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동결 주장에 노동계 25.4% 인상 당위성 강조
“최저임금제요? 어른들 중에 그걸 지키는 분도 있나요. 원래 안 지키는 거 아닌가요. 그냥 법만 그렇지 누가 그걸 지키겠어요.”
PC방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김모씨(남·23)가 던진 첫마디였다. 그는 어느덧 20대의 자화상이 돼 버린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88만 세대에 끼지도 못하기에.
“같은 20대라도 대학생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알바시급 차이가 있어요. 저는 대학에 다니는 알바생보다 500원이나 덜 받아요. 그럼 저는 몇 만원 세대인가요. 66만원 세대라고 불러야 하나요. 뉴스에서도 과외니 인턴이니 대학생 알바 얘기만 하지, 저같이 대학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언급조차 안 해요. 대한민국에서 저는 그냥 유령 사람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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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88만원 세대(우석훈 저)’ 출간 이후 우리사회는 승자독식 구조로 인한 ‘인질 경제’, 즉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인질로 잡고 착취하는 세대간 불균형 담론이 우리사회에 새로운 화두로 던져졌다. 세대간 불균형뿐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 청소용역 등에 주로 종사하는 중장년층은 세대내 불균형 상태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이 정치인 등 의사결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오는 6월29일 결정될 2011년도 최저임금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극명한 이견차를 보이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경영계는 기업의 지불능력 미비와 고용 위축을 이유로 최저임금제 동결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노동계는 지난해 2.75% 상승이라는 낮은 최저임금제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최저임금제 심의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3월 4일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먼저 2011년도 최저임금을 올해(4110원)보다 25.4% 인상된 5,152원을 요구하며 선제공격에 나섰다. 그러자 같은 달 17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2010년 임금조정 기본방향’을 통해 2010년도 최저임금을 올해와 같은 시간당 4110원으로 동결해야 한다고 밝히며 맞섰다.
당시 경총은 “거시지표상 흐름이 개선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경제의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최저임금이 저임금 근로자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할지라도 근로자들의 고용유지, 영세사업장의 보호라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경영계 측은 이런 주장은 올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역시 경영계는 똑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또 지난해 2010년 최저임금 협상을 앞둔 2009년 3월27일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경제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최저임금제를 한시적으로 검토 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 최저임금제를 두고 경영계·정부 vs 노동계·야당간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일까지 벌어졌다.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시급 4000원대, 월85만 원대에 불과한 최저임금제를 유예해서 경제 활성화를 하겠다는 정부는 과연 최저임금제의 기본 취지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정부를 성토했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최저임금제 유예 조치는 없는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기업들에게 갖다 주겠다는 것”이라며 “명백히 서민에 대한 공개적 강탈 행위”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경총 등 경영계 8원 인상안 제시
올해 역시 경영계와 노동계는 최저임금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2011년도 최저임금안을 놓고 번번이 대립하고 있다. 지난 5월30일 노동계는 올해보다 26% 오른 5180원을, 경영계는 올해와 같은 4110원을 각각 제시했다.
이후 노사 양측간 의견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대립하자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에 대한 심의 일주일여를 앞둔 지난 18일 제5차 최저임금위 전원회의를 통해 2011년도 최저임금제 첫 조정안을 제시했다.
경영계는 8원이 인상된 4118원을, 노동계는 70원 인하된 5110원을. 하지만 경총 등 경영계 내부적으로 노동생산성을 고려, 2011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36.2% 삭감된 2624원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노동계를 자극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제5차 최저임금위 전원회의가 열리던 날 서울 강남 서울세관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0년도 최저임금은 물가인상 전망치도 못미치는 2.75% 인상에 그쳤다”면서 “이명박 정부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나 국제노동기구(ILO) 등이 발표한 한국의 최저임금 상태부터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노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평균임금 대비 26%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24%)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민노총은 이어 “민주노총과 최저임금연대는 오는 6월29일까지 모든 투쟁을 동원해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이라는 최저임금법의 입법정신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며 강력투쟁을 예고했다.
이 같은 노사간 대립에 대해 최저임금위 관계자는 “노사가 내년 최저임금을 놓고 한 발씩 양보했지만 워낙 서로 이견이 커 양측이 만족하는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최저심의원회는 이달 25일과 28일 전원회의를 통해 양측의 수정안을 조정한 뒤 오는 29일 최종 의결을 할 계획이다.
의결은 먼저 ‘선(先)합의 후(後)투표’ 형식이다. 만일 최저임금제 합의 실패시 공익위원이 제시한 절충안을 놓고 노사가 동수로 추천한 위원 18명과 공익위원 9명 등 총27명의 투표로 2011년 최저임금제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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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제와 고용 상관관계
1894년 뉴질랜드의 산업조정중재법에서 시작된 최저임금제는 국가가 임금의 최저액을 법으로 정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1928년 국제연합(UN)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채택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에 따른 최저임금제 규정이 있었지만 당시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이 규정은 사장된 법에 불과했다. 이후 1970년대 최저임금제를 위한 행정지도를 거쳐 1986년 12월 31일에 최저임금법을 제정공포, 1988년 1월 1일부터 실시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제가 전 사업장에서 실시되지 않고 있고 매년 최저임금 협상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간 대립을 일삼고 있다. 그간 경영계의 입장은 최저임금제 등 정부가 인위적으로 하한가격을 설정해 그 이하로 가격이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통제는 자유시장에서 결정되는 균형가격보다 높게 설정되기에 필연적으로 실업이 늘어난다는 주류경제학의 이론을 들며 최저임금제 상승폭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경영계는 최저임금제 상승으로 인한 임금 지급액이 증가한 만큼 비정규직 직원 수를 줄 수밖에 없기에 숙련된 노동자보다 비숙련 노동자에게 타격이 심하다고 주장해왔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올해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2.75%에 그치면서 최저임금제 상승률을 억제했지만 재계의 고용률이 과연 늘었는가”라고 반문한 뒤 “2009년 전체 노동인구 가운데 무려 449만 명이 저임금계층이고 법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210만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간 우리 경제는 ‘성장만 하면 벼랑 끝 계층 최하위 계층의 살림살이가 개선된다’는 성장의 분배개선 효과(Trickle-down Effect)에 의존해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하위 20% 소득점유율은 오히려 급속히 감소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영계가 주장하는 최저임금 삭감이 경제위기 극복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도 전혀 증명되지 않은 주장”이라면서 “오히려 최저임금 삭감이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져 내수진작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잘라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지난 4월2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최저임금제와 관련, “재계는 항상 줄기차게 낮게 하자고 주장하지서만 설득력이 없다”면서 “절대치로 비교했을 때도 4110원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하고 평균 임금치로 비교해 봐도 OECD 국가의 30%가 채 안 된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최저임금이 너무 높으면 부담이 돼서 고용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급격한 상승보다는 점진적인 상승을 통해 5~10년 후 국제적인 수준과 비슷하도록 하는 방법이 좋다”며 속도조절론을 주장했다.
한편 실효성 있는 최저임금은 그간 주류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고용위축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실제 증가되거나 적어도 고용량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지난 2007년 한국노동연구원 이시균 책임연구원은 <최저임금의 고용효과> 논문을 통해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고용주들은 평소 노동력 부족 상태와 높은 이직률을 안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고용주가 추가로 근로자를 고용하려면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되고 높은 이직률을 막으려면 결원을 채우기 위해 이윤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이 연구원의 주장이다. 2010년 젊은이들을 대변하고 있는 말은 88만원 세대다. 또 젊은이들뿐 아니라 일용직 3D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고령층은 세대내 경쟁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승자독식 세대라고 부른다.
헌법 제32조 제1항은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상승이 고용억제로 이어진다고 하고 노동계는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외치고 있다. 최저임금제도 누군가 이기면 또 다른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한 것일까. 지난 18일 제5차 최저임금위 전원회의 첫 조정안을 두고 젊은 세대들은 말한다. “우린 10원짜리 인생이 아니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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