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종희 기자]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놓고 ‘알쏭달쏭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권 잠룡으로 빈도 높게 거론되지만 정작 본인은 대선출마와 관련해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모습을 놓고 ‘학자 출신이어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한다.
22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는 동반성장연구소가 지난 2013년 5월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동반성장포럼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인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이 걸어온 길’이라는 주제로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그 동안 초청인사가 동반성장과 관련한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해왔던 것과 다른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과 관련해 그 동안 수모를 많이 당하면서 일 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동반성장 사회 건설을 앞당기는 게 내 인생의 목표”라며 계속 정진할 것임을 다짐했다. 그러면서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했다.
정 전 총리는 강연 중간에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친이 사망한 것과 도시락을 못 싸가서 점심 시간에는 늘상 학교 뒷산을 올랐고 그 덕분에 체력이 강해진 점 등을 농담 삼아 얘기했다. 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고 했는데 친구 부모의 소개로 만난 스코필드 박사의 도움으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고도 전했다. 그러면서 “그 때 그 친구가 없었다면 초등학교만 졸업해서 정주영 명예회장처럼 큰 기업가가 됐었을 것”이라고 말해 좌중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정 전 총리는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것과 관련, “당시에 친구들은 ‘왜 이명박 정부에 들어가느냐’며 부정적으로 물어왔다”며 “나는 그 때 ‘양극화 완화와 남북관계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그랬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는 동반성장의 뜻을 펼치는 과정과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수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하지만 관련 인사들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고 ‘어떤 사람’ ‘어떤 정치인’이라고만 표현했다. 듣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 전 총리는 '경제민주화' 정의를 묻는 질문에는 명확히 대답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납품계약을 맺을 때 중소기업 관계자가 대기업이 내놓은 조건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마음 편히 거절할 수 있는 환경이 경제민주화’라는 것이다.
그는 이미 1990년에 출간한 <도전받는 한국경제>라는 책에서 경제민주화의 정의를 밝힌 바 있다. 요즘 ‘경제민주화’ 하면 마치 그것에 대한 독점권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있는 것처럼 얘기되지만 그건 정말 잘못된 인식이다.
이날 세미나에는 기업관계자는 물론, 학계, 관계, 교육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해 정 전 총리의 얘기를 들었다. 기자 옆 자리에 앉은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정 전 총리에 대해 “공직생활을 거친 사람 중에 변하지 않고 여전히 착하게 남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공직생활을 거치면 사람이 안 좋게 변하는 게 일반적인데 정말로 드물게 정 전 총리는 예전 모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 전 총리를 놓고 ‘우유부단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에게는 ‘진정성’이라는 덕목이 있다. 이 진정성이 함부로 자신의 거취를 밝히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정성이라는 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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