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9 일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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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민 “국민의당과 연대?…안철수가 걸림돌”
기동민 국회의원
운동권에서 제도권으로, 김근태계로 정치입문
박원순은 여의도보다 행정가…3선 도전 확신
문재인 케어, 증세폭탄 근거없어…예산 충분
“정치는 더불어 함께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2017년 11월 11일 (토) 진행=최정아 기자 정진호 기자 / 정리=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진행=최정아 기자 정진호 기자 / 정리=김병묵 기자)

정치의 세계는 오묘해서, 다선 의원이지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면 초선, 혹은 원외에 있음에도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국회의원은 후자에 속한다. 기 의원은 지난 2014년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서울 동작구을 재보궐 선거에서 전략공천을 받으며, 본의 아니게 그리 유쾌하지 않은 유명세를 치렀다. 이후 20대 총선에서 화려하게 원내에 입성하고,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수행실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들과 함께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친근한 이미지도 쌓았다. 하지만 기 의원은 사실 이미 오랜기간 정치·행정 경험을 가진 정치의 프로다. 친근하지만 낯설고, 노련하지만 신선한 이미지를 가진 독특한 정치인, 기 의원을 만나기 위해 <시사오늘>은 9일 의원회관 921호를 찾아갔다.

   
▲ 내 젊은 시절 함장은 김근태였다. 나름의 정치적 승부수였다. 하지만 김 의장이 파킨슨병에 걸리고,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이제 내 운명이 달라진거다. ‘독립해야겠다. 김근태라는 그늘에 숨어서 편하게 살았는데, 이제 내 정치를 실현하고 김근태가 뿌려놓은 씨앗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계 입문은 어떻게 하게 됐나.

“내가 대학을 졸업한 시점이 1992년이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배 중에 처음 들어간 직장이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이라는 재야단체였다. 약칭 전국연합으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대학총학생회연합(전대협) 등이 참여해 결성했는데 거기서 총 실무자로 일했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정치의 중심이 여의도이긴 했지만 재야에도 정치적 중심이 꽤 있었다. 시민사회단체의 뿌리는 미약했었던 시절이다. 1998년까지 그곳에서 일하다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정권교체가 이뤄지니까 더 이상 의미있게 일할 동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제도권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이 서울시다. 그 해 6월에 서울시 정무부시장실에 입사했다. 그렇게 처음 제도권 정치와 연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론 김근태계로 분류된다.

“김근태 의장은 우리 운동권에선 그야말로 하늘같은 선배였다. 1992년에 내가 전국연합에서 일하고 있을 때, 출소해서 우리 상근실무자들을 격려하러 왔었다. 그런데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해주더라. 그 당시는 <말>지라든가, <길>과 같은 월간 시사잡지들이 상당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을 땐데, 내가 전대협 대변인 하면서 인터뷰 같은게 실린 걸 눈여겨 봤다고 한다. ‘이런 무명소졸까지 기억을 해주나’하고 생각했다. 이후에 이재정 현 경기교육감이 새천년 민주당 창당하는데 도와달라고 해서 국회 보좌관으로 들어왔다가, DJ의 국민의정부 말기엔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이제 김근태 의장이 원내대표를 할 때 원내대표실 차장으로 가게 된 거다. 이재정 의원실에 있을 때도 김 의장이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 나가자 한 달 정도 수행비서로 모시고 다닌 적도 있다. 김 의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할 때 정책보좌관으로 나가서 일하다가, 좀 일찍 나와서 대선 준비를 했었다. 그때의 심정은 이런 거다. 운동권의 내 또래들, 동지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직접 선출직으로 나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실무측에서 일꾼을 자처하면서 함선(艦船), 즉 조직을 튼튼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함장(艦長)을 국가권력으로 만드는 것, 대통령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건데, 나 같은 경우는 후자였다. 그리고 내 함장은 김근태였다. 나름 젊은 시절, 정치적 승부수였다. 하지만 김 의장이 파킨슨병에 걸리고,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이제 내 운명이 달라진거다. ‘독립해야겠다. 김근태라는 그늘에 숨어서 편하게 살았는데, 이제 내 정치를 실현하고 김근태가 뿌려놓은 씨앗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최근엔 ‘박원순 키즈’라고도 불리는데.

“내 정치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했다. 성북구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지방정치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선에서 졌다. 상대는 학생운동도 함께했던 후배로, 현 김영배 성북구청장이다. 당원투표에선 이겼는데 여론조사에서 졌다. 경쟁이라는 첫 무대에서 깨진 뒤엔 당에 돌아왔다. 지금은 국민의당에 있는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 하던 때다. 박 의원과는 청와대 있던 시절에 인연이 있었다. 비서실과 정무수석실로 부서가 달라서 내 직접적인 상관은 아니었는데, 주말에 정무수석실에 놀러와서 이야기도 하고 그러면서 가까워 졌었다. 박 의원과 1년 정도 일을 같이 했다. 그런데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갑자기 열리면서, 박원순 변호사가 무소속 단일후보, 범야권 시민후보로 경선서 이기게 됐다. 그래서 당에서 지원 차원에서 참모들을 파견했는데, 그 때 내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거다. 그 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다. 박 시장 본인도 제도권 정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니, 민주당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함께 공식선거운동을 같이 하는데 무슨 생각인지 내게 정무수석으로 일해 달라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내가 서울시에서 정무수석으로 1년, 정무부시장으로 1년6개월, 총 2년6개월을 같이 했다. 그렇게 박 시장과 인연이 닿은 거다. 그냥 사람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만, 정치권에선 특히 자신을 챙겨준 사람을 잊기 어렵다.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 공천을 챙겨준 사람이 고맙고 또 곁에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가치와 철학도 닮아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종전까지 내게 가장 큰 타이틀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이었다. 차관급이니 소위 ‘명함을 줄 수 있는 자리’다. 야당 정치인중에서 임명직으로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린데, 보통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측근을 데려다 놓고 본인의 패로 활용한다. 그런데 박 시장은 자신과 친분이 있기보다 일을 같이 하면서 신뢰가 생긴 내게 줬다. 재야 출신인 박 시장이니까 가능했을 거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박 시장에 대해 맹목적으로 은혜를 입었다,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다 보니 배운 것도 많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어느 정도 공유하게 됐다. 그래서 서울시와는 또 다른 차원인 국가를 경영하는데 박 시장과 같은 시각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함께 하는 거다.”

   
박원순 변호사가 무소속 단일후보, 범야권 시민후보로 서울시장 경선서 이기게 됐다. 그래서 당에서 지원 차원에서 참모들을 파견했는데, 그 때 내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거다. 그 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다. 그렇게 인연이 닿은 뒤에 내가 서울시에서 정무수석으로 1년, 정무부시장으로 1년6개월, 총 2년6개월을 박 시장과 함께 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박 시장은 다음 지방선거에서 3선 도전이 유력하다고 들었다.

“3선 도전을 거의 확신한다. 정치도, 행정도 자기가 잘하는 데서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박 시장이 잘 할 수 있는 곳은 서울시다. 왜 3선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다. 수많은 인재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 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경쟁이다. 성인군자들이 하는 게임이 아니다. 인도주의적인 공짜 기회도, 당선도 없다. 물론 박 시장도 치고 올라오는 인재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고, 자신이 왜 10년 서울을 책임지려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지금 박 시장이 6년 6개월을 했다. 역대 가장 긴 서울시장이다. 3선이면 11년에 가까운 임기인데, 이에 대한 부담이 공존할 것이다. 박 시장은 사실 여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여의도 정치는 종합예술의 경연장과 같다. 어느 한 가지 독보적 대표성, 특기를 확보했다고 해서 그런 분들이 여의도에서 국민의 대표역을 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회의원이 되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울시에서 2년6개월 일을 하고 재보궐선거가 있어서 광주로 내려갔다. 광주광산구는 내 고향 전남 장성과 가까운 곳이다. 과거엔 행정구역상 장성이었던 곳도 있다. 그래서 광주에서 새바람을 일으켜 보자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갑자기 서울동작구에 전략공천이 됐다. 그 다음은 모두 아시는 바와 같다. 그 선거를 결국 노회찬 의원에게 양보하면서 2년 정도 쉬었다. 강의도 하고 그러면서 기초체력을 회복했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 노출이 돼 있는 상태에서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무척 괴로웠다. 정치인에겐 지역구가 중요한데, 지역구가 불안하니 모든 것이 불안한거다. 성북구에서 20년 이상 살았지만 성북구갑엔 유승희 의원, 성북구을엔 신계륜 의원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노원구 갑에, 박원순 시장 저격수로 유명한 이노근 전 의원을 상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다시 광주로 가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그랬었다. 결국 그 시간도 지나서, 성북구로 돌아오게 됐다”

-국회 입성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간단히 국회의원이 된 소감을.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보다 정치권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이 좀 더 국회의원 적응에 고생하는 것 같다. 참모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봐 왔기 때문에, 참모나 실무직을 오래 한 사람은 선출직으로 방향전환이 쉽지 않다. 선출직은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그래서 직접 출마해보지 않은 사람이 정치를 논하지 말라는 말도 나온 것 같다. 나도 서울시에 있을 땐 시장의 시선으로, 당 대표실에 있을 땐 당 대표의 시선으로 세상을 봤던 것 같다. 지금은 내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고, 내 방식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려 한다. 우스갯소리로 난 고시3관왕보다 드문 3관왕이라고 한다. 입법·사법·행정을 다 해봤다는 이야기다. 국회 보좌관으로 긴 시간, 청와대와 복지부에서 행정, 그리고 사법적으로 교도(矯導) 행정도 겪어본 사람 아닌가. 지금 이런 경험들이 의정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다 보니 벌써 1년 반이 흘렀다.”

-야당 의원으로 들어와서 이젠 여당 의원이 됐다.

“이번 국정감사 때도 느낀 건데, 여당 국회의원은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쳇말로 야당일 땐 지르면 됐다. 하하.”

-국정감사에서의 활약으로 주목받았다. 작년 국감에서 살충제 계란을 처음으로 지적한 데 이어, 올해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관련 상황을 이끌어냈는데.

“내 관심사는 늘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다. 국정감사는 그 연장이다. 먹거리 문제가 그 중에서 크다. 살충제 계란이나 수산물 문제는 그쪽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까 알게 된 사실들이다. 그 밖에 우리 의원실에서 제일 집중했던 것들은 현대인의 고질병에 대한 문제, 그리고 문재인 케어에 대한 설명이었다. 특히 문재인 케어는 야당의 공세가 심했는데, 내가 방어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내가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TF(태스크포스)의 간사다. 왜 문재인 정부에서 보건복지 영역에 수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지, 복지국가로 가는 신호탄이고 정권초기에 해야할 중요한 일들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방어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 4당 체제에서 실질적으로 3당 체제로 돌아왔는데, 경직성이 더 강화될 것이다. 여당은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 위치인데 야당은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국민의당과 연대를 통해 개혁연정의 동맹군으로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안철수 대표는 아마 찬성하지 않을 것 같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고공 행진 중이다.

“당은 대통령 지지율에 업혀서 가는 거다. 당청 갈등이나 엇박자 내지 않고, 지도부가 내부적으로 긴밀하게 조율해서 서로 역할을 분담을 잘 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 당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가 지지율로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약간의 역사적인 행운도 있다. 지도자들은 전임자를 잘 만나야 한다. DJ나 노무현같은 전임자를 만나면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전임자를 잘 만났다. 여러 모로 시대의 흐름이 문재인에게 집중됐다. 게다가 준비까지 된 상태였으니, 지지율이 높은 것은 일견 당연하다.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점프업’ 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대중관계도 그렇게 힘들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풀려나가고 있다. 북미관계, 남북관계도 어려웠지만 어제(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와서 얘기한 것처럼 큰 방향과 물줄기가 잡혀나갈 것 같다. 경제도 생각보다 안정돼 있다. 2017년에 경제성장률 3%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약자나 서민들에게도 온기가 퍼져나갈 수준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수행실장도 맡으면서 화제가 됐었다. 곁에서 본 문재인은 어떤가.

“나는 대통령 후보 수행실장 역할을 22일짜리 계약직 단기 아르바이트라고 표현했다. 그 때 보면 문재인 후보는 밖에서 바라봤을 때보다 훨씬 더 준비돼있고, 안정돼있고, 당 대표나 대통령 후보보다 훨씬 대통령직이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는 선한 권력의지랄까, 그런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필요없는 걱정이었다. 충만하더라. 국정운영의 성과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때부터 준비해 온 것들이 이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향후 정계개편 조짐이 보인다.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이제 4당 체제에서 실질적으로 3당 체제로 돌아왔는데, 경직성이 더 강화될 것이다. 여당은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 위치인데 야당은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협치를 노력하겠지만 연정 수준의 협치는 아닐 것이다. 크게 여당으로선 두 가지 플랜이 있다. 권력을 분산시켜서 여의도의 평화를 이뤄내고, 법과 제도, 예산을 통해 타협의 정치를 해나가는 것을 선호할지, 아니면 다소 힘들더라도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서 민심으로 평가를 받으며 돌파하는 것을 택할지는 모른다. 청와대에게도 이런 숙제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야당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쪽에 좀 더 비중을 둬야 한다고 본다. ‘가랑이를 기어서라도’ 국민들을 위해 법과 제도, 예산을 통과시킬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긴 한데, 이건 나 개인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당 지도부에서 결정할 일이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적폐청산이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이라고 하는 게 단순히 전임정권의 비리에 대한 정치적 수사 등을 강화하는 게 아니다. 이는 적폐청산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는 부수적인 것들일 뿐이다. 적폐청산은 우리나라에 수 십 년 동안 쌓여왔던 잘못된 폐습, 폐단, 시스템 제도 이런 부분을 새롭게 정비하는 과정이다. 이런 국민적 요구에 충실해야 하는 측면도 분명 있다. 그래서 결정은 지도부의 몫이다.”

-그런데 여당이 주도권을 쥐고 나아가려면 의석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그래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대선 때 대연정을 언급한 거다.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세력들을 고립시키고, 의회에 압도적 다수의 개혁연정을 실현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대연정의 필요성에 대해선 일정부분 공감했지만, 현실속에서 구체화 시키는 데 대해선 안 지사와 생각이 달랐다. 압도적 다수의 180석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연정에 준하는 수준의 협치를 상정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부분이니까,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결국은 판단의 차이다.”

-한쪽에선 국민의당과의 연대, 통합 여론이 나온다.

“국민의당과 연대를 통해, 개혁연정의 동맹군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안철수 대표는 아마 찬성하지 않을 것 같다. 박지원 의원의 생각은 우리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넓은 차원의 연대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도 고민이 많다. 우선 연대를 통한 정치적 전진도 필요해 보이고, 아예 근본적인 수술도 필요해 보이고. 가끔 헛갈리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항상 갈등하고 조정하는 게 정치 아니겠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 중에, 예산부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복지 정책 기준으로, 예산을 5년간 30조6000억 원 투여하게 된다. 그 중에 우선 건강보험료 적립금이 약 21조원 정도 쌓여 있다. 3개월 지급분을 제외한 11조 정도를 사용할 수 있다. 법에 의해 보장돼 있다. 야당 때부터 우리가 계속 주장해왔는데, 과도하게 쌓아두지 마라. 뭐하러 그러느냐고 지적했다. 보장성을 확대하는 데 쓰라고 해왔다. 법안도 내놨다. 다음으론 지난 10년 동안 건강보험요율 인상을 3.2% 수준에서 관리해왔는데, 이 수준만 유지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갑작스런 세금폭탄이 아니라 물가인상률, 임금인상률을 고려한 지난 인상률만 유지하면 충분하다는 얘기다. 여기다 재정 효율화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부당청구, 허위청구, 사무장병원 등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면서 새고 있는 보험재정을 튼실하게 만들어 나가면, 예산 문제에서 구멍이 날 것은 없다. 만약 우리가 보장률 80%수준으로 가려면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 많이 올려야 할 것이다. 이는 중부담 중복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까지는 문재인 정부에서 갈 마음도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4대 중증질환 케어에 24조원 썼다. 문재인 케어의 예산부족은 없을 것이다. 낙관한다.”

   
▲ 문재인 케어의 예산부족은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보장률 80%수준으로 가려면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 많이 올려야 할 것이다. 이는 중부담 중복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까지는 문재인 정부에서 갈 마음도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4대 중증질환 케어에 24조원 썼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여담으로,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아들과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됐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아들에게 섭외가 왔다. 대선을 한 40여 일 남긴 시점이었다. 내가 동작구 보궐선거 나갔을 때부터, 아들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그렇게 유명세를 치르다 보니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들에게 결정하라고 했다. 우리는 규범 내에서, 틀지어진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아이들은 다른 세대 아닌가. 그래서 ‘나는 노출된 사람이니 문제가 없는데, 네게 틀림없이 부작용이 있을 거다. 넌 인정하기 싫겠지만 금수저 논란 같은 것도 생길 수 있고, 감수할 것들이 생길 거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3일정도 고민하더니, 다 추억과 경험이 될 수 있다며 해보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대선 끝나고 아들은 11일 정도 네팔 가서 촬영하고 오고, 나는 월요일마다 일과 끝나고 새벽까지 네 차례 가서 찍었다.”

-끝으로 정치인으로서의 소신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거창한 것은 없고, 누가 가끔 물어보면 ‘더불어 함께 잘사는 정치’라고 대답하곤 한다. 평생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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