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대통령의 개헌 발의로 정국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며 요동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 대선 때부터 개헌에 대한 필요성은 일찌감치 제기됐기에 현 상황이 그다지 놀랍진 않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 제정된 지 30년이 다 된 현행 헌법은 이미 수명이 다 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딛고 만들어진 헌법이기에 남다른 감회에 젖을 순 있으나, 시대가 원한다면 우리의 후세를 위해서라도 개헌은 이뤄져야 한다.
이번 개헌 논의의 중심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의 맹점을 인식하고 이를 바로 잡자는 문제의식이 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잔재와 기억에 몸서리치는 국민이라면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병들게 한 제왕적 사고방식에 대한 반감은 들춰낸들 새삼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개헌을 추진하기에 앞서 과연 자신들의 행태가 제왕적 사고관으로부터 탈피를 논할 수준인가 짚어봐야 한다.
우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행해지고 있는 각 공기업의 기관장 및 사외이사 직에 대한 ‘낙하산 인사’에서 제왕의 향취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 임찬규 GKL 감사 등 소위 낙하산 논란을 일으키는 인사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30년 전 국민의 염원으로 천신만고 끝에 제정됐던 우리 헌법을 뜯어 고치는 명분은 현 정권의 뿌리인 참여정부 시절부터 추진됐던 ‘권력의 분산’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긴 점령군이 전리품을 취하듯, 공기업의 요직에 수많은 ‘정피아’와 ‘관피아’들을 떨어뜨리는 것은 누가 봐도 그 명분에서 어긋난다.
공기업 또한 공공부문의 일부다. 나아가 그 공공부문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지는 것은 현 정부인 점 역시 자명하다. 집권자들에 의해 국가 청사진이 마련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각 행정 부처를 장악하는 것은 국민과 헌법이 보장하는 바다.
그러나 공기업은 정부 부처 이전에 영리 활동을 위한 기업임을 잊어선 안 된다. 다만, 민영화가 될 수 없는 국가 기간산업을 정부가 관리하고 통제할 뿐이다. 그 국가 기간산업은 바로 국민의 안위와 생존을 책임진다. 이런 가운데 주야장천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외치면서 패러다임에 역행하는 전근대적인 공기업 낙하산 인사는 횡행하고 있다. 제왕적 권력구조를 없애려는 현 정부의 의지에 의문부호가 표시되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핵심 인재의 영입이다. 국민의 생존권이 걸려있는 국가 기간산업은 정권의 전리품이나 희생양이 아니다. 잘못된 낙하산 인사는 강원랜드나 GKL의 경우에서 보듯, 불법채용과 뇌물과 같은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될 뿐이다. 전문성이나 독립성이 담보되지 않은 정치권 인사들의 논공행상이야말로 역사의 악순환만 반복시킨다.
시대와 상황에 맞는 개헌은 필요하다. 지난 1987년의 그 뜨거운 함성과 열망을 기억하는 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60%라는 개헌 찬성론자의 비율에서 보듯, 이 시대의 개헌은 필연적일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변화와 자기성찰 없이 늘 제도만 탓하다가는 몇 년 후, 몇 십 년 후에도 대한민국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같은 상황에만 봉착할 것이다.
법과 제도의 결함만을 논하기보단, 그 체제를 운용하는 이들의 책임감과 진정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정부는 잇따른 낙하산 인사 먼저 중단하길 바란다. 정권의 코드에 맞춰 공기업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개헌을 통해 없애고자 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전형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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