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유현 기자)
지난해 증가한 시중은행 대출 가운데 90% 가량이 가계대출에 몰려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들이 담보가 확보돼 손실 위험이 적은 가계대출에 치중하면서 전세대출·주택대출 등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 증가는 미미한 것으로 분석돼 '기술금융' 등 구호가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외환은행 등 6대 시중은행의 주요대출(주택담보·전세자금·신용·자영업자·대기업·중소기업대출) 총 잔액은 지난해 말 793조3000억 원으로 2013년 말 737조 원보다 7.6% 늘었다.
이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것은 전세자금 대출이다. 2013년 말 11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말 16조6000억 원으로 무려 43.9%가 늘어났다.
전세의 월세 전환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등으로 전세매물 품귀 현상이 빚어져 전세가 상승률(4.4%)이 매매가(2.4%)보다 훨씬 높았던 데다, 실제로 최근 수년 간 전세금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규모로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가장 컸다. 2013년 말 270조6000억 원에서 지난해 말 299조8000억 원으로 무려 29조2000억 원이 늘었다. 증가율도 10.8%에 이른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을 꾀하면서 총부채상환비율(DTI)·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대출규제가 완화된 영향이 컸다. 한국은행이 8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린 것도 주택대출 급증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자영업자대출도 주택담보대출 못지않은 급증세를 보였다. 2013년 말 127조9000억 원에서 지난해 말 141조5000억 원으로 13조6000억 원이나 늘어 증가율이 10.6%에 달했다.
자영업자대출은 2010년부터 매년 10조 원씩 증가했는데 지난해에는 증가폭이 훨씬 커졌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로 지난해 50대 창업이 15%나 급증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주택·전세·신용대출에 실질적 가계대출인 자영업자대출까지 합치면 가계 부문 대출 증가액은 50조 원에 달해 총 대출 증가액 56조2000억 원의 88.9%를 차지한다. 대출 증가액 대부분이 가계 부문에 쏠린 셈이다.
반면, 지난해 은행마다 자신 있게 내걸었던 기술금융 등 중소기업대출 증가액(자영업자대출 제외)은 고작 4조3000억 원에 머물렀다.
2013년 말 153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말 157조8000억 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증가율은 2.8%에 불과하다.
이는 14조 원에 육박하는 자영업자대출 증가액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로, 은행들의 중소기업대출 강화가 구호에 그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같은 흐름에 업계 전문가는 "아파트 담보나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이 있는 주택대출, 전세대출 등에만 골몰하다 보니 은행 대출이 가계 부문에 극도로 편중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가계부채 문제를 완화하고, 은행 본연의 책무인 기업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불균형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은행들이 겉으로는 중소기업대출을 늘린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하거나 성공 가능성이 확인된 중소기업에만 대출을 해주고 있다"며 "정부가 하라고 한다고 해서 형식적으로 하는 시늉만 하지 말고,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