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사람은 똥을 싼다.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면 변(便)을 본다. 아마 배변할 때만큼 인간에게 자신이 평등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은 없으리라.
그러나 손과 입으로 똥을 싸는 경우는 다르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주변 사람들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고, 시쳇말로 '빅똥(大便)'을 쌌을 때는 사회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래도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순간의 빅똥으로 평생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면 이 또한 옳지 않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다.
<시사오늘>의 '박근홍의 대변인'은 우리 정재계에서 빅똥을 싼 인사들을 적극 '대변(代辯)'하는 코너다.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현대건설을 위한 최종변론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사업, 서울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 재건축사업 수주를 놓고 현대건설(대표이사 정수현)과 GS건설(지에스건설, 대표이사 임병용) 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이사비 지원'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대건설이 1가구당 무려 7000만 원 가량의 이사비를 무상 지원해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대건설은 상가 조합원의 경우 상가 인테리어 공사비 7000만 원까지 추가로 제공한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1세대당 최고 총 1억4000만 원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경쟁업체인 GS건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금품·향응 접대', '재산상 이익 제공 또는 제공 약속'에 해당된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현대건설은 이사비는 '자율적 지급 항목'인 데다, '공사비와 별도 제시'한 것이고, 시공사 선정 후 '전체 혜택'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는데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번 논란의 배경에 '열폭(열등감 폭발)', '피폭(피해의식 폭발)' 등 우리나라의 국민성이 깔려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인들은 남 잘되는 꼴을 못 봅니다. 특히 좁은 땅덩어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부동산 문제에는 아주 옹색하기 짝이 없어요.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왜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땅값 오르는 꼴을 못 본다는 의미지요.
서양에서는 어떻습니까. 19세기 미국 서부 지역에서 한창 '골드러시'가 일고 있을 때, 미국인들은 이웃집에서 금맥을 발견하면 오히려 축하해 줬습니다. 왜냐하면 이 근방에 또 다른 금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도 조금 더 노력하면 일확천금을 얻으리라고 생각한 겁니다.
이번 논란을 보세요. 서울 반포주공 1단지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재건축으로 집값이 대박난 것만으로도 덩실덩실 춤이 저절로 나오는데, 건설사에서 거액의 이사비까지 준다고 하잖아요. 금맥을 찾은 셈이지요.
그런데 주변에서 축하하는 목소리는커녕 '집값 상승의 주범이다', '강남 재건축 시장 전체를 불안하게 한다',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사회상규 위반이다' 등등 아주 다들 비판과 지적만 일삼고 있습니다.
아마 미국인들이라면 재건축 대박을 축하해 주면서, '역시 대한민국은 돈 벌려면 부동산 밖에 없어. 나도 투기나 한 번 열심히 해봐야 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저 배가 아파 어쩔 줄 모르는 한국인보다 똑똑한 국민성을 갖춘 것이지요.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런 민족성에 대해서는 아마 현대건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7년 전 현대건설을 놓고 정씨 일가와 현정은 계열이 아무런 경제논리 없이, 그저 '남 잘되는 꼴'을 보기 싫어서 치열한 인수전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국민성이 아주 잘 발현된 대표적인 예지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 논란이 이렇게 커진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다들 현대건설이 지원하는 이사비 7000만 원이 무상 지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봅니다.
현대건설은 이번 사업을 수주하게 되면 약 1600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이사비·인테리어비 명목으로 조합원들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그 천문학적인 돈을 어디서 메꾸겠습니까? 당연히 분양으로 메꾸겠죠.
이것 역시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정치권에서도 현대건설의 이사비 지원이 곧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고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말들이 들리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에서도 이 같은 점을 우려해 이사비 지원의 위법성을 검토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사비를 지원하는 대신, 분양가를 조금 올리는 게 뭐 크게 잘못된 일인가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습니까.
공짜 좋아하다가 대머리되는 거 아시지요? 반포주공 1단지 조합원이 상가 조합원까지 포함해서 총 2292명입니다. 설마 현대건설이 이분들 죄다 대머리로 만들겠습니까? 그거야말로 정말 거대한 사회적 논란이지요. 탈모는 '문재인 케어'에서도 제외됐어요. 진짜 큰일 납니다.
대한민국 기업들이 땅 파서 장사 절대 안 합니다. 물론, 건설업이야 땅을 파서 하는 장사이긴 합니다만, 실제로는 '파는(掘)' 것이 아니라 '파는(賣)' 거죠. 그런데 '팔 매(賣)'자에는 '속인다'는 뜻도 있답니다.
하지만 그게 죄입니까? 아니지요. 그걸 죄로 물을 요량이라면 정부에서 분양원가를 명확하게 공개하고, 분양가상한제를 제대로 시행했어야지요.
회사의 최고 덕목은 이윤 극대화입니다. 법망의 허술함을 이용해 이익을 창출하는 건 기업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그걸 최대한 막는 게 정치인들의 몫입니다. 이번 논란의 책임을 운운할 사람들은 현대건설 본사 앞이 아니라, 국회로 가셔야 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더욱이 이번 논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서울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 사업은 공사비 2조6411억 원, 총 사업비 8조 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 재건축 사업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들이 이번 사업의 귀추를 지켜보고 있답니다.
이에 현대건설은 고품격 아파트 브랜드 '디 에이치'(The H)를 통해 100년 장수 주택을 만들겠다고 나섰고, GS건설은 서울의 랜드마크, 나아가 아파트를 넘어선 세계적인 건축 작품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자랑이 될 공산이 큰 사업인데요. 이런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되면 자칫 사업성 자체가 크게 훼손될 수가 있습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됩니다. 모두가 도와줘야 합니다.
부디 이 같은 점들을 헤아려주셔서 현대건설을 향한 몰상식한 비난이 더 이상 증폭되지 않도록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고액의 이사비를 건설사가 무상 지원해 주는 것이 이번 사례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 역시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준비한 최종변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