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패배하면 ‘책임론’ 불가피…박원순 안철수 ‘등장’?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우리 민족은 한(恨)의 민족이다. 한은 민중의 좌절된 소망이다. 한은 민중의 그 좌절된 소망이 어느 땐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민중의 기다림이다. 한은 민중의 기다림 중에서도 틈만 있으면 그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민중의 몸부림이다."
-김대중 자서전, 행동하는 양심으로 中-
DJ는 우리 민족에게 한이 있다고 말했다. DJ가 말한 ‘민족의 한’은 호남 정서다. 호남에겐 한이 있다. 호남에겐 좌절된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호남은 몸부림친다.
호남은 한(恨)의 민족이다.
해방 이후 태평양지대에 있는 미국과 일본과의 교류 역할을 하는 창구는 부산이었다. 호남은 신식 문물을 많이 접하는 영남에 비해 자연스럽게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정부 들어 산업화시대를 본격적으로 겪을 땐 인재 등용과 지역발전에서 차별이 있었다. 한 예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7년 제6대 대통령선거에서 호남을 위해 내세운 공약 ‘호남선 복선화 사업’은 공사기간이 36년에 달했다. 민주당은 “36년이면 굼벵이가 기어가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더 빨리 가겠다”고 비판했다.
인재 등용에서의 차별은 더 확연하다. 유신정권 이후 장관들의 출생지는 영남(29명·38.3%)이 호남권(6명·11.8%)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호남의 한은 5·18광주 민주화운동에서 터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후 신군부 세력인 전두환·노태우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며 무력으로 정치권을 장악했다.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광주와 전남 일원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기 위해 민주항쟁을 일으켰다.
역사적 배경을 보면 호남에게 ‘소외’와 ‘차별’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호남 사람들은 소외와 차별의 역사를 겪으며 가슴 속에 ‘한’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김재한 국제경영전략연구소장은 10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광주의 한은 정치적 한이다”라며 “호남은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을 그동안 해왔을 것이다. 이로 인해 지역 발전 등을 소외받았다”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제는 그런 지역감정 정치적 소외세력이 없어져야 한다”라며 “광주의 한이 없어져야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이 함께 될 수 있는 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은 호남의 좌절된 소망이다.
호남의 한은 ‘대통령’을 만드는 것으로 쏠렸다. 소외와 차별을 없애기 위해선 호남 출신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DJ를 향한 끝없는 사랑이 시작된 것도 한을 풀기 위함이다.
DJ는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고 대통령선거에서 3번이나 낙선했으며 투옥·납치·암살 위기 등 온갖 수모를 겪었다.
호남은 그런 DJ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똘똘 뭉쳤다. 호남은 DJ가 속한 정당인 민주당만 바라봤다. 민주당에게만 표를 던졌다. 결국 15대 대통령선거에서 호남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호남이 낙점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DJ를 배출한 호남인들의 표심은 다음 대선에서 어디로 향했을까. ‘16부작 드라마’라고 불릴 정도로 반전의 반전을 거듭했던 제16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경선은 국민 경선제로 치러졌다. 당원 50%, 국민 50%의 비율이었다. 경선은 곧 민심의 바로미터였다.
2002년 3월 9일, 제주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국민 경선에서 호남 출신인 한화갑이 1위를 거머쥐었다. 예상 밖 결과였다. 당초 거물급 대권주자는 이인제였다. 이인제는 대권주자 지지율 부동의 1위였다. 모두가 이인제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한화갑이 돌풍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최대 격전지’로 불렸던 광주에선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광주는 노무현을 택했다. ‘노풍(盧風)’의 시작이었다. 노무현은 지지율 10%도 되지 않는 군소 후보였다. 광주는 노무현의 ‘영남 후보론’에 매료됐다. 영남 사람이 나와서 영호남 지지를 받아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경선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과의 양자대결에서 노무현이 이기는 것으로 나온 것을 근거로 들며 ‘영남 후보론’에 힘을 실었다.
광주에서 시작된 ‘노풍’은 경선이 진행될수록 거세게 몰아닥쳤다. 시작할 땐 10%가 되지 않던 지지율이 경선이 끝난 4월 말 60%에 육박하며 역대 대통령 후보들 가운데 최고치를 달성했다. 결국 ‘광주발(發)’ 노풍은 대권까지 점령했다.
호남의 한은 그 좌절된 소망이 어느 땐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다림이다.
그렇게 호남은 영남 사람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 호남은 홀대를 받는다고 느꼈다. 참여정부의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대연정이 ‘호남홀대론’의 근원이다. 그 당시 느꼈던 앙금이 남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대한 이미지는 지금까지 좋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영남 사람에게 등을 돌린 호남은 차기 대선 경선에서 전라도 출신 정동영을 택했다. 정동영은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나온 손학규와의 경쟁이 치열했다. 승패를 가른 것은 민주당의 안방인 광주·전남이었다. 광주·전남에서 1위를 달성한 정동영은 결국 최종 후보로 떠올랐다.
호남 후보를 내세운 민주당은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대패’했다. 영남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제주, 강원, 충청을 비롯한 서울과 경기도에서도 한나라당 후보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정동영을 가볍게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김 소장은 “정동영 전 장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물 간 대결에서 졌다”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MB는 기업인 출신이라 경제 발전과 성장에 대한 기대 심리가 정 전 장관보다 많았다”라며 “경제적으로 성장 발판의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국민들이 MB에게 투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남의 한은 기다림 중에서도 틈만 있으면 그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호남은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광주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결국 새정치연합 최종 후보로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남 후보를 내세워야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즉, 광주가 지지하는 영남 후보여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표 확장’을 하지 못한 것도 ‘광주 민심’을 얻기 위해서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비난을 받고도 6·4 지방선거에서 윤장현 광주시장과 7·30 재보선에서 광주 광산구에 권은희 의원을 전략공천 한 것도 마찬가지다. 호남의 민심을 얻어야 대권에 가까워진다. 호남 민심은 새정치연합 대권의 바로미터다. 호남을 잡아야 대권 주자로 가까워진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광주는 야권의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는 지역”이라며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윤장현 광주시장과 권은희 의원을 전략공천 한 것도 광주에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서다”라고 분석했다.
4·29 재보선 광주를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이 재보선 지역구인 광주 서을에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새정치연합 조영택 후보도 나섰다. 물론 천 전 장관이 당선되더라도 새정치연합으로 귀환할 여지는 있다.
문제는 문재인 대표다. 당권을 잡은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방(광주)을 무소속 후보에게 내준다면 문 대표의 대권은 그만큼 멀어진다. 광주에서 버림받은 후보가 새정치연합 대권주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문 대표가 당권은 잡았지만 박원순 안철수 등 잠재적 대권주자는 즐비하다. 이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신 교수는 “안방인 광주에서 새정치연합 후보가 광주에서 당선되지 않는다면 문재인 대표는 야당 대표로서 입지가 흔들린다”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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