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온라인상의 ‘광화문 광장’이다. 현실적으로 해결 가능한 청원은 많지 않지만, 현 시점에서 국민들이 어떤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시사오늘>은 지난 한 달 동안 국민청원 게시판에 어떤 청원이 제기됐는지를 살펴보면서 ‘민심(民心)’을 추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https 차단 정책에 반대합니다”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가장 뜨겁게 달군 청원은 ‘인터넷 검열 논란’을 촉발시킨 https 차단 반대 청원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몰카 등 불법촬영물과 도박을 막기 위해 불법사이트를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이 국민에 대한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번져나간 데 따른 것이다.
청원자는 “해외 사이트에 퍼져 있는 리벤지 포르노의 유포 저지, 저작권이 있는 웹툰 등의 목적을 위해서라는 명목은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https를 차단하는 것은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첫째, 인터넷 검열의 시초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고 둘째, 인터넷 검열을 피하기 위한 우회 방법은 계속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나라가 중국의 인터넷 검열 과정을 똑같이 밟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책은 주위의 여론에 휩쓸려서 만드는 임시 미봉책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청원이 순식간에 26만 명을 넘는 사람들의 동의를 얻으며 논란이 증폭되자,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곧바로 수습에 나섰다. 이 위원장은 청원 등록 열흘 후인 2월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이번 조치 이후 어떤 분들은 분노하고 어떤 분들은 염려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여러 가지로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다만 이 위원장은 “기술 변화에 따라 https가 확산되면서 http 시절 방식으로는 불법 촬영물이 있는 해외 불법 사이트 차단이 어려워져 국회와 언론을 비롯해 국민들은 최근 몇 년간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다. 그래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SNI 차단 기술이 도입된 것”이라며 “이번에 불법 도박사이트 776곳과 불법 촬영물이 있는 음란사이트 96곳에 대한 차단 결정을 내린 것은 모두 현행법상 불법이고 차단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https 차단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또 “청원인은 이 조치가 검열의 시초가 될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검열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면서 “혹시 있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조차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므로 책임을 통감한다. 투명한 정부, 신뢰받는 정부가 되도록 모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답변에도, https 차단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인터넷을 통제하는 것은 유신시대에 어울릴만한 사고방식이며 국민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인터넷 세상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는 독재정권”이라고 말했던 것이 회자되면서,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학교 폭력 피해자인 아들을 도와달라는 청원도 22만 회가 넘는 추천을 받았다. 자신을 18세 아들을 둔 엄마라고 밝힌 청원자는 아들이 폭행을 당해 장이 파열되고 췌장을 절단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가해 학생은 여전히 편안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청원자는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 후 한 달 만에 가해 학생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해 생사의 기로에서 수술을 해야 했다”며 “아이는 장 파열 및 췌장을 절단당했지만 다섯 시간의 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도, 주변 모든 사람들도 기적이라고 한 수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아들이 살아난 것이 너무 행복했다. 가해 학생이 타당한 처벌을 받게 된다면, 건강해진 아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었다”며 “그런데 저는 경찰 조사가 시작되고 다시 지옥이 시작됐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청원자는 “가해 학생의 아버지는 경기 북부의 소방 고위직 공무원이다. 큰아버지는 경찰의 높은 분이다. 그 탓인지 너무나도 성의 없는 수사가 반복됐고, 검찰에 나가고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며 “돈 없고 빽 없는 저희 집과는 다르게 돈 많고 권력 있는 그 집의 힘으로 (저희에게는) 정말 비참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또 “(저는) 1년이라는 시간을 지옥에서 살면서 병원비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약 5000만 원 이상을 썼다. 간신히 중상해 보조를 받으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아들의 병간호를 하면서 1년을 살았다”며 “저희 아들은 사망 각서를 쓰고 수술을 받을 정도의 심각한 상황이었는데도 (가해 학생에게는) 겨우 집행유예 2년에 사회봉사 160시간이 나왔다”고 토로했다.
이어서 그는 “그에 반해 가해 학생의 부모와 그 학생은 너무나도 편안한 생활을 하면서 웃고 즐기고 놀러 다니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부모님도 반성은커녕 저에게 사과 한 번 하지 않았고, 제가 올린 탄원서들을 위조한 것 아니냐며 필적 감정까지 했다”면서 “최소한 반성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으면 학생의 미래를 생각해서다로 참고 싶었는데, 맞은 것도 죄라고 말하는 가해 학생 아버지의 말과 조금도 미안한 줄 모르는 학생의 행동에 항소를 했다”고 회고했다.
청원자는 “하지만 검찰 측에서는 저에게 한 마디 연락도 없이 재판을 진행했고, 저는 알지도 못한 채 항소가 기각됐다는 통보를 들었다. 그 재판에 가해 학생은 출석했지만 저희는 알지도 못했다”며 “결국 아들과 저는 정신병을 얻었다. 아들은 공황장애를 얻어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발작을 한다. 울분이 터지고 억울하고 마음이 아파서 매일 밤을 눈물로 보낸다. 눈 뜨고 코 베인 것 같은 이 결과와 이렇게 당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놨다.
다만 경찰은 가해 학생의 집에 경찰이 있다는 청원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가해학생 큰아버지는 일반 사업자로 확인됐다. 소방관인 아버지도 고위직은 아니다”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클럽 ‘버닝썬’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 요구 청원도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당초 폭행 사건에서 촉발된 ‘버닝썬’ 논란은 대표 이모 씨의 마약 투약, 사내이사로 재직했던 그룹 빅뱅 소속 가수 승리의 성접대 의혹, 경찰과의 유착 가능성 제기 등으로 논란이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