고 있다. 여야의 협공이 예상된다.

그러나 홍 지사는 이제 진주의료원 사태해결의 공을 여의도로 넘겼다. 홍준표 지사와 진주의료원 노조의 문제가 아닌 전국 공공의료 문제로 확대시킨 것이다. 이제 해결은 여의도 정치권의 몫이다.

홍 지사는 2007년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을 맡아 단기필마로 싸울 때도 사람들은 나를 돈키호테라고 했지만 결국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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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2013-07-08 21:03:39
홍지사의 진주의료원의 상황 판단은 표로 사는 정치인에게는 국가에 대한 충정이 아니고서는 있을수 없는 행위이다.
홍지사의 애국심이 보이는 면이라고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