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유선 기자)
"노무현 정권이 벌이는 치졸한 정치 보복에 맞서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이다."
2004년 2월, 이인제 자민련 총재권한 대행은 검찰과의 싸움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당시 이 대행은 한나라당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지난한 전쟁은 2년간 지속됐다. 그리고 이 대행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 대행은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게 법원 판결 결과다.
10년이 지난 오늘날, 이 사건이 재조명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른바 '차떼기'라 불리는 이 사건은 이병기-김윤수-이인제와 검찰이 얽히고설켜있는 한 편의 '영화'다. 돈을 준 사람은 있고, 전달자도 있지만 받은 사람은 없는 '희한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병기 "5억 줬다", 김윤수 "2억5천 전달했다"…이인제 "받은 적 없다"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는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이인제 의원의 김윤수 공보특보에게 2억5000만 원이 든 상자 2개를 전달했다. 이병기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000만 원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2004년 5월 14일, 서울중앙지법은 김윤수 전 공보특보에게 2억5000만 원에 대해선 형사상 횡령죄를, 정치자금법으론 무죄를 판결했다. 김 전 특보는 2억5000만 원을 자신이 쓰고, 나머지 2억5000만 원은 이인제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1년 뒤, 2005년 6월 21일 이인제 의원에 대해 서울고법이 최종 판결을 내렸다. 무죄였다. 법원은 "한나라당이 제공하는 2억5000만 원을 받은 일이 없다"며 판시 이유를 밝혔다. 또한 판결문은 "공소외1(김윤수 전 특보)이 자신의 횡령죄의 내용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허위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명시하며 전달자 진술의 신빙성이 없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2억5000만원은 어디로 간 것일까?
2억5000만 원이란 돈을 준 사람이 있고, 전달자도 있다. 하지만 받은 사람은 없다. 준 사람은 벌금형, 전달자는 징역형, 받은 줄로 알았던 사람은 무죄를 선고받은 '이상한' 사건. 이것이 바로 이병기 내정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차떼기 사건'이다.
◇ 진실은 어디에
하늘로 날아간 2억5000만 원조차 김 전 특보가 썼다고 가정할 경우, 김 전 특보는 5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판단돼 형량이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김 전 특보는 징역 1년에 그쳤다.
그렇다면 이는 법원도 김 전 특보가 5억 원을 다 썼다고 확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병기 국정원장 내정자는 5억 원을 줬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인제 의원의 계좌를 샅샅이 뒤졌다. 물증은 결국 나오지 않았고 이인제 의원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인제 의원의 말대로 해당 사건은 '노무현 정권의 정치보복'이었을까? 그렇다고 가정한다고 한다면, 보복은 실패한 셈이다. 대신 이병기 내정자에게만 '주홍글씨'처럼 사건이 따라다니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0일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당시 사건이 터졌을 때 노무현 정권 차원에서 이인제 의원을 죽이려 한다는 얘기가 돈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결국 이 사건은 돈을 준 사람만 있고, 받은 사람이 없는 것으로 결말지어 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