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6 일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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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서거 3주기②인터뷰] 김현철 “IMF 위기, 국가부도란 단어는 틀렸다”
“문민정부, 정당성 확보로 ‘위로부터의 혁명’일으킨 것”
“야당에 막힌 노동·금융개혁 성공했으면 IMF는 없어”
“이후 정권들서 통합·화합 대신 분열 커져 안타까워”
2018년 11월 17일 10:00:49 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국민대학교 특임교수는 문민정부의 산 증인 중 하나다. 1987년, 아버지의 대선을 돕기 위해 20대에 일찌감치 정계에 발을 들이면서, YS의 정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YS 3주기를 맞아, 문민정부를 재조명하기 위해 <시사오늘>은 16일 서울 장충동 한 카페에서 김 교수와 만났다.

   
YS 차남인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는 16일 하나회 청산은 30년 가까이 이어진 군부통치를 한 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완전히 끝내면서 완벽한 민주화를 이룬 혁명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러한 조치가 없었더라면 또 다른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문민정부의 가장 첫 행보이자, 호평받는 것이 하나회 청산이다. 당시 상황을 들려달라.

“하나회 청산에 대해, 단순히 ‘정치군인들의 사조직을 제거했다’정도로 생각해선 안된다. 문민정부 출범 직후에 미국 언론들을 포함한 주요 외신들조차 ‘YS가 군인들과 타협을 해야하고 절대 함부로 하지 못한다. 군부청산은 어려울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다.

우선 3당통합에서 민정계가 다수 지분을 가지고 있어서 민주계가 적은 상황에서 그런 엄청난 개혁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고, 다음으론 워낙에 군인들이 서슬 퍼렇던 시절이라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날려버린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은 육사 17기, 서완수 기무사령관은 19기다. 군정이 종식되지 않았다면 다음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던 전두환·노태우의 직계들이라는 이야기다.

당시 군인들이 얼마나 힘이 있었는지에 대한 일화가 있다. 유명한 ‘국방위 회식사건’이 발생한게 불과 당시로부터 수 년 전인 1986년이다. 육군 수뇌부가 초청한 자리에서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 몇몇이 폭행당했던 사건이다.

이런 상황이니 아무도 군부 숙청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인데, 그게 ‘키 포인트’였다. 1993년 2월 25일에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3월8일에 하나회 청산이 시작됐으니 보름도 안 된 시점이다. 그 속도에 새로 들어온 장군들에게 달아줄 수 있는 ‘별’이 없었다. 보통 인사철에 맞춰서 주문을 하는데 준비가 안됐다. 전례 없는 사태에 다른 장군들에게 ‘별’을 빌려서 달아주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너무 빨랐기 때문에 하나회는 대처조차 못하고 무너졌다.

이건 혁명이었다. 문민정부의 ‘위로부터의 혁명’이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군부통치를 한 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완전히 끝내면서 완벽한 민주화를 이룬 혁명이다. 이러한 조치가 없었더라면 또 다른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악순환의 고리를 종식시켰다는 점에서 하나회 숙청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

-부작용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았나.

“아버지(YS)는 정치군인들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민정당에 정치군인 출신 말고도 정말 정치를 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은 같이 정치를 해 나가는데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거다. 총선에서 공천도 주고, 김윤환 전 의원 같은 사람을 챙겨준 것도 사실이다. 국가의 안정에 위협이 될 만한 하나회 핵심만 옷을 벗으면, 부작용이 일부 있더라도 비교할 수 없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 김현철 교수는 하나회 청산이 정치적 혁명이라면 금융실명제는 경제적 혁명이었다며 좌고우면해서 시간을 끌 사안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YS)는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하나회 청산이 정치적 혁명이라면 금융실명제는 경제적 혁명이었다. 많이 언급되는 이야기지만, 일본은 지금도 해내지 못하고 있지 않나. 문민정부가 공식 출범도 하기 전에, 조선일보를 필두로 해서 여러 언론들이 ‘민주정부가 출범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문사항으로 낸 적이 있다. 언론들이 입을 모아 경제 분야에선 ‘YS가 금융실명제 하나만 해도 성공한 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막상 하고 나니 언론들이 태도를 바꿔서 ‘이런 사안을 정·재계 전문가들과 상의해서 해야지 깜짝쇼 하듯 갑자기 해서 되겠느냐’고 비판하더라. 부정적 영향이 얼마나 크겠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는 좌고우면해서 시간을 끌 사안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YS)는 알고 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 모두 금융실명제를 하려는 노력을 나름대로 했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정경유착이 이미 너무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와대 내부를 위시해서, 경제관료들도 신중해야 한다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꽤 있었지만 강력히 추진했다. 아마도 그 때 못 했더라면 기회가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YS는 금전적인 부분에서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부담이 없어서 가능했다고 본다.”

-공직자 재산공개도 YS의 그런 자신감이 있어서 가능했던 건가.

“본인이 솔선수범해서 결국 법제화까지 시킨 사례다. 깨끗한 정부를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시작한 건데, 이게 자발적으로 시작하는게 좋겠다고 하면서 직접 대통령의 개인자산부터 공개했다. 여기서 내각의 장·차관들, 그다음엔 국장급, 8급·9급 공무원까지 내려갔다. 결과적으로 상당히 많은 공직자들이 옷을 벗게 됐다. 청렴한 공직자상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때 인사청문회도 도입됐지만, 공직자 재산공개가 엄청난 파급효과를 이뤄낸 거다.”

-앞서 언급한 ‘위로부터의 혁명’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정통성이다.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가 됐지만,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YS의 문민정부가 사실상 민주화 1기 정부다.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했으니 강력한 개혁을 할 수 있었던 거다. 그 기반은 군정종식을 중심으로 한 시대정신이었다.

 다음은 정의감, 불의에 대한 반발이다. 아버지(YS)의 인생은 상당히 일관성이 있다. 기득권이나 안정된 상황 같은 건 아버지의 행보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거제에서 어장을 했으니 집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평생 민주화를 위해서 일생을 바치고 군사독재와 싸워왔다. 일찌감치 26세에 국회의원이 됐지만, 자유당이 독재를 하는 걸 보면서 바로 탈당하지 않았나. 그런 것들이 평생 쌓여서 결과적으로 청렴함,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는 과감함이 몸에 밴 거라고 본다.”

-문민정부 이야기를 하면서 IMF 사태를 빼놓긴 어렵다. 지금까지가 공(功)이라면, IMF는 과(過)로 꼽히는 사건인데.

“우선 IMF를 ‘국가부도’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됐다. 외환보유고가 갑자기 사실상 동이 나면서 그 여파로 여러 기업이 부도가 나기도 했지만, 정말로 국가가 부도가 난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문민정부에 총체적 관리 책임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상당히 복합적인 요인들이 그 배경에 있다. 많은 이들이 그런 것들을 보지 않고 일단 문민정부의, YS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몰아간다. 그 편이 간단해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야당의 반발, 국제정세, 군부독재시절 쌓여온 문제 등이 한 번에 터지면서 생긴 일시적 외환위기다.

문민정부 당시 세계는 이미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만 뒤쳐져 있었다. 그래서 문민정부에서 1994년 세계화추진위원회도 만들고, YS가 APEC 정상회담에서 세계화 선언도 했다. 발빠르게 세계무역기구(WTO), 1996년에는 OECD도 가입했다. 이런 과정에서 FTA의 기초도 만들어지고, 국가적인 혜택을 봤다. 여기서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등을 맞지 않으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게 노동개혁과 금융개혁이었다. 그래서 문민정부는 이미 노동개혁과 금융개혁을 하려고 했었다. 실제로 외환위기가 터진 후 IMF가 우리에게 강제로 명령한게 바로 그 두가지다. 하지만 야당과 노동계가 걸림돌이었다. 노동개혁을 통해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강성 노조 등과 이와 가까운 야당에서 결사반대를 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금융개혁도 사실 한국은행 독립까지 생각한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이 두 가지를 야당이 받아들이기만 했어도 IMF 외환위기는 오지 않았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그간 군사정권 내내 심했던 정경유착 문제와, 압축적인 경제성장의 반작용이 같이 불거졌다. 일당독재하에서 이뤄진 과도한 재벌위주 경제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이 끝내 드러난 거다. 마치 문민정부 때 있었던 성수대교 참사나 삼풍백화점 붕괴와 비슷한 사고다. 물론 문민정부에서도 책임을 질 부분이 있지만, 애초에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의 부실공사는 군사정권에서 이뤄진 것이라서다. 대기업의 연쇄부도 사태도 대응의 실패였다. 기아자동차가 부도날 때도 야당은 회생을 외쳤다. 그러한 대처는 군사정권 시절의 경제기조인 ‘대마불사’였는데, 돌이켜보면 그래선 안 됐다.

외적으론 아시아권 전체의 외환위기, 경제위기가 도미노처럼 오는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전체적인 ‘경제 위기’나 국가의 ‘부도 사태’는 아니었다. 외환의 일시적 고갈이다. 요즘 같으면 여러가지 대처 방법이 제도화돼 있고 그래서 괜찮지만, 그 당시는 처음 맞는 위기라서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YS는 경제위기를 차기정권에 전가하려면 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YS가 그런 스타일도 아니지만 그래서도 안 되는거다. 무책임하다. 물론 IMF가 상당히 복합적인 요인으로 촉발된 위기라고 해도, 문민정부도 관리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기에 그 업보다. 어쩔 수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렇게 책임을 자발적으로 졌는데도, 다음 정권에서 DJ가 모든 걸 문민정부 책임으로 몰아버렸던 점이다. ‘환란 청문회’를 열고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김인호 전 경제수석을 제물로 삼지 않았나. 본인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지만 아버지(YS)도 청문회에 세우려 했다고 들었다. 문민정부가 전부 잘했다고 표현하고 싶지도 않고, IMF의 책임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게 무작정 모든 문민정부의 과(過)로 매도하는 게 그저 안타깝다.”

   
김현철 교수는 IMF를 ‘국가부도’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됐다며 외환보유고가 갑자기 사실상 동이 나면서 그 여파로 여러 기업이 부도가 나기도 했지만, 정말로 국가가 부도가 난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문민정부 이후, 그 정도 수준의 개혁을 한 정권은 없는 것 같다.

“안타깝지만 그런 것 같다. 문민정부에선 제도적 개혁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 그 이후의 정부들은 제대로 그 뿌리를 내리고,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박차를 가해야 했다. 문민정부에서 지방자치제를 부활시킨 것도 풀뿌리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 교두보가 필요하다고 봐서다. 그러나 그 다음 정부들은, 정권이 바뀌면서 권력만 왔다갔다 한 것 아닌가. 나름 참여정부에서 사회의 변화를 불렀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시스템이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편의상 분류로 진보정권 10년, 보수정권 10년이라고 했지만 그들 중 과연 누가 문민정부의 장점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생각이 있었는지 물음표가 붙는다. 문민정부를 희생양 삼아 모든 과를 지워놓고도, 통합과 화합 대신 사람만 바뀌면서 더 갈등과 분열만 심해진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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