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또 다시 드러난 ‘116석 야당’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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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또 다시 드러난 ‘116석 야당’의 한계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7.12.05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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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반 안 되는 한국당…민주당·국민의당 합의하면서 운신의 폭 좁아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함께 2018년도 예산안에 대한 여야 3당 잠정 합의문을 발표한 지 불과 3시간 만에 ‘무효화’라는 말을 꺼냈다 ⓒ 뉴시스

4일 저녁 7시 40분께. 예산안 합의에 대해 보고하는 의원총회를 마친 후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기자들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정 원내대표는 예상치 못했던 말을 꺼냈다.

“합의 본 것을 무효화하는 방안도 있고, 본회의에서 반대토론을 하고 표결하는 방법도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원내 전략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

기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서둘러 문자메시지로 소식을 알리는 기자들, 돌아서서 데스크에 전화를 거는 기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만큼 정 원내대표의 발언은 뉴스 가치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함께 2018년도 예산안에 대한 여야 3당 잠정 합의문을 발표한 지 불과 3시간도 되지 않아 말을 뒤집은 셈이었기 때문이다.

정 원내대표가 3시간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은 당내 의원들의 반발 탓이 컸다. 의총 도중 밖으로 나와 기자들과 만난 이완영 의원은 “(합의문에 ‘한국당 유보’라고 명시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우리 당이 ‘유보’라고 한 것이 오히려 사실상의 합의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의총 과정에서도 “유보를 할 바에야 합의 자체를 해서는 안 됐다”는 의견이 다수 개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 원내대표가 무슨 힘이 있냐’는 자조(自嘲)가 나왔다. 5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국당 관계자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합의를 한 이상 정 원내대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의총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끝까지 버텨서 존재감을 내보이자는 수준 아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 5일 의총 말미에 정 원내대표는 “유연할 때는 유연해야 한다. 예산이 올해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통과된다”며 의원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 뉴시스

실제로 116석인 한국당은 운신의 폭이 매우 좁은 상황이다. 국회법상, 예산안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민주당(121석)과 국민의당(40석) 의석수를 합하면 161석으로, 과반을 훌쩍 넘긴다. 한국당이 반대하더라도 민주당과 국민의당 공조(共助)로만 예산안 통과가 가능하다. 즉, 이번 협상에서 민주당의 메인 파트너는 한국당이 아닌 국민의당이었다는 뜻이다.

이러다 보니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합의점을 찾은 후, 정 원내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극도로 한정됐다. ‘비난을 받더라도 끝까지 반대하면서 통과되는 것을 지켜보느냐’와 ‘존재감을 잃더라도 예산안을 통과시켜 주느냐’ 중 택일(擇一)을 강요받았다.

현재 한국당의 의석수는 ‘최소 저지선’에 한참 모자란다. 반대를 통한 존재감 부각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정부여당과 발을 맞추기에는 이념적 거리가 너무 멀다. 지지층도 상이(相異)해, 실리를 챙기기도 어렵다. 이번 예산안 협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국당의 딜레마(Dilemma)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다.

5일 의총 말미에 정 원내대표는 “유연할 때는 유연해야 한다. 예산이 올해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통과된다”며 의원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기자들을 만나서는 “만약 통과가 된다면 우리가 제1야당으로서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느낄 것”이라며 “우리 주장이 정당했다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을 견제하며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야당이지만, ‘116석’이라는 현실적 제약에 묶여 있는 한국당의 답답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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