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경북 성주/오지혜 기자)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3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군을 찾았다. 원내 정당 중 마지막 방문으로 당론 미확정 등 논란이 예상됐으나, 오히려 큰 환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이날 군민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일부 의원이 "이때까지 민주당은 빨갱이라고 생각했죠?"라고 묻자, 군민들이 웃으며 "미안합니다"라고 답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시사오늘>이 이날 직접 찾은 성주군은 조그마한 거리에 가게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평범한 동네였다.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동시에 중국의 군사동향까지 파악할 수 있어 동북아 정세를 뒤흔들고 있는 사드배치 예정지라는 점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성주군민 동의없는 사드배치 무효', '生命의 고을에 死드가 웬말이냐' 등 군청으로 들어서는 거리에 빼곡히 걸린 현수막들이 지역사회에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줬다.
성주군은 이날로 22일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군청 건물 주변에서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자, 파란 리본을 가슴에 단 50대 여성 군민이 "서울에서 취재 왔느냐"며 말을 걸었다.
요즘 분위기를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여전하다"라고 대답하면서 "서울로 올라가는 차편이 금방 끊기니 승차시간을 확인하라"며 조언하고서 자리를 떴다.
파란 리본은 지난달 21일 성주군이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한 사드배치 상경 집회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궁극적으로는 사드배치를 반대하고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겠다는 뜻이지만, 일각에서 제기된 '외부세력 개입설'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군의회 건물 앞에는 외부세력 개입을 제기한 특정 일간지를 겨냥, '눈에 띄면 직이뿐다'는 '살벌한' 현수막과 함께, 근조 화한으로 꾸민 '근조 새누리당'이라는 모형도 보였다.
앞서 성주군민들은 지난달 26일 새누리당 지도부의 방문 당시 '장례식 퍼포먼스'를 펼쳤다. 군민 200여 명은 이날 "우리의 마음에서 새누리는 죽었다"면서 여당 전통 텃밭의 민심 이반을 예고한 바 있다.
오후 4시 반경,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군청 마당에 모습을 보이면서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이번 방문에는 김한정·김현권·박주민·소병훈·손혜원·안민석·이상민·표창원 의원과 김홍걸 전 국민통합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앞서 이들은 오후 1시 서울을 출발, 오후 3시 사드배치 지역인 성산포대를 현장 방문해 국방부의 브리핑을 듣는 것으로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더민주 의원들이 취재진 요청으로 군청 건물 앞에서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에 대한 간단한 입장을 밝힌 뒤 단체사진을 촬영하자, 일부 군민이 "사진 찍어봐야 소용없다"고 외치기도 했다.
김항곤 성주군수를 비롯해 삭발한 머리에 '사드배치 반대'라는 파란 머리띠를 두른 군청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로 들어선 의원들은 "군민들이 질서를 지키며 시위를 잘 해내고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에 김 군수는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라며 "군 전체의 문제인데, 다른 방법이 없다"고 대답하는 등 사드배치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는 분위기였다.
곧바로 군청 대강당으로 옮겨 진행된 성주대책위 면담에는 더민주의 방문에 대한 군민들의 환대가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표현됐다.
이날 면담에 참여한 군 대책위원 200명과 일반 군민 50명은 의원들이 등장하자 큰 박수를 쏟아냈다. '뿌리깊은 민주 정당, 그 뿌리를 잊지말라'는 피켓 등과 태극기를 흔드는 이들도 보였다.
면담의 중심은 예상대로 사드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확정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앞서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비롯한 더민주 지도부는 사드배치에 대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며 조건부 찬성을 표명, 당내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면담에 참여한 일부 의원들은 "당내에서도 대다수 인사들이 사드배치에 반대하고 있다"며 "현재 지도부는 비상대책위로, 당원이 선발한 게 아니다"라며 김종인 대표가 물러나면 당론 역시 반대로 확정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소병훈 의원은 이 자리에서 "오늘은 우리가 지도부를 대신해서 왔다"면서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의원총회 거치고 당내 의견이 하나로 모아질 때가 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김현권 의원이 "당에서도 대세가 결정 난 것 같은데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안 되느냐"며 덧붙여, 방청하고 있는 군민들이 환호했다.
표창원 의원은 "지금 더민주는 겁쟁이가 됐다. 종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동안 노력한 모든 것을 잃고 정권교체 못 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분도 저희들을 '저 종북들, 정부여당 발목만 잡는다'고 보셨을 것"이라고 말하자, 군민들이 한목소리로 "미안합니다. 이제 바뀌었습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어 표 의원은 "지금은 민주정당으로서 당원의 대표로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부 형태가 아니다"라며 "겁쟁이 같은 우리 당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 다들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면담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이 가운데, 전통 지지 정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날선 비판 발언과 함께 더민주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들도 이어졌다.
성산포대 300미터 아래에서 한우를 키운다고 밝힌 한 군민은 "새누리당 의원 중에는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 자기 지역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엄청난 애국자가 있었다"며 "저희가 봤을 때 대한민국에 사드 최적지는 없다. 더민주에도 이같은 주장을 하는 의원은 없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김현권 의원이 "더민주에 그런 '택도 없는' 의원은 없다"고 답하자, 방청객에서는 박수와 함께 "새누리당 장례 치렀다", "더민주도 치르기 전에 꼭 정신 차려달라"는 목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이 가운데, 수많은 취재진 사이에 중국 국영방송 CCTV의 모습도 보였다.
박주민 의원은 '미군이 사드배치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에 "소파나 한미 방위조약을 살펴보면, 미국에서 무기를 도입하는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전혀 막지 못하게 돼 있다"며 "더민주는 수년째 한미 관계를 좀 더 동등한 관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홍걸 전 국민통합위원장은 이날 면담 직후 <시사오늘>과 만나 성주군민의 환대에 대해 "워낙 상황이 절박하니까 외부에서 누구든 동참하겠다고 한다면 반가우신 것"이라며 "현장 방문을 해보니 생각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또 향후 더민주의 입장에 대해서는 "일단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당론이 결정된다고 보는데 그전에라도 하루빨리 적극적으로 사드배치 반대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더민주 의원들은 이날 저녁 군청 앞마당에서 진행된 '성주군민 촛불문화제'에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좌우명 : 本立道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