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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홍의 대변인]'묵묵부답' SK건설…'책임경영의 시대는 지났다'
2017년 12월 20일 17:47:16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사람은 똥을 싼다.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면 변(便)을 본다. 아마 배변할 때만큼 인간에게 자신이 평등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은 없으리라.

그러나 손과 입으로 똥을 싸는 경우는 다르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주변 사람들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고, 시쳇말로 '빅똥(大便)'을 쌌을 때는 사회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래도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순간의 빅똥으로 평생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면 이 또한 옳지 않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다.

<시사오늘>의 '박근홍의 대변인'은 우리 정재계에서 빅똥을 싼 인사들을 적극 '대변(代辯)'하는 코너다.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SK건설을 위한 최종변론

   
▲ 경기 평택 주한미군기지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수십억 원대의 뒷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SK건설(에스케이건설, 대표이사 조기행)이 공식적인 해명을 꺼리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 SK건설 CI

경기 평택 주한미군기지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수십억 원대의 뒷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SK건설이 입을 굳게 닫고 있어 여론의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지난 1일 검찰로부터 서울 종로 본사를 압수수색을 당한 데 이어, 지난 15일에는 소속 임원이 구속기소됐음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SK건설은 현재 사법당국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는 게 부적절하다는 입장인데요. 꼬리를 자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또한 적폐청산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와 책임경영·윤리경영을 강조하는 모그룹 방침과 엇박자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격적인 변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특히 피의자의 경우에는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 더 큰 추궁을 당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SK건설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국가 안보와 직결된 주한미군기지 사업이라는 점, 공사비만 무려 4573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라는 점, SK건설이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점,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조심스럽게 변론에 나서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직 혐의가 입증되진 않았지만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입니다. 일부 경영진과 몇몇 임원들이 자신들의 곳간을 채우려고 한 것이지, 결코 회사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임직원 개인의 일탈행위까지 기업에게 책임을 물으려 하고, 공식적인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 아닙니까.

일각에서는 또 개인의 일탈이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어요. 맞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요즘 추세가 어떻습니까? 언젠가부터 개인의 일탈이라는 표현이 방어용이 아니라 공격용으로 쓰이고 있어요. 아니, 정말 일부 개인이 일탈한 것까지 전체 집단이 책임을 지라는 게 말이 됩니까. 현대판 연좌제가 따로 없어요.

아니, 그리고 윗물이 고와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일탈을 남발하는 건 높으신 분들이 더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제보 의혹'에 연루된 국민의당 박주원 최고위원에 대해서 같은 당 황주홍 의원도 "박 최고위원 개인의 잘못이지 안철수 대표나 당 전체의 책임으로 몰아갈 일이 아니다"라고 하지 않았나요?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는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세월호 참사 때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게 연락해 정부에 대한 비판보도를 삭제할 것을 강권한 녹취록에 대해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대화다. 우리가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이 의원의 '개인의 일탈'이라고 선을 긋지 않았습니까?

왜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에게 관대하고 기업에는 무관용입니까. 자꾸 이런 식이면 대한민국에서 장사 못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책임경영과 윤리경영 말입니다. 다들 너무 순진하고 정의로운 척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무자비하고 냉혹한 경쟁의 시대, 잔혹한 짐승의 시대에 책임경영, 윤리경영 운운하는 기업이 과연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단적인 예를 국내 건설업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광복 70주년 특별사면 명단에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 대우건설, 현대산업개발, SK건설 등 4대강 입찰담합 건설사들을 포함시켰습니다. 당시 건설사들은 사회공헌기금 2000억 원 출연을 공언했습니다. 일종의 사면 조건이었지요. 하지만 이 같은 대국민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회는 지난 국정감사에 주요 건설사 대표들을 불러 왜 그런지 질타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기행 SK건설 부회장은 "단독으로 이행할 수 없었다. 업계 모두가 참여해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면 기금을 출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임병용 GS건설 사장은 "회사로서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업계와 협의하겠다"고 답했고, 강영국 대림산업 사장은 나아가 "당시 기금 출연에 대해 유보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책임경영, 윤리경영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경쟁이 너무 심하니까요. 그저 대외적 이미지를 위해 이용할 뿐이지요. 나만 피를 볼 수는 없는 거 잖아요. 그런데 그게 잘못된 겁니까? 힘든 세상 속에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SK건설에게 책임경영, 윤리경영을 이유로 입을 열라고요? 그건 너무나 불합리하고 무책임한 일이 아닙니까. 더욱이 최근 실적 부진, 주한미군기지 비리 등 겹악재에도 조기행 부회장이 연임된 회사입니다. 애초에 책임경영과는 거리가 먼 회사다 이겁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에 반한다는 지적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그리고 당선된 이후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아들 특혜취업 의혹에 대해 단 한 번도 직접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논란이 무척 컸던 만큼, 대선 전후로 합당한 해명이 필요한 대목이었는데 말이지요.

왜 문 대통령이 해명하지 않았겠습니까.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해명할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SK건설의 이번 사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적폐청산과는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 그저 문 대통령처럼 합리적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꾸 도의적으로 압박하려 들지 말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바라봐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앞서 말했다시피 SK건설은 현재 피의자로 있습니다. 검찰 수사가 끝나지 않는 이상,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어렵습니다. 모쪼록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준비한 최종변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식음료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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