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경민 광덕안정한의원 원장)
얼마 전 진료실에 가슴통증과 두통, 안면홍조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70대 여성 환자가 찾아왔다. 평소 제사문제로 인한 가족과의 갈등, 특히 표면적으로는 며느리가 문제라고 환자 본인은 토로했지만 상담결과 남편에 대한 오랜 시간 불만으로 화병을 얻게 된 경우로 진단을 받았다. 이후 이 환자는 고농도봉침과, 한약치료, 불부항 등 한방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 두통과 가슴통증, 안면홍조 등의 증상이 크게 개선됐다.
또 다른 사례의 환자는 40대 여성으로 불면증과 상열감,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호소했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처음 화병의 증상이 발생하고 이후 남편의 무능력으로 인해 증상이 지속되고 장기화됐다. 상담치료와 함께 한약치료, 고농도 봉침 치료를 병행, 장기간 환자를 괴롭히던 불면증과 상열감, 가슴 답답한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화병’은 한국 사람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단어다. 참는 것에 익숙한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기인한 일종의 증후군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도 ‘화병’이라는 단어를 우리말 그대로 등재해놓고 사용할 정도로 화병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흔하게 일어나는 증상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화병’하면 으레 고부갈등이나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고통 받는 중년 여성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만나게 되는 환자의 연령층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며느리의 태도가 대체 이해되지 않는다’는 70대 시어머니에서부터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집가야 된다는 이유로 다른 직장으로 옮기지 못하게 할 정도로 부모님이 강압적’이라는 20대 아가씨, ‘처가집의 간섭이 버겁다’는 30대의 아버지, ‘사업에 실패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50대 남성, ‘자녀를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고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님 때문에 속상하다’는 10대 소년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기 때문이다.
화병 발병연령, 발생원인 아주 다양해
화병의 발생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꾸 일이 흘러 갈 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즉, ‘눈치를 많이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인색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인식 하는 것에도 인색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럴 수 있지 뭐’ ‘내가 예민한 거야’ ‘그런 걸로 맘 상하지 말자’ ‘어쩌겠어. 하는 말로 덮어두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화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병을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 등 여타 정신질환과 별개의 문제라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여러 가지 정신질환을 기저에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참는 것이 익숙한 것이 가미되면 완성되는 것이 화병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저에 우울증을 가진 사람이 “나는 우울해요”라고 표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답답하고 열이 치밀어 오르고 이유 없이 화가 나요” 라고 말한다면 자기 감정에 대해 ‘참는 것이 익숙’한데 화병증상이 나타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진료를 하면서 심장질환 등 기저질환이 없는 데 치료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경우를 두 번 경험한 적이 있다. 신체증상을 호소한다면 정신적인 증상을 겪은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뒤라고 할 수 있다.
화병은 정해진 연령대가 없어 어느 날 가족이나 지인이 뚜렷한 이유는 말하지 않으면서 불면증을 호소하거나, 내과 검사에는 별 이상이 없이 소화기 증상을 지속적으로 호소하는 경우, 답답하고 열이 오르며 이유 없이 숨이 차는 경우, 분노조절이 안되고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나는 경우, 이유 없이 자꾸 불안한 경우, 이유 없이 자꾸 무기력 해지는 경우, 온몸이 이유 없이 아픈 경우를 호소한다면 화병의 발생을 한번쯤 의심하고 치료를 권유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줄 필요가 있다.
화병, 전조증상 나타나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화병은 증상과 진행 정도에 따라 크게 4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충격기와 갈등기, 체념기, 증상기가 그것이다.
충격기는 특정 사건에 대한 충격이나 분노를 느끼는 단계이며, 갈등기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또 체념기는 그러한 상황이나 현실을 운명이나 팔자라 생각하고 단념하는 단계며 증상기는 답답함과, 얼굴 열오름 소화 장애, 두통, 분노조절장애 등 특정 증상이 표출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화병은 일단 발생하면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어 가급적 초기 단계부터 신속하게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화병의 증상을 개선 또는 치료하기 위해서는 신체적 증상과 정신적 증상을 동시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통, 소화불량, 신체통증, 어지럼증, 답답함, 얼굴 화끈거림, 불면증 등 신체적 증상의 경우, 한약처방을 통한 치료로 증상을 완화시키고 고농도 봉침치료를 통해 화병으로 인한 통증을 치료하며 부항치료(불부항)를 통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을 풀고 막힌 것을 풀어주는 치료를 시행한다.
또 특정 상황에 대해 체념 혹은 순응한 상태에서 정신적인 고통과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정신적 증상의 경우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여유 있는 사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담치료를 병행, 환자 스스로가 상황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치료를 시행한다
하지만 상황의 변화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주어진 상황 속에서 만족감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주는 상담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가 아닌 환자 스스로 주체가 되어 생각을 전환하고 본인의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 화병은 정신적인 증상과 함께 그에 따른 신체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기간이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화병의 치료는 보통 12주 정도 치료 기간을 설정하고 신체적인 증상과 정신적 증상을 동시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같은 치료를 시행할 경우 환자에 따라 상황의 변화에 대한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증상이 크게 개선되어 환자의 삶이 질이 한층 나아지게 될 수 있다.
김경민 원장은...
광덕안정한의원 강남논현점 원장이며 1급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보유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한의사로, 약에 의존하지 않는 한방치료를 통해 각종 신경정신과 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불안장애 치료제인 강심향과 평심방을 개발하고 ‘한방으로 해결하는 정신면역!’을 저술한 바 있으며 원음방송 등에서 각종 정신질환의 한방치료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