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박세욱 기자]
복수노조 시행 후 최대 관심사는 ‘무노조’를 원칙으로 하는 삼성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나 였다. 기대만큼이나 지난 13일 삼성에버랜드 직원 4명을 주축으로 구성돼 삼성에 노조다운 노조가 탄생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삼성은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경영신념인 무노조 경영방침을 깨기 싫었던 것일까. 삼성노조가 설립된 지 불과 이틀도 되지 않아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삼성노조를 압박에 나섰다.
‘삼성이 노조 탄압을 시작했다’
15일 노동계와 삼성노동조합에 따르면 삼성에버랜드는 삼성노조 설립을 이끌어 온 조장희 부위원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한편 박원우 노조 위원장과 노조원 2명에 대해서도 감사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버랜드 측이 적용한 혐의는 회사정보 및 임직원 개인정보 무단유출, 범법사실로 인한 회사 명예훼손 등이었다.
삼성에버랜드는 조 부위원장이 지난해 11월과 올 7월 초 두 차례에 걸쳐 임직원 2000여명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 등 개인 신상정보를 무단 유출했다며 회사 기밀 유출 혐의를 적용했다. 또 조 부위원장이 도난차량을 몰고 다니다가 현행법으로 구금된 사실이 적발돼 회사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삼성노조는 삼성에버랜드 징계위원회 소집은 “노조 건설을 탄압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징계 위원회에 회부된 조 부위원장은 “외부에 유출한 게 아니라 노동조합에 필요한 사원들 연락처와 회사의 매출 자료 등을 포털사이트 이메일 계정으로 옮긴 것 뿐”이라며 “불법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열람한 게 아니라 삼성 직원이면 열람이 가능한 자료를 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차량과 관련해 조 부위원장은 “차량을 훔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맡겨 놓은 차량을 대신 운전하다 적발 된 것”이라며 “경찰 수사에서 차량을 훔친 사람과 번호판을 위조한 사람이 밝혀져 큰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삼성노조 측은 “(삼성은) 조 부위원장이 범죄를 저지르고 노조설립을 통해 이를 피해가려고 한 파렴치범으로 도덕성에 흠집을 내 삼성노조 건설을 좌절시키려고 한다”며 “삼성에버랜드는 회사의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삼성노조 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징계위원회를 급조해 조장희 부위원장에 대한 집중적인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삼성은 삼성노조 설립 하루 전날인 지난 11일 조 위원장에게 14일 열리는 인사위원회에 참석하라는 통지서를 보냈지만 이 통보서에는 취업규칙의 징계규정 일부만 기재돼 있을 뿐, 조 위원장 징계사유가 무엇인지는 아무런 명시돼 있지 않았다고 삼성노조는 설명했다.
현재 조 부위원장은 자신에게 적용된 징계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서면으로 다시 통해 줄 것으로 회사측에 요청한 상태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자세한 내용을 말해줄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노조에도 ‘알박기’가 있다?
지난 1일 복수노조가 시행되기 전 이미 삼성에버랜드에서는 노조가 설립돼 있었다. 지난달 20일 삼성에버랜드 노조는 경기도 용인시청에 설립신고서를 내고 사흘 뒤 노조 설립 신고증을 받아갔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노조원은 4명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이 노조의 위원장은 FC사업부 차장급 간부직원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삼성에버랜드에서는 노조설립이 가시화된 사업장인 만큼 회사 측이 복수노조 시행 후 노조설립을 대비해 친회사 성향의 노조를 설립한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삼성이 현행법의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을 활용해 친회사 성향 노조의 교섭권을 독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풀이된다.
복수노조의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 따르면 노조가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면 사측은 이 사실을 7일간 공고해야 하고 이 기간에 교섭 참가를 희망하는 노조가 없을 경우 기존 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갖게 돼 2년간 교섭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삼성노조는 “복수노조 시대를 맞아 무노조 경영전략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삼성이 ‘신유령 노조’를 설립해 교섭권을 선점하려는 전략을 펴는 것”이라며 “노조설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계열사에는 사용자가 지원하는 노조를 만들겠다는 수작”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삼성의 유령노조 설립은 “건설 투기판에서나 벌어질 법한 알박기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무슨 부동산 투기판에서나 벌어지는 알박기도 아니고, 교섭권을 독점하기 위해 유령 노조를 또 만들었냐”며 “그간 삼성에서 노동조합 설립은 그 자체로 노동자의 생명을 건 싸움이었다. 그룹 전체 그 어디에서도 노조 설립을 시도했던 노동자들은 누구나 회사의 협박에 시달렸으며, 실제 노동조합을 만든 이들은 해고됐다”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