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은 ‘새로운 보수’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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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은 ‘새로운 보수’를 만들 수 있을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07.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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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재정립에 ‘최적’…개혁 성공 여부는 미지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자유한국당은 17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를 신임 혁신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한국당은 17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를 신임 혁신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김 위원장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냈던, 한때 ‘원조 친노(親盧)’로 불린 인물이다.

그러나 이 바람이 격변(激變)을 이끄는 태풍일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미풍(微風)일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의 개인적 성향과는 별개로, 한국당이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돼있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까닭이다. 정치권에서 김 위원장의 선임을 한편으로는 기대의 눈길로,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는 이유다.

김병준, 정체성 재정립에 최적 카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단순한 ‘정권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박근혜’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서의 경쟁력보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함의(含意)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한 기묘한 브랜드였다. 때문에 박 전 대통령 탄핵은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넘어 ‘박정희 신화’의 붕괴를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수의 상징이라고 불렀다. 이상하지 않나. 박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긴 했지만, 보수를 위한 어젠다를 내놓거나 했던 정치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제민주화 정책을 내놓으면서 역대 그 어떤 보수 정치인보다 강한 ‘좌클릭’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보수의 상징이 된 것은 개인의 성향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박정희의 딸’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의 한 당직자가 했던 말이다.

‘박정희 신화’가 무너진 상황에서, 한국당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안보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이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그나마 남아 있던 한국당의 ‘기댈 언덕’마저 평지로 만들어버렸다. 홍준표 대표는 남북 관계 ‘훈풍(薰風)’을 ‘위장평화 쇼’라고 평가절하했지만, 홍 대표 생각에 동의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당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지탱해 준 두 기둥, ‘산업화’와 ‘안보’라는 가치를 모두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한국당이 직면한 최우선 과제는 ‘새로운 기둥’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다.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수구적 보수, 냉전적 보수를 다 버리고 합리성에 기반한 새로운 이념적 지표를 세워갈 것”이라고 선언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김 위원장에 대한 기대감은 여기서 출발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6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당은)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 성장, 경제 발전이라는 가치 틀이 어느 정도 충족됐으니 다른 가치를 내놓아야 했는데, 이것을 못했다”며 “야당은 자신들이 역사에 뒤처진 집단이 아니라 앞서가는 집단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자율, 기회 균등, 공정이 실제로는 보수적 가치인데, 한국당은 지금까지 이런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국가에 의한 강제가 아닌 자율, 기회 균등,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공(反共)에 기대는 냉전적 보수를 떠나,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정립하고자 한다면 김 위원장만큼 좋은 선택도 없다는 의미다.

17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김병준 교수가 한국당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김성태 원내대표 말대로 한국당이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맞다면, 그분만큼 좋은 사람도 없다고 본다”고 했다.

‘김병준표 개혁’, 성공 여부는 미지수

다만 한국당과 김 위원장의 이질성이 새로운 갈등을 야기할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은 25~30%가량의 ‘고정표’ 존재를 확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남북 평화 무드 속에서도, 전통적인 한국당의 가치와 철학에 동의하는 유권자가 적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보수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한국당 내에서도 ‘전통적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박대출 의원은 “민심은 저희에게 반성과 변화를 요구했지만, 그 변화는 진정성 있는 변화여야 한다”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가치를 잃어버리는 표변이나 돌변은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김진태 의원 역시 “우리가 가진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담을 그릇이 문제였다”고 역설했다.

이러다 보니 ‘키’를 잡은 김 위원장과 ‘선원’인 한국당 의원들 간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17일 <시사오늘>과 만난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정당은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인데, 선거에서 이기자고 정체성을 바꾸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김 위원장이야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냥 떠나면 그만이지만, 의원들이나 당직자들은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개혁파’와 ‘반개혁파’의 충돌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더욱이 한국당은 아직 김 위원장의 권한과 시기 등을 확정하지 못했다.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근본적인 당 혁신을 위해 김 위원장에게 충분한 시간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친박(親朴) 의원들은 여전히 비대위 역할을 다음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관리형’ 수준에 묶어두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전권을 쥐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 경험이 없는 김 위원장이 한국당에 ‘메스’를 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제20대 총선을 통해 구성된 친박 우위 구도가 여전한 데다, 다음 총선까지 2년 가까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비대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인 까닭이다.

실제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17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당 정체성을 바꾼다는 건 지도부 한두 사람이 ‘바꾸자’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당을 구성하는 사람을 바꿔야 하는 일인데, 총선이 2년이나 남아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어떻게 인적 쇄신을 할 수 있겠나”라며 “김 위원장이 전권을 휘두르면서 다음 총선 공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몰라도, 지금 같은 상태에서는 김희옥 비대위, 인명진 비대위의 재판(再版)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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