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유경표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4대 그룹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과 관련,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정위가 가진 권한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김 위원장이 ‘기업 달래기’를 통해 자발적 변화를 주문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 경영에 대한 ‘적폐청산’을 내세운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제안한 이번 만남이 자유로운 ‘대화의 장'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재계는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번주 중 가능하면 4대 그룹(삼성ㆍ현대차ㆍSKㆍLG)과의 만남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4대 그룹에 대해 법 집행을 엄격히 하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취지를 설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다만 “재벌개혁은 일회적인 몰아치기식이 돼선 안 된다“며 ”재계와의 소통을 통해 대기업집단이 사회와 시장이 기대하는 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과 4대 그룹의 만남은 대한상의가 주도적으로 나선다. 그간 경제단체의 ‘맡형’ 역할을 해 왔던 전경련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책임이 있는 만큼, 문재인 정부 체제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양상이다.
이날 대한상의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4대 그룹의 만남은 오는 22일이나 23일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각 그룹 계열사 전문경영인 내지는 핵심 임원 등과 만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남이 성사될 지는 미지수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과의 만남을 정례화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재계 인사와의 만남에는 피할 수 없는 위험이 있다”면서 “전 정부가 겪었던 국정농단 사태는 바로 재계 인사와의 부적절한 미팅 속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 정부가 3개월에 한 번씩 기업 총수들을 초청해 상생협의를 하곤 했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김 위원장은 필요에 따라 다수의 기업관계자와 정부 관계자가 만나는 계기는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도, 그것에 중점을 두고 기업정책에 반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 대기업들 "괜한 얘기했다가 미운털 박힐라.." 일방통행식 소통에 그칠 우려
‘재벌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했던 김 위원장이 갑작스레 4대 그룹과의 ‘대화’ 카드를 빼든 배경에는 ‘기업 달래기’를 통해 재계의 자발적 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공정위가 가진 권한의 한계와도 무관치않다.
김 위원장은 앞서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공정거래조정원 대회의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업집단과 조직을 '과'에서 '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사실상의 조사국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거 ‘재계 저승사자’로 불린 조사국은 김대중 정부 시절 설치돼 악명을 떨쳤다. 이후 노무현 정부때인 2005년 과도한 기업규제 논란으로 폐지됐다.
기업집단국은 대기업 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지주회사 전환, 지배구조 개선 등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기업집단국 신설에 필요한 인력은 50여명 규모로, 공정위 전체 직원의 10%에 이른다. 이를 충원하기 위해 행정자치부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또한 예산 확보와 관련해선 기획재정부와의 조율도 필요하다.
나아가 여소야대 정국에서 공정위가 원하는 개혁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공정위가 단기간 내 본격적인 ‘개혁드라이브’ 시동을 걸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20대 국회 출범 이후 발의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모두 52건으로, 이 중 상임위에서 처리한 법안은 단 3건에 불과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표적인 공정위의 한계로 지적되는 강제수사권 부재 문제도 있다. 비록 문재인 정부가 공정위에 힘을 실어주고는 있지만, 강제수사권의 부재는 조사의 ‘골든타임’을 맞추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반대로 공정위가 기업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규제로 압박을 가할 경우, 기업활동 위축으로 인한 경쟁력 하락은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김 위원장이 간과하기 어려운 고민거리다.
이 같은 어려움을 반영하듯 김 위원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공정위에서 기대하는 안의 반이라도 됐으면 다행이라는 심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재계는 김 위원장의 ‘소통’ 행보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경제단체로서 정부의 비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제시한 경총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사례가 있는데, 쌍방 간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기업들이 가뜩이나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서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얘기를 하려 하겠나. 아마 김 위원장만의 ‘일방통행식’ 대화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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