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웅식 기자]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유사한 형태의 비리가 반복되고 있다. 건설사들이 ‘클린 수주’를 표방하고 공정경쟁을 결의해도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개발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건설사의 조합원 포섭 전략은 “선거판보다 더 치열하다”고 할 정도로 그 수법은 치밀하다.
건설사의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은 과열돼 조합원들간 사생결단의 싸움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사업 진행을 놓고 집행부와 비상대책위원회가 갈등하다 보면 비방과 폭로전이 뒤따르고, 사업장은 고소·고발전의 복마전이 되기도 한다.
2017년 약 2조6000억원 규모의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단지 시공권을 놓고 대형 건설사 2곳이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한 수주 홍보전을 펼쳤다. 시공사 선정을 위한 조합원 총회가 열리는 날까지 상대방 흠집 내기와 비방이 난무했고, 이사비 무상지원과 특화비용을 두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수주 홍보전을 과열시킨 데에는 ‘OS요원’의 활동도 한몫했다. OS(Outsourcing)는 용역업체가 동원한 외부 인력을 말한다. 조합이나 건설사의 심부름꾼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법은 재건축·재개발 사업때 토지, 주택 소유자가 조합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 구성, 주민대표회의 구성, 시공사 선정의 절차에 조합원의 서면동의서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면동의서는 조합원의 의결권이다. 개인 사정으로 총회 참석이 어려운 조합원들은 서면으로 결의의 뜻을 밝힐 수 있다. 이때 조합 혹은 건설사로부터 고용된 OS요원이 서면동의서를 수령하는 일을 맡는다. 문제는 OS요원들이 조합이나 건설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서명할 것을 종용하는 데 있다. 이런 과정에 간혹 금품이 오가는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되기도 한다.
현재 수주전에 참여하는 건설사들은 1차 합동설명회 이후 부스를 설치해 수주홍보를 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OS요원을 통한 개별 홍보가 금지돼 있어 홍보부스를 찾는 조합원을 대상으로만 홍보를 할 수 있다. 수주 과열과 혼탁을 막기 위해 정부가 규정을 정한 것이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조합원 개별 홍보에 손놓고 있을 리는 없다. 조합 OS요원을 통해 개별홍보에 나선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조합은 총회 개최 안내와 안건 설명을 위해 OS요원을 임의로 뽑을 수 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조합원과 개별 접촉이 가능하다 보니 특정 건설사를 홍보하는 메신저로 나서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합 OS요원을 잡지 못하면 수주를 못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공정한 시공사 선정을 위해 개별 홍보를 못하도록 막은 것이 조합 OS요원을 통한 편법 홍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인지 최근 OS요원 활동을 규제하는 개정 법률안이 발의됐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도시정비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OS요원은 조합원을 방문해 서면동의서를 받을 수 없다. 위반시 해당 사업에 대한 시공자 선정은 취소되며, 금지규정을 위반한 용역업체의 임직원은 엄한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
OS요원들이 수주전의 핵심 인력이고 많은 불법 행위를 벌이는 것을 감안하면, 그동안 정부가 불법 행위를 방조해 온 것이나 다름없다. 재건축·재개발 비리를 줄이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OS요원의 서면동의서 수령 금지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대안으로 우편이나 전자투표를 활용해 조합원 결의를 모으는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건설사가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벌이는 ‘쩐(錢)의 전쟁’과 선심성 공약은 흔히 뇌물과 횡령을 동반하며, 이는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조합원들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건설사가 제시하는 당장의 이득이 커 보일 수 있지만, 얻는 만큼 내놓아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