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생존비와 생활비…국민적 관심,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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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생존비와 생활비…국민적 관심, ‘절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7.15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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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문제 해결 키는 국민, 관심과 감시 필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저임금법 제1조에 따르면, 최저임금제는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제정됐다. 그러나 이 제도는 본래의 취지를 상실한지 오래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최저임금은 ‘생활비’라기보다 ‘생존비’에 가깝기 때문이다. 2016년 최저임금 6030원을 기준으로 하루 8시간씩 26일치(22일 + 주휴수당) 임금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최저임금 수령자가 한 달에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약 126만 원이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126만 원으로는 ‘생존’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 노량진 고시원에는 고시생만큼이나 돈이 없어 단칸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 시사오늘

생존비와 생활비 사이

김지연(20·가명) 씨는 한 편집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린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해 서울로 올라왔다는 그는 언젠가 9급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스무 살 여성이 미래를 준비하기에,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연 씨는 노량진에 위치한 월세 35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생활한다. 하루 식비는 만 원이다. 2000원 내외로 빵과 우유를 사서 아침을 때우고, 7~8천 원을 잘 분배해서 점심식사와 저녁식사에 쓴다. 또 통신비로 4만5000원이 빠져나가고, 출퇴근 교통비에 5만5000원이 든다. 여기에 각종 생필품 구입비용을 더하면 어느덧 80만 원을 훌쩍 넘어선다.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필수 지출만으로도 월 소득의 70%가 사라지는 셈이다.

만약 몸이라도 아파 병원이라도 찾을 경우에는 진료비와 약값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 흔한 커피 한 잔 마시지 않아도 텅텅 비어버리는 통장 앞에, 취미 생활이나 자기 계발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정말 아끼거든요. 원래는 고시원도 30만 원짜리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거기는 화장실이 없다고(공용화장실) 해서 좀 더 좋은 데로 찾았어요. 한 푼이라도 아껴서 공무원 학원 등록하려고 옷이나 신발도 남대문시장 가서 싼 걸로만 골라 사요. 거기 가면 옷은 한 만 원 이만 원, 신발도 이삼만 원이면 살 수 있거든요.”

“친구들 만나면 밥도 먹어야 되고 커피도 마셔야 되고 영화도 봐야 되니까 거의 안 만나려고 해요. 근데 이렇게 해도 돈이 안 모여요. 한 일 년 마음잡고 공부하려면 아무리 아껴도 700~800만 원은 필요하다는데, 10년은 모아야 되겠네요.”

그나마 지연 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식당에서 일하는 현주(23·가명) 씨는 지연 씨와 똑같이 하루 8시간씩 주5일을 근무한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후, 현주 씨가 손에 쥐는 돈은 채 100만 원이 안 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주5일을 하루 8시간씩 꼬박 일하는 그는 한 달에 126만 원을 벌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55조와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30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1주 동안 개근한 자에게 하루의 유급휴일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한 달 최저임금을 126만 원은, 근로일(22일)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하루씩 주어지는 유급휴일(4일)까지 월수입에 포함한 액수다.

그러나 현주 씨는 유급휴일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는 6030원에 8시간과 22일을 곱한 값인 106만 원을 기준으로 한 달의 계획을 세웠다. 심지어 ‘꺾기’를 당하는 탓에, 100만 원도 못 버는 달이 허다하다고 했다. ‘꺾기’란 손님이 없을 때 사용자가 아르바이트생을 강제 퇴근시켜 남는 시간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편법을 말한다. 현주 씨는 14일 홍대입구역 근처의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커피 한 잔 못 사드려 죄송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남는 게 없어요. 관리비 아껴보려고 한 명 겨우 들어가는 고시원에서 살고, 고시생들 틈에 껴서 3700원짜리 밥 먹으면서 사는데도 매달 적자예요. 핸드폰값(통신비) 아끼려고 공공 와이파이 찾아서 죽치고 앉아있기도 하고, 돈 아끼려고 친구도 안 만나고, 축의금 아까워서 친구 결혼식에도 안 가는데 커피 한 잔 마실 돈도 없네요.”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당연한 귀결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현재의 최저임금으로는 생존 외에 그 어떤 것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계조차 꾸려나가기 어려운 최저임금으로 취미 활동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가정을 꾸리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사용자 측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임금 상승분을 감당하지 못한 영세기업이 줄도산할 것이며, 문을 닫지 않더라도 인건비를 크게 늘릴 수 없는 기업들은 임금 총액을 유지하기 위해 인력을 줄일 것이라는 논리다. 

▲ 최저임금이 시장임금 이상으로 높아지면 노동수요가 후퇴해 고용이 감소한다 ⓒ 시사오늘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최저임금이 시장임금 이상으로 높아지면 노동수요가 후퇴해 고용이 감소한다. 최저임금의 상승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노동수요 하락폭은 더 커진다. 만약 기업이 최저임금 상승분만큼 총 임금을 인상시키지 않고 동결시키면, 고용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사용자 측 주장이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5월 열린 ‘정치권의 최저임금 인상경쟁과 그 폐해’ 세미나에서 “정치권 공약처럼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 원으로 인상시킬 경우, 현재 최저임금 6030원과 시간당 1만 원 사이에 분포하는 약 618만 명 근로자에 대해 최저임금 탄력성을 적용해보면 이들 일자리 중 약 24만 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노동자 측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궁극적으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역설한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 소비 + 저축’이다. 여기서 임금이 증가하면 가처분소득도 증가하고, 가처분소득이 증가하면 소비와 저축도 증가하므로 내수가 활성화되며 투자도 늘어난다. 즉, 최저임금의 상승은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를 유발하므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이야기다.

김철환 아주대 교수는 저서 ‘경제를 살리는 경제민주화’에서 “기업 입장에서 임금은 상품 생산에 투입되는 비용이지만, 그와 동시에 임금은 생산한 상품에 대한 소비의 원천”이라며 “실질 임금의 정체나 하락이 생산된 상품의 수요를 감소시키고, 그로 인해 경제 불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댈 곳은 오직 정치,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

제20대 총선 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제20대 국회 임기 내에 8000~9000원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이 1만 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이 13.5%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 12일 대한민국 최저임금위원회 정부 측 대표 공익위원들은 2017년도 최저임금 중재안(심의 촉진구간)으로 6253원~6838원을 제시했다. 올해 시급 6030원 대비 3.7~13.4% 인상률이다. 관행적으로 최저임금은 중재안의 중간값 수준에서 결정돼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2017년 최저임금은 6500원 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인상률 8%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을 공익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노동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매년 최저임금을 정하게 돼있다. 문제는 공익위원을 정부에서 추천한다는 점이다.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양자의 협상에서 접점을 찾을 확률은 높지 않으므로 결국 공은 공익위원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공익위원이 정부 추천 인사로 구성되다 보니 파격적인 최저임금 인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시스템에서 정치권이 약속했던 13.5%의 임금인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 매 국회 때마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지만 상임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 시사오늘

이런 시스템상의 맹점을 제거하려면 국회의 노력이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최저임금 결정권을 국회에 넘겨주고 ‘국민의 뜻’을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최저임금심의위원회 내 공익위원들은 정부가 추천한 인사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며 최저임금을 국회가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국회에만 모든 것을 맡기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몇몇 국회의원들이 오래 전부터 최저임금법 개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나, 이들이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상임위조차 통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저임금 결정과 고시를 앞두고 뜨거워진 관심이 발표와 동시에 사그라지고, 법안도 자연스럽게 폐기되는 과정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 문제 해결의 키는 국민이 쥐고 있다”며 “국회는 ‘감시하지 않는 주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최저임금이 ‘땀 흘려 일한 사람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기능할 수 있으려면,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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