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지난해 미디어를 통한 여성혐오 현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운동이 촉발됐다. 이들은 흔히 사회에서 들을 수 있는 성차별 발언에서 남녀를 뒤바꾸는 '미러링' 방식을 통해 사회 깊숙이 박힌 성차별 인식을 부각시켰다.
관련 서적도 열풍이었다. 페미니스트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고 한다>는 출간 10개월 만인 이번 달 기준 1만5천여 권 넘게 판매됐고, 신조어 '맨스플레인(Mansplain)'을 유행시켰다.
이처럼 젠더 문제가 급격한 사회적 물살을 타는 가운데, 정치권의 인식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정계인사의 성희롱 발언은 매년 빠지지 않는 이슈고, 일부 여성 의원은 '명예남성'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중앙선관위의 투표광고가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시사오늘>은 20대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여성인권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정당별 총선공약을 통해 살펴봤다. '여성공약'의 포인트는 △여성의 사회진입 △육아-일 양립정책 △성범죄 대처방안 순이다.
◇여성과 사회진입…3野, "유리 천장·임금 격차 해소"
'유리 천장(Glass Ceiling)'은 위를 보면 뻥 뚫려있는 것처럼 투명하지만, 막상 올라가면 막혀있는 것처럼 사회 비주류에 대한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을 비유한 말이다.
최근 <이코노미스트>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임원 비율은 0.4%로 OECD 29개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이에 '국내 여성에 대한 유리 천장은 방탄유리로 만들어졌다'는 조소도 나오고 있다.
더민주는 유리 천장 해소를 위해 여성 대표성 제고, 여성 임금 격차 해소, 여성청년 고용의무할당제 도입을 제시했다. 여성 대표성에 대해서는 고위직 공무원 중 특정성별 공무원 수가 일정수준 이상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양성평등 고용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의당 역시 성별 고용·임금실태 공시제를 도입,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개선할 방침이다. 또 공기업과 대기업에 청년고용할당제를 도입, 여성과 고졸 이하, 전문대와 지방대에 대한 기회균형 채용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도 공정임금법 제정 등을 통해 남녀 간 근로조건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야권과 비교해 눈에 띄었던 것은, 남녀교사 구성비를 맞추겠다고 밝힌 부분이었다. 국민의당은 균형 잡힌 교육을 위해 남녀교사 최저 성비를 30%로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여성 비율이 높은 감정노동자와 돌봄노동자의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데도 주의를 기울였다.
한편, 새누리당은 여성의 사회진입 정책은 따로 제시하지 않았다.
◇육아-일 양립정책…"기업 분위기 유도" vs. "휴직제도 활성화"
최근 간호사들의 '임신순번제'가 사회적 논란이 됐다. 임신순번제는 말 그대로 가임기에 있는 차례로 임신하는 것이다. 순번제를 거부하거나 차례를 지키지 않으면 근무상 불이익을 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비단 간호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육아휴직은 법적으로 보호받는 사항이지만, '회사에 민폐'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는 여성들을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출산·육아에 따른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는 데 기업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가족친화인증' 기업을 확산시켜 내실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인증 의무화로 공공기관의 선도적 실천을 이끌어내고,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참여를 독려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역시 '여성친화기업'을 확대, 노동시간을 준수하는 등 여성 친화적 노동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3야는 출산·육아휴직 제도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 휴직 기간을 확대하고 급여 또한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은 휴직제도 활성화를 위해 대체인력 채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더민주와 정의당은 남성 배우자의 휴직제 참여를 독려할 방침이다.
또 장기적인 정책으로 더민주는 '취학자녀돌봄휴가제'와 '아이돌봄서비스'를, 정의당은 어린이집 확대를 통한 '영유아보육 국가책임제' 등을 제시했다.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 모두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의 취업지원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새일센터는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으로, 지난해 기준 147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또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국민연금 혜택도 제시했다.
새누리당은 경력단절 주부들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전업주부의 추납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의 경우, 현재 국민연금의 출산크레딧 제도를 양육크레딧으로 확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국민연금 단절을 예방하겠다는 방침이다.
◇성범죄 대처방안…정의당, "입사지원서 용모차별 철폐"
정당별 성범죄 해결공약은 성희롱과 성폭력, 데이트폭력과 스토킹, 몰래카메라 문제 등이 언급됐다.
새누리당은 성폭력 문제에 대해 '해바라기 센터'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해바라기 센터는 성폭력 및 가정 폭력 피해자의 상담과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로, 지역 거점 병원에 병설돼 있다. 또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서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관계자 교육에도 힘쓰겠다는 방침이다.
더민주 역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개선에 힘을 실었다. 반면, 국민의당은 성폭력 재판과정에 대한 법률조항을 강화해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할 방침이다. 정의당은 성범죄 통제 체계를 강화하고 피해자 보호 및 자립지원에 나선다.
또 야권은 몰래카메라 범죄와 스토킹·데이트 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국민의당은 '몰카' 문제와 관련, 촬영물에 대한 가중처벌과 유통사이트 폐지, 유포 협박에 대한 처벌 등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정의당은 나아가 과도한 미용·성형 광고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 여성인권을 침해하는 광고와 함께 성형수술 간접홍보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또 입사지원서에 용모 평가기준을 삭제해 용모 차별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3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과 육아의 양립공약에 있어서 기업 분위기 유도와 휴직제도 지원 모두 중요하지만, 취업규칙 등을 통해 직장의 문화로 자리잡았을 때 여성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그러나 여성 비율이 높은 비정규직은 이같은 제도적 지원도 받지 못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면서 "여성공약을 칸막이로 나눠 볼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시선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좌우명 : 本立道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