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꿈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강원도의 꿈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지난 15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별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그가 움직이자 공천 하나에 목숨 건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강원도 행을 자처했다. 언론도 즉각 움직였다. 그러면서 ‘강원 표심이 박 전 대표에게 쏠리고 있다’, 혹은 ‘선거의 여왕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이슈 따라가기 보도를 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언론은 한나라당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특위 고문으로 추대된 박 전 대표의 행보와 그간 그가 밝혔던 경제철학이 얼마나 상충되는지에 대해선 외면한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친박계 경제통 의원들과 함께 MB정부의 국가부채를 비판하며 재정건정성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그런 그가 적자의 대명사로 전락한 동계올림픽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3수에 도전하며 ‘국가적, 민족적’ 자존심을 건 MB정부의 수준 낮은 철학과 이를 부추기는 언론, 그리고 제2의 김연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하나로 묻지막식 찬성론을 펼치는 이들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었다. 여기에 박 전 대표 같은 거물급인사가 합세하며 스포츠 쇼비니즘(국수주의)을 위해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고 있는 셈이다.
토건 신자유주의의 대명사 MB정부와 토건 신자유주의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대세론의 주인공 박 전 대표, 결국 유사한 경제철학을 가지고 있는 친이-친박이 MB정부의 재정적자를 놓고 대립한 꼴이다.
중앙정부가 발 벗고 나서 지방정부의 올림픽 유치전을 벌이는 OECD 가입국, 토건사업이 주목적인 동계올림픽 시설투자에 경제효과와 민족적 자부심을 부여하는 OECD 가입국, 국가적 행사인 동계올림픽에 반대하면 비민족적이라는 딱지를 부여받는 OECD 가입국, 올림픽 유치에 언론이 앞 다투어 찬양 발언을 쏟아 내는 OECD 가입국…이게 2011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3000만 달러의 적자를 낸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과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 이후 재정적자로 인해 불경기에 빠졌던 가까운 나라, 일본을 잊은 것일까.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20∼30조원대의 경제효과를 운운했던 삼성경제연구소와 G20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린 대학 강사 체포, 서강대학교 ‘G20에 맞선 대안포럼’ 개최 금지 번복, 서대문구청 G20 기간 중 음식물 쓰레기 처리시설 가동 중단 논란 등을 연출한 MB정부가 또다시 이 같은 코미디를 재연할 태세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쇼비니즘을 넘어 국가주의를 위한, 국가주의에 의한, 국가주의에 매몰된 셈이다.
평창의 경쟁지 독일 뮌헨은 어떤가. “IOC는 돌아가라”는 구호를 내걸고 자국의 환경단체와 농민들이 국제올림픽위원회의 현지 실사 첫날인 지난 1일(현지시간)부터 시위를 벌였다. 반대 시위를 찬양하는 게 아니다. 다만 적어도 국가적 행사에 찬반양론이 자유롭게 성립할 수 있는, 비록 반대를 하더라도 ‘매국노’로 몰아붙이지 않는, 그리고 유치를 위해 국가와 민족을 내걸지 않는, 그들이 더 건강한 시민문화를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에게 숱하게 들었던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군대주의 용어를 우리 후배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IOC실사단이 오면 초등학생까지 동원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 같은 전체주의적 사고관이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또 평창 땅값을 노리고 몰려든 후 치고 빠질게 뻔한 투기꾼들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역시 부동산이야. 부동산밖에 없다”는 천박한 부동산 불패신화를 가르쳐야 할까.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스포츠 쇼비니즘, 국가주의, 민족주의, 전체주의와 결별할 수 있는 정치인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12년 대선 점령에 가장 근접한 박근혜 전 대표는 이것만이라도 말해야 한다. “당신의 경제철학은 토건입니까. 탈토건입니까”, “토건이면, 재정적자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