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태광-C&그룹 수사 ‘꽃놀이패’…국면전환 통한 레임덕 차단
드디어 MB가 국정주도권을 잡기 위한 칼날을 꺼내 들었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와 개헌 등을 각각 3년차 국정철학과 국정과제를 제시했던 MB는 이후 개헌안 각론을 놓고 여야 간 이전투구 현상으로 개헌 동력이 떨어지자 즉시 ‘추상적인 국정철학’을 ‘구체적인 국정과제’로 전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MB발 검풍(檢風)’이라 불리는 대기업 사정(司正)이 그것이다. 이 대통령은 국정 3년차를 며칠 앞둔 지난해 12월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0년도 법·질서 분야 업무보고’에서 “지도층부터 공직자, 고위직, 정치를 포함한 모든 지도자급의 비리를 없애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권력형 사회지도층이 저지른 범죄는 더 강력히(처벌해야) 생계로 힘들게 사는 서민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며 권력형 비리와 토착비리 근절 의지를 드러냈다.
이때부터 6·2 지방선거를 전후로 토착비리에 대한 사정기관들의 집중적인 수사 가능성이 정치권과 재계 등을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이후 국정 3년차를 맞은 MB는 언론과 국민들이 잊을만하면 토착-교육-권력비리 등 3대 비리척결을 강조하며 여론 추이를 살폈다.
실제 MB는 지난 2월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에서 “출범 3년차를 맞아 정부는 교육비리와 토착비리를 척결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 달라”고 말했고 3월 9일 국무회의에서도 “(비리 근절은) 한두 번에 그칠 일은 아니다. 일단 1차로 연말까지 각종 비리를 발본색원할 것”이라며 처음으로 비리척결 시기를 언급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6·2 지방선거 전후로 대대적인 사정을 위한 재벌 내사 리스트가 떠돌고 있다는 소문만 흘러나왔을 뿐 3대 비리 척결을 위한 MB와 사정당국의 본격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8월 30일 특수부장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국민은 강력한 법집행으로 사회질서와 국가기강을 바로잡기를 바란다”며 “지금까지는 여러 환경 때문에 검찰권 행사를 자제해 왔으나 향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하며 대기업 사정 분위기를 조성했고 이 자리에서 그는 대검 중수부가 구조적인 부패 비리를 척결하고 부정한 돈의 흐름을 차단해야한다고 역설, 대기업 사정이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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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잇따른 사정수사...정치적 함의는?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원곤)는 9월 5일 특별수사팀을 통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일가의 수사를 시작한데 이어 10월 13일 편법증여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던 태광그룹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단행, 본격적인 사정정국의 도래를 알렸다.
검찰이 한화그룹과 태광그룹의 비자금 의혹만을 수사할 때만해도 재계와 정치권에선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컸다.
이는 그간 비자금 온상으로 지적받았던 한화그룹의 비자금 수사는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태광그룹에 대한 비자금 수사는 MB정부의 2년차 국정과제였던 미디어법과 관련된 종합편성채널사용사업자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법적 근거도 없이 종합편성채널사업자에 지상파와 인접한 낮은 채널번호를 주겠다는 의중을 흘렸다.
이날 최 위원장은 ‘종편 예비사업자들이 지상파와 같은 좋은 채널번호를 희망하는데 방통위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는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효율적인 시청권을 위해 채널 선정에 대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과 협의할 것”이라며 “낮은 채널번호 부여가 방통위 권한은 아니지만 행정지도 차원에서 효율적인 채널 관리가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는 위헌소송도 불사하겠다며 사즉필생의 각오를 내비쳤고 종합편성채널사업자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간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달았다.
검찰은 최 위원장의 발언 다음날인 지난 13일 한화그룹에 이어 두 번째 대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그것도 그룹 계열사인 티브로드가 큐릭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의 상속재산을 편법으로 증여해 방송통신위원회와 정치권, 청와대 등에 수천억 원대
의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태광그룹을.
이는 MB정부가 종합편성채널사업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케이블 업계를 압박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전국 77개 유선방송권역 가운데 22개의 권역을 보유하고 있는, 굴지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태광그룹이 검찰의 사정 수사권에 걸려들자 위헌 소송을 불사하겠다던 케이블업계의 정부비판 동력은 일시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검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21일 사실상 파산 상태인 C&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한 가운데, 대검 중수부가 C&그룹에 대한 공개수사에 나선 지 하루 만에 임병석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재벌기업수사에 대한 속도전을 펼쳤다.
C&그룹은 2002∼2007년 공격적 인수·합병(M&A)을 통한 ‘초고속 성장’을 했다는 점에서 사정당국이 전(前)정권 인사들을 겨누기 위해 나섰다고 보는 시각이 급물살을 탄 시점도 이때부터다.
특히나 한화나 태광그룹은 제보에 의한 타의적 성격의 수사였다면 사실상 파산직전까지 몰린 C&그룹의 경우 대검이 오래전부터 내사해온 수사라는 점에서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각에선 당초 대검이 한화그룹을 타깃으로 삼았다가 전 정권 인사들의 연루사실이 없다고 판단해 서부지검으로 이첩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어 검찰의 사정수사는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년 4개월 만에 수사를 재개한 대검 중수부가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왜 이 같은 전 정권을 향한 릴레이 사정의 뉘앙스를 풍기는 것일까.
해석은 여러 가지로 분분하지만 하나의 방향타를 가지고 있다. 한화-태광-C&그룹 등에서 보듯이 세 곳 모두 전 정권인사의 연루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들의 검은 커넥션을 들춰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 정권만을 타깃으로 삼을 경우 이 대통령으로선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지만 3년차 국정철학인 공정한 사회에 부합한다는 점, 그리고 현 시점에서 정국 주도권을 잡지 못할 경우 사실상 MB식 정치의 기회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오는 11월 11일부터 시작될 G20 정상회의가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한 회의라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대통령은 C&그룹 사정수사의 워밍업을 통해 야권의 비판을 일시에 무력화시키는 효과까지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실제 C&그룹 살생부엔 현 야당 정치인 P의원과 L의원 등 3∼4명 등이 포함됐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그간 공정한 사회와 사정정국을 동일시하지 말고는 했지만 역대 정권마다 후반기 때는 국정동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며 “만일 청와대에서 목적을 갖고 한다면 범위가 예상 외로 커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하며 광범위한 사정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는 역대정권마다 4년차로 넘어가는 시기에 국정과제의 실패와 측근 비리 등이 맞물려 일어나면서 조기레임덕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결국 MB의 의도는 대기업 사정수사→국면전환→레임덕 방지→국정 주도권 장악→정권창출이라는 일련의 수순을 위한 다중포석일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게다가 그간 검찰이 수사를 할 때마다 ‘정치수사’ 내지 ‘권력의 시녀 ’운운하며 검찰과 청와대를 강하게 비판했던 반MB성향의 국민들도 이번만큼은 MB정부의 표적사정을 비판하기보단 재벌의 편법증여 및 비자금을 도려내기를 원한다는 점도 청와대로선 대기업 사정이 꽃놀이패 중 꽃놀이패일 수밖에 없다.
한편 정치권 안팎에선 정치인 사정 리스트가 떠돌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어 MB가 여론추이를 보면서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사정에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치인 사정 리스트엔 공천 헌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 친이계 중진의원과 친박계 의원, 그리고 재개발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민주당 유력 정치인 2∼3명이 포함됐다는 설이 파다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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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 ‘호남정권’ 정조준..친박 ‘침묵’
“수사자체를 어떻게 비판하겠나. 그러나 이번 (대기업)는 기업의 비자금 수사가 아닌 야권을 탄압하기 위한 정략적 차원의 수사다. 그간 수사를 할 때마다 피의사실을 공표해 야권 의원들을 상처내고 용두사미로 끝나는 검찰 형태, 표적·편파 수사 형태가 이번에도 검찰은 보일 것이다”
민주당 내 호남의 맏형 격이자 DJ의 적자를 강조하는 박주선 최고위원이 지난 22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이 말하며 발끈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이번 국정감사 과정에서 라응찬 회장의 차명계좌 50억,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자인 천신일 회장의 대우해양조선 로비 의혹과 해외도피, 선진국민연대 관련업체의 권력형 특혜대출 비리, 정권실세가 주도한 한국경제교육협회의 국민혈세 100억 원 특혜지원 등을 밝혀냈다”고 말하며 현 정권의 도덕성을 겨냥하며 파상공세를 펼쳤다.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 중 최근 검찰 수사와 관련된 발언을 한 지도부는 박주선 최고위원과 박지원 원내대표뿐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해석이 가능하다. MB의 대기업 사정이 호남정치인과 박지원 원내대표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
최근엔 대검 중수부가 직접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간 급성장세를 보인 C&그룹의 수사를 지휘하자 사실상 호남 살생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간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8·8 개각에서 MB發 세대교체론의 결정판이었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의 낙마를 주도하고 호남출신인 김황식 국무총리에 대한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며 일시에 MB정부 내각 임명의 주도권을 차지했던 박 원내대표의 활동반경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있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전 지사의 총리 낙마 이후 청와대가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검증 시스템 개선 의지를 피력하자 박 원내대표가 ‘청와대 인사청문회 비공개 제안설’을 흘리며 MB정부의 개혁안을 무력화시켰다.
또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영포회 배후설’, ‘시진핑 발언’ 파문 등에서 보듯이 청와대가 정국주도권을 잡을만하면 박 원내대표는 자신의 정보력을 십분 발휘하면서 청와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를 공격하기 위해 소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며 “여권 내부에선 박 원내대표에게 국정 주도권을 뺏기면 안 된다는 기류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자 지난 22일 국회 문방위의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은 “DJ정권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노무현 정권 시절 방송정책을 담당했던 양정철 청와대 비서관에 의해 의혹의 싹이 트는 등 태광의 큐릭스 인수의혹 몸통은 전 정권”이라며 “군인공제회 등의 큐릭스 인수는 2006년에 이뤄졌는데, 정권의 실 세없이 어떻게 900억 원이라는 돈을 투자할 수 있겠느냐”며 박 원내대표를 태광 비자금의 몸통으로 몰아세웠다.
같은 당 한선교 의원도 “박 원내대표의 측근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박 원내대표가 태광그룹 (급성장) 의혹의 시작인 2002년 당시 주무부처의 장관을 했다는 것에 과민반응을 하는 것을 보면 뭔가 있지 않나 의심스럽다”며 박지원=몸통 논란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권력 확대 승인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시행령을 승인한 것은 MB정부 이후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라며 “한나라당이 전 정권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케이블 TV자체를 도입한 김영삼 정권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과 같은 논리”라고 반박했다.
친이계의 목소리와는 달리 친박계는 조용하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 등으로 친이계 내부의 권력사유화 논쟁이 한창일 때도 침묵모드를 유지했던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친박계는 특유의 침묵정치를 재연하고 있다.
이는 최근 친이계와의 잇따른 접촉으로 인한 모종의 전략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황에서 미리 파열음을 낼 필요가 없다는 현실론부터 친이계와 야당의 치킨게임이 장기화될 경우 오히려 친박계가 치고 나갈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확보될 수 있다는 의중으로 보인다.
결국 MB로선 대기업 사정 수사를 통해 친이계의 정치적 활동공간을 넓혀주고
민주당 등 야당과 친박계, 반MB성향의 국민들 모두를 일시에 활동공간을 좁힐 수 있는 최적의 카드인 셈이다. 적어도 재벌의 비리 단절은 여야, 보수와 진보 모두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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