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진정성’은 안철수 의원이 가진 최고의 자산입니다. 국민들은 기존 정치 문법에서 벗어나 진실한 언행을 보여주는 그에게 열광했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는 타이틀을 안겼습니다. 안 의원 역시 ‘진심’을 강조하며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했습니다. ‘진심캠프’라는 네이밍은 그가 지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안 의원이 진정성 프레임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서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나쁜 결과보다, 악한 의도가 낳은 좋은 결과가 오히려 선(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의 첫 번째 임무는 그 스스로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한 국민들이 악해지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 안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후보를 양보했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합했다”며 이른바 ‘양보론’을 꺼내들었습니다. 자신은 진심을 다해 정권 교체와 야권 통합을 위해 노력했지만, 주류 측에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는 그동안 안 의원이 강조했던 ‘진정성 담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언입니다.
지금까지 안 의원은 ‘내가 진심을 보여주면 상대도 진심을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정치를 해온 것 같습니다. 기자회견 때마다 꺼내는 ‘양보론’은 안 의원이 느낀 배신감의 발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안 의원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정성도 믿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정치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안 의원이 진정성을 지켜나가되, 더 이상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부딪쳐 바꿔나가고 싶어 하는 현실은 진정성과 진심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당을 창당하든 다른 당에 합류하든, 앞으로도 안 의원은 정치인들을 만나고 그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새정치연합이라서’ 진심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정치란 원래 그런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 의원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는 말을 종종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현실감각이 결여돼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문제의식도 현실감각도 모두 서생적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안 의원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정치인’이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할 겁니다. 정치인은 자신이 진흙탕에 뒹굴더라도 국민들은 꽃밭에서 뛰놀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지금까지 안 의원의 행보를 보면, 옷에 진흙이 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권에 투신한 이상, 안 의원이 가야하는 길은 ‘착한 사람’의 길이 아니라 ‘훌륭한 정치인’의 길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협상도, 타협도, 때로는 치열한 싸움도 필요합니다. 자신의 원칙 앞에 양보는 없는 태도, 진정성과 진심만 내세우는 태도는 국민들의 호감을 살 수 있을지언정 정치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새정치연합을 떠나 제2의 정치인생을 설계하게 된 안 의원이 ‘프로 정치인’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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