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노동4법’ 입법이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여야 간사들의 논의를 통해 노동개혁 4대 법안을 법안심사소위 안건으로 다루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정부가 3년 넘게 공을 들여온 노동개혁은 제대로 논의조차 해보지 못하고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당초 새누리당은 노동4법 처리에 강경한 입장이었다. 제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1호 당론법안’으로 노동4법을 제출하고, 정진석 원내대표가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며 조속한 처리를 주장하는 등 의욕을 보였다. 심지어 정 원내대표는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간을 연장해달라는 야3당의 요구를 노동4법과 연계시킬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노동개혁이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출연 과정에서 ‘대가성’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노사정 협상 재개를 요구한 것과 대기업 총수들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에 나섰던 시점이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노동개혁 추진의 진정성은 더욱 퇴색됐다.
특히 노동4법 중 최대 쟁점으로 부각된 파견법은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 뿌리산업 파견 허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뿌리산업이란 주조·금형·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 등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산업으로, 그동안 대기업은 뿌리산업 노동자를 ‘불법파견’ 형태로 고용해 문제가 돼왔다. 노동4법이 대기업의 불법파견을 합법화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실제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노사정 합의 명분만 쌓고 정부여당이 제멋대로 추진하는 행태를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재계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헌납한 대가로 노동개혁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지금은 이해가 된다”며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출연 과정에서 현대차와 암묵적인 무언가가 있었다는 게 검찰수사에서 나오고 있는데, 파견법 개정안은 현대차가 그동안 시달려 온 불법파견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라고 노동4법과 최순실 게이트를 연관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4법과 최순실 게이트 연관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부여당은 더 이상 노동4법을 추진한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장관직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노동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노동개혁이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출연 ‘민원 처리’ 차원에서 추진됐다는 의심이 커진 만큼 정권 초기와 같은 드라이브를 걸기는 어려워진 까닭이다. 고용노동부 내에서도 ‘이제는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기류가 팽배하다는 전언이다.
23일 〈시사오늘〉과 만난 여당 측 관계자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가 노동개혁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겠느냐”라며 “(최순실 게이트 이후) 이제 정부여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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