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종희 기자)
2016년 대한민국의 현재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으로 뚜렷이 갈린다. 하지만 밝은 면만 강조하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어두운 면만 강조하는 세력도 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면만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해결책이 나올 수 없고 사회적 갈등만 심각해질 뿐이다. 지난 3월 29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북악포럼에서는 우리 사회의 명암을 동시에 조명하면서 어두운 부분을 치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강연이 있었다. 연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을 지낸 박인주 국민대 석좌교수였다. 박 교수는 강연을 하는 동안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다’며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상대방을 인정하는 자세와 신뢰를 쌓는 게 필요함을 특별히 강조했다.
박 교수는 우선 청와대 수석으로 일할 당시의 한 일화를 속개하며 우리 사회의 밝은 면을 부각시켰다.
“청와대 수석회의는 월요일 8시에 열린다. 회의 때 각 수석들이 보고를 하는데, 내 기억으로는 2011년 12월 5일이다. 경제 수석이 ‘오늘 오후 5시에 무역 총량이 1조 달러를 돌파한다’면서 ‘이제 세계에서 7번째 나라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명박 대통령이 ‘왜 허위보고를 하느냐’면서 ‘7번째 나라가 아니라 9번째 나라’라고 말했다. 영국과 이태리가 1조 달러를 돌파했다가 다시 떨어져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조 달러를 돌파한 순서로는 9번째이고 당시에 1조 달러를 넘은 나라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7개 국가였던 것이다.”
“우리는 팔로워(follower)에서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되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대한민국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3년 세계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이 65개다. 메모리반도체, 자동차 부품, 탱커 등 44개 품목이 2012년도에 이어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였고, 에틸렌, 폴리카아보네이트, 의류 부속품 등 화학제품 및 섬유제품을 중심으로 21개 품목이 2013년에 신규로 진입했다. ‘20-50클럽’이라는 게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인구 5천만 명에 해당하는 나라들을 말한다. 우리는 2012년에 세계에서 7번째로 진입했다.”
“문화 부분에서도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 15년 전 싱가폴에서 열린 평생교육회의에 갔다가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려고 공항에 있는데 TV에서 한국 드라마가 나왔다. 12년 전에는 베트남에서 김남주가 나오는 한국 드라마가 대 유행, 김남주가 광고모델로 나온 화장품이 대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번영을 소개한 박 교수는 이야기를 ‘성장의 그늘’로 돌렸다. 그는 사실상 이 부분을 더 부각시켰다.
“우리는 왜 사는가?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한가? 지금 우리 사회는 회복탄력성 상실 지경에 이르렀다. 2015년 OECD 삶의 지수 발표에 따르면 삶의 만족도 지수가 34개국 가운데 27위다. 2011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 따르면 사회의 질 지수가 39개국 가운데 28위다. 2011년 기준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사회갈등지수 톱10에 한국은 5위에 자리 잡고 있다.”
“범죄율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11년째 자살율 1위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공교육이 무너졌다. 교실이 무너진 것이다. 소득격차가 심각하다. 상위 10%가 대한민국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 절대 빈곤층이 많으면 국가재정이 어려운데, 기초생활 수급대상가구가 135만이다. 그런데 외제차 타고 다니면서 기초생활수급대상인 경우도 있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 키워드인 신뢰도가 낮아 갈등이 심각하다. 쇠고기 파동 때 돈으로 6조~7조 가까이 손실이 발생했다. 천성산 터널과 관련, 지율스님이 도룡용 때문에 단식투쟁을 했고 6개월간 공사가 중단되면서 3,700억이 날라 갔다. 갈등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므로 갈등지수를 낮춰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이익집단이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 정부 정책 집행이 쉽지 않다. 또 대한민국은 여전히 관료 사회다. 부처 이기주의가 심각하다.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보수시민단체와 진보시민단체가 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 2000년을 기준으로 서로 적대적으로 변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얘기한다. 차이를 틀린 것으로 생각한다. 나 같은 중도통합론자는 설 자리가 없다. 내가 청와대에 들어갈 때 극우 쪽에서는 나를 빨갱이 취급했다. 진보 쪽에서는 오히려 조용했다. 서로가 다른 것을 용납 못하는 사회, 중도가 용납 안 되는 사회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공무원 사회에 현장중심주의가 강화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사회통합수석 당시 있었던 일화를 전했다.
“장관들이 하도 현장을 안가니, 대통령이 고민을 하다가 현장에 가서 한 일들을 동영상으로 찍어온 뒤에 국무회의를 할 때 5분간 돌려서 보고하도록 했다. 처음 동영상 보고에 대통령도 아주 만족했다. 그러면서 계속 하는 것으로 됐다. 그 당시에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대통령은 현장주의자이다.”
박 교수가 현장주의를 얘기한 것은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선입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그대로 봐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중도통합론 가치가 담겨있다.
그는 이어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저개발국의 경우 국부의 창출에 천연자원의 비중이 중요하지만 선진국일수록 천연자원이나 인적자원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본(사회적 자본)이 중요하다”면서 “한국의 사회적 자본은 OECD 선진국들의 1/3 수준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Quantity(양) 중심→Quality(질) 중심 △공급자 위주→수요자 위주 △Top-Down 방식 집행→Bottom-Up 방식 집행 △결과 중시→과정과 절차 중시 등으로 가치 페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성과주의가 아닌 과정과 절차가 더 중요하다. 이와 관련, 현행 단임제에 반대한다. 5년 만에 성과를 내려고 서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긍정성, △개방성, △청렴성, △신뢰성, △통합성이 중요하다. 자신의 의견을 강압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주입식 교육은 안 된다. 토론하는 문화를 키워야 한다.”
흥사단 이사장을 역임한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민족 3대 자본 저축론을 전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
한편, 박 교수는 이날 강연 초입에 인터넷 상에서 돌고 있는 ‘95세 생일’ 얘기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전문직에 종사했던 한 남자가 65세 때 정년을 맞이하자 주변에서 컨설팅 또는 고문역을 요구 했지만 이 남자는 이를 뿌리치고 휴식을 선택했고 이후 95세 생일상을 받고는 지난 30년 간 한 일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여전히 몸은 건강한데도 30년을 그냥 보낸 것이다. 이에 앞으로 105세까지 산다는 예상으로 학습 계획을 세웠다는 얘기이다. 학습 의지는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국가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이 부분이 낮으면 성장 속도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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