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바지'가 필요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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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바지'가 필요한 대한민국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8.21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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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권위주의 만연한 사회,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민생투어 때 손빨래를 하고 있는 장면 ⓒ 김무성 의원 SNS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4일 전국 민생투어 차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경남 거제를 방문해 대계마을 마을회관에 머물면서 '난닝구'를 입고 직접 빨래를 하는 사진을 SNS에 게시해 인터넷에서 이목을 끌었다. 

여권의 텃밭이자 정치적 아버지 YS의 고향 거제에서 구민주당 정치의 상징 난닝구 차림으로 빨래하고 있는 김 전 대표의 모습을 보니, 그가 어떤 생각으로 이 같은 사진을 게시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서민 코스프레 그만하고 정치나 제대로 하라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김 전 대표가 금수저 출신인 데다, 권위적 이미지가 강한 정치인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자는 김 전 대표가 민생투어 대신 차라리 '백바지'를 입고 국회에 등원하는 등 권위주의 타파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바지를 입은 김무성'은 권위주의가 만연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분명 큰 반향을 일으켰을 것이다.

군부정권을 종식시킨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민주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우리 사회에는 탈(脫)권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YS는 대대적인 제도 개혁을 통해 오랜 권위주의적 지배를 청산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이를 수평적으로 계승한 DJ(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역주의 극복과 남북평화를 앞세워 구시대의 권위적 사고 해소에 기여했다. 탈권위에 방점을 찍은 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시민권력의 힘으로 탄생한 참여정부는 정치개혁을 통한 권위주의 타파와 시민권력 성장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정권 차원의 탈권위 시도는 한계가 뚜렷했다. 제도개혁만으로는 의식을 바꿀 수 없다. 아래에서 위로가 아닌, 위에서 아래로의 권위주의 타파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였다.

이는 되레 권위주의가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드는 계기가 됐다. 겉으로는 수평적인 가치기준을 지향한다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사고방식이 더욱 깊게 뿌리 내린 것이다.

얼마 전 '민중은 개·돼지'라는 한 고위 공무원의 발언은 우리 국민들 모두를 공분케 했다. 하지만 분노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을 개·돼지만도 못한 인간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각종 횡포를 저지르며 경비원 위에 군림하려 들었고, 최저임금조차 준수하지 않는 자영업자들이 아르바이트생을 핍박했다. 사회의 모범이 돼야 할 대학교수는 제자들에게 인분을 먹였다.

막강한 자본의 힘을 권위로 내세워 갑질을 벌이는 일도 날이 갈수록 자주 목격되고 있다.

'땅콩회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경비원을 폭행해 물의를 일으킨 정우현 미스터피자(MPK)그룹 회장, 운전기사에게 폭언한 김만식 전 몽고식품 명예회장, 최재호 무학 회장, 항공사 직원을 폭행한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등은 막대한 부를 악용해 을(乙)을 모독하고 괄시했다.

모두 사회적 지위나 위치가, 경제력이 자신에게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그릇된 권위주의적 사고에 기인한 작태였다.

급기야 근래에는 탈권위를 위한 사회 자정작용조차 권위주의에 매몰된 모양새다.

최근 다수의 경찰 간부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하 여경에게 성적 모욕감을 준 사실이 밝혀졌다. 충북의 한 경찰서에서는 상급자가 회식 자리에서 여경에게 춤을 요구하며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고 한다. 경남의 한 경찰서에서는 여경에게 강제로 입맞춤한 상급자가 파면됐다. 권위주의로 인한 위법 행위를 근절해야 할 민중의 지팡이들이 오히려 권위적 횡포를 일삼고 있던 것이다.

▲ 우리 생활과 일상 속에서 권위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 셔터스톡

이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이제 아래로부터의 탈권위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그 시발점은 우선 정치인들이 마련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권위주의의 청산은 그 자체로 완결된 목표가 아니라 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강한 개혁 의지를 가진 정치인의 출현, 그에 대한 시민의 강력한 지지, 그리고 능동적인 사회의식 변화가 수차례 반복돼야 점진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백바지'가 필요하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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