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의 農飛漁天歌>˝태안유류법, 세계에서 없는 法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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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표의 農飛漁天歌>˝태안유류법, 세계에서 없는 法 만들다˝
  • 글 홍문표 국회의원/정리 윤진석 기자
  • 승인 2014.08.12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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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태안유류특별법-上>삼성본관 앞 자살자만 4명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글 홍문표 국회의원/정리 윤진석 기자)

17대 국회의원 때의 일이다. 당시 내 지역구인 충남 홍성 바로 옆 태안 앞바다에서 참담한 재난이 터졌다.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바다를 지나던 삼성중공업 바지선과 홍콩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대규모 기름이 쏟아진 사건이었다.

이때 바다로 흘러들어간 기름만 1만 900t, 해안 375km를 순식간에 오염시킬 정도의 엄청난 양이었다. 12만 7천여 명의 태안주민은 하루아침에 평생을 생업으로 삼던 태안 앞바다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삼성중공업, 삼성본관 앞에서 투쟁하다 절망을 가누지 못하고 자살한 사람만 4명, 또 다른 한 명은 태안 피해 어민들의 처참한 심정을 사회에 알리고자 할복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충청권의 유일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후 나는 태안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대통령과 두 번 현장 방문도 하고, 여러 차례 실태조사를 벌이는 등 대책 강구에 나섰다.

한번은 섬 주변의 어민댁을 순회할 때의 일이다. 누가 와도 반기는 기색 없이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계시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초점도 없고, 감각도 없어 보였다.

이곳저곳에서 전화가 하도 오니까 수화기를 아예 내려놓은 집들도 꽤 됐다. 어느 때는 말 붙이는 것조차 죄스럽고 송구스럽게 여겨졌다.

때로는 끼니 차릴 기력조차 없는 듯했다. 우선 뭐라도 차려드려야겠다 싶어 가져온 라면상자를 풀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갑작스레 씩씩대며 일어나 라면상자를 휙 낚아채더니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었다.

주인의 입에서는 라면만 봐도 신물이 나고 속이 울렁거린다며 이제는 봉지 뜯는 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얘기가 혼잣말처럼 새어나왔다. 그 무렵은 구호물자가 배달되긴 했으나 쌀이나 김치 대신 라면이 주가 될 때였다.

라면만 봐도 넌더리치는 주민들을 본 이상 안 되겠다 싶었다. 그 즉시 태안 군수한테 얘기해 봉사조를 짜게 했다. 그러고는 이틀이면 이틀 집집마다 순회해 쌀밥과 김치가 있는 밥상을 차려주게끔 했다.

나중에는 정부에서도 긴급조치 명목으로 각 집에 생활보조금을 보태주고, 전기세 수도세 등 공과금도 면해줬다. 한편으로는 보상 마련을 위한 피해자 협회도 꾸려지던 중이었다.

하지만 어민들의 낯빛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대의 재난을 겪은 대다수 어민은 여전히 침울해했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장 수중에 밥해 먹을 돈이 생겼다고는 하나 그것도 살고 싶은 의욕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시장에 나가 반찬거리라도 사서 음식 해먹는 일조차 이분들에게는 버거운 일이었고, 그럴 의욕조차 보이지 않았다.

현장조사를 나가면,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피해 어민들이 다반사였다. 어떤 이는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혹은 아예 신지도 않고서 우두커니 바다를 바라보는데, 이분들 동공이 망망대해처럼 아득했다.

나를 비롯해 각지에서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은 집에서 가져온 수건 몇 개씩 들고서 돌 하나하나 닦아내는데 성심을 다했다. 그러나 당신들 눈에 비친 바다는 죄다 검은 기름과 검은 이끼로 뒤덮인 새까만 바다, 파손된 갯벌일 뿐이었다.

저렇게 해서 언제 깨끗해지겠나, 설령 다 닦여진다 하더라도 바다 깊이 스며들어 잠복한 기름은 어쩔 수 없다, 어촌생활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이분들을 한없는 막막함 속으로 잡아끄는 듯 보였다.

그때만 해도 ‘10년이 가도 고기가 안 살 수도 있다’ ‘환경이 복원되려면 10~15년 걸린다’ 등의 관측이 공공연히 방송을 타고 들려오던 때였다.

이제껏 먹고 살던 생활 터전이 검은 기름으로 오염된 것도 모자라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간 이곳 생업을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어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새까만 갯벌을 보면서 당신들 속도 하염없이 검게 타들어 갔던 것일까. ‘꿈도 없이 끝났다’는 생각에 눈 뜨면 술에 의지해 실신 전까지 연거푸 마셔대는 어민들이 눈에 밟혔다.

그때 알았다. 저분들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큰일나겠구나, 저러다 극단의 결정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런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도 있기에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를 일 아닌가. 무엇보다 어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래야 십 년 이십 년 버티고 살아낼 힘이 생길 것 같았다.

2008년 2월 MB(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 시절 제안한 태안 유류 피해지원특별법 발의 및 제정은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어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자, 살 힘을 주자는 생각이 법을 만든 이유이자, 명분, 목표였던 셈이다.

사실상 세계에서 없는 법을 만들자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뜻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의기투합해주실 분들이 모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기욱 변호사, 그 당시 태안 군수였던 진태구 군수가 법을 함께 만든 내 동지였다. 늦은 밤까지 셋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주고받았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후 19대 때인 2013년 4월 신속재판 규정을 추가하는 특별법 개정이 이뤄지긴 했지만, 맨 처음 만들어진 법으로 태안유류사고 보상에 대한 실질적인 윤곽이 그려질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태안을 비롯한 유류오염지역의 지원에 대한 근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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