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강의실로 들어오던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강연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학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눈 그는, “최고의 강의는 강연자가 30분 늦게 들어와서 30분 동안 왜 늦게 들어왔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또 30분 동안 왜 빨리 나가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한 뒤 30분 먼저 끝내는 강의”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서 “명강의가 되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1일 국민대학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선 이 의원은 90분짜리 강의 시간을 꽉 채우고도 시간이 부족했는지 학생들에게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강의가 끝난 시각은 저녁 8시 35분. 원래 약속된 시각에서 20분이 더 지난 때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얼굴에서 지루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헌법 제1조 제2항’ 이야기를 시작으로 110분간 계속된 이 의원의 강연에는 오랜 고민에서 나온 아이디어와 4선 정치인답지 않은 열정이 모두 살아 있었다.
정치 발전하려면 국민이 잘 감시해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이 살아 숨 쉬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 말이다.”
이 의원은 강연을 시작하자마자 헌법 제1조 제2항 이야기를 꺼냈다. 대한민국 주권자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현 시스템이 국민의 주권 행사를 어렵게 한다는 설명이었다.
“헌법 제1조 제2항이 잘 지켜지게 하려면 우선 국민들이 잘 뽑아야 한다. 그런데 아마 대부분은 뽑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뽑아야 하는데, 막상 투표를 하려고 하면 진품과 모조품 구별이 쉽지 않다. 같은 진품이어도 성능이 천양지차다. 고르기도 어렵고, 골랐는데 잘못 고를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뽑은 이후에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잘하고 있는지, 내 뜻에 맞게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끊임없이 요구하고, 또 어떨 때는 분노도 뿜어줘야 한다. 욕만 하고 그치면 안 된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국민의 더 활발한 정치 참여를 촉구했다.
“어떤 분이 그러더라. ‘그렇게 부지런히 공부도 하고 감시도 할 바에야 내가 직접 국회의원 하지 뭐 하러 다른 사람을 뽑겠나’라고. 바로 그거다. 뽑아 놓은 사람이 제대로 못하면 갈아치우고 직접 해야 한다. 내가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면서 이런 저런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다. 그분들께 ‘선거 출마 하셔서 함께 정치를 바꿔보자’고 권하면 안 하겠다고 한다. 이러면 인재풀이 제한된다. 믿을 만한 인물이 안 나오고, ‘그놈이 그놈’ 되는 거다.”
정치도 서비스, 마음에 안 들면 ‘리콜’해야
이 의원은 또 유권자 뜻에 안 맞는 정치인은 ‘리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도 서비스’라며 유권자에게 ‘리모컨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최순실 사태를 보면 정치인들이 대통령 퇴진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시민들은 물러나라고 하는데 정치권은 망설이고 있다. 당장 우리 당부터 정치 공학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모든 건 유권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요즘 개헌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나도 개헌에 찬성한다. 하지만 내 개헌론은 ‘국민에게 선택권을 돌려주자’는 차원이다. 선출직은 언제나 늘 본인이 교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임기가 보장되면 안 된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체제가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서비스고 정치인은 상품이다. 소비자가 마음에 안 들면 리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TV를 볼 때도 리모컨을 갖고 있으면 1번 보다가 재미없으면 2번 보고 하지 않나. 그러니까 1번 채널 2번 채널이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 더 유익한 프로그램 만들려고 경쟁을 한다. 정치도 그래야 한다. 선출직에게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긴장감을 줘야 국민을 바라보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대선거구제 채택해 독과점 구조 깨야
이 의원은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변경 필요성을 주장했다.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소수 정당의 권력 독과점이 불가피하므로,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다당제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국민의당에서는 자신들이 양당의 독과점 구조를 희석시키고 완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도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독과점 구조다. 최소 5~6당 정도로는 쪼개져야 독과점이 깨진다. 유권자가 어떤 때는 짬뽕, 어떤 때는 자장면, 어떤 때는 짬짜면을 골라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연합정치도 가능해진다. 지금 대전 같은 경우도 국회의원을 7명 뽑는데, 선거구마다 한 명씩 뽑다 보니까 all or nothing이 된다. 이러면 안 된다. 한꺼번에 뽑으면 특정 정당이 3명 이상 당선될 수가 없다. 그러면 4~5당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걸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동시에 비례대표를 늘리면 진정한 다당제가 된다. 연합정치도 가능해진다.”
“5~6개 당이 합종연횡을 통해 국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면 소수당도 책임감을 갖게 된다. 지금 체제에서는 거대 여당, 거대 야당은 자기 지지자들만 바라보고 움직이니까 합의가 불가능하고, 소수당은 책임감 없이 극단적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이래서는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5~6개 당이 사안에 따라 협력하고, 또 경쟁하게 만들어야 합의도, 연합도 가능해진다. 결국은 비례대표가 확대돼야 하지만, 당장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으니 과도기적 대안으로 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거다.”
정치의 세 가지 역할
마지막으로 이 의원은 정치의 역할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저는 국민의 요구는 ‘정치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정치’를 하자는 게 내 주장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한다는 건 세 가지라고 본다. 첫 번째는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 두 번째는 저마다 국민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대변 능력과 해결 능력을 증명해보이면 국민들이 정치인을 믿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신뢰를 얻고 나면 세 번째, 메시아적 기능을 해야 한다.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정치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더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