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를 가다②-세종] 노무현의 도시…민주당 ‘절대 강세’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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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를 가다②-세종] 노무현의 도시…민주당 ‘절대 강세’ 지역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5.1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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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야촌 구도…젊은 공무원 대거 유입으로 민주당 절대 강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처음 세종시에 들어가면, 깔끔하고 차분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시사오늘
처음 세종시에 들어가면, 깔끔하고 차분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시사오늘

시원시원하게 잘 닦인 길, 깨끗하고 세련된 건물, 어딘지 모르게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들. 세종특별자치시의 첫인상은 ‘깔끔함’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서울에서 빠져나와 차로 두 시간여를 달려가면, 잘 만들어진 모델하우스 같은 느낌을 풍기는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이처럼 도시 전체가 잘 정돈된 분위기를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세종시가 ‘만들어진 도시’기 때문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세종시는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가 균형발전을 목적으로 구(舊) 충청남도 연기군 일대에 조성한 계획도시다.

행정수도 건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물거품이 됐다. ⓒ노무현 사료관
행정수도 건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물거품이 됐다. ⓒ노무현 사료관

‘관습헌법’으로 물거품된 행정수도

지금의 세종시가 탄생하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이 있었다. 당초 세종시는 ‘신행정수도’로 계획됐다. 후보 시절 충청권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개막 및 선포식’을 열고 충청권에 인구 50만 명 규모의 신행정수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2012년까지 행정부를 먼저 옮기고, 국회와 대법원에는 이전을 권고하되 결정은 각 기관에 맡기는 방식으로 신행정수도에 ‘정치·행정수도’ 지위를 부여하려 했다.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처럼 세종시를 정치·행정수도로, 서울시를 경제수도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 참여정부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의 일부 의원들조차도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고, 서울시의회 의원 50명과 대학교수, 전직 헌법재판관 등 169명이 참여한 ‘수도이전 위헌 헌법소원 대리인단’은 헌법재판소에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 소원을 제출했다.

이에 헌법재판소가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경국대전에 수록돼 장구한 기간 동안 국가의 기본 법규범으로 법적 효력을 가져왔던 관습헌법”이라며 “수도 이전은 헌법 개정 사안”이라는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노 전 대통령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참여정부는 이듬해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행정수도 대신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추진한다.

직접 반대 토론에 나서면서까지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직접 반대 토론에 나서면서까지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세종시 수정안’에 ‘구원자’로 등장한 박근혜

세종시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행정중심복합도시마저 축소해서 건설해야 한다는 이른바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세종시는 다시 한 번 정치권의 ‘핫 이슈’로 떠오른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의 성격을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변경하려 했다. 삼성 등 대기업을 유치해 교육·과학·산업 등 자족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충청도민들은 세종시 수정안을 ‘행정부처 이전 백지화’와 동의어로 받아들였다. 민주당도 원안 고수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정부에 맞섰다.

여기서 ‘세종시 구원자’가 등장한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여당 내 거대 계파인 친박계 수장(首長)이었던 박 전 대통령은 강한 반대 의사를 피력하며 정부의 수정안 추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처럼 당 안팎에서 거센 반발에 휩싸인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고, 2012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완공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19대 총선 전까지만 해도 세종시(구 연기군)는 보수 텃밭이었다. ⓒ시사오늘
제19대 총선 전까지만 해도 세종시(구 연기군)는 보수 텃밭이었다. ⓒ시사오늘

보수 텃밭에서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복잡한 건설 과정을 거쳐서인지, 세종시는 정치적으로도 독특한 데가 있다. 제19대 총선과 제18대 대선이 모두 열린 2012년까지만 해도, 세종시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 쪽에 가까웠다. 세종시가 세워진 충남 연기군 일대가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자유선진당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이뤄진 1987년 이후, 연기군은 ‘보수 텃밭’이나 다름없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이 불었던 제17대 총선에서만 열린우리당이 승리를 거뒀을 뿐, 제13~18대 총선까지 연기군은 신민주공화당·통일국민당·자민련·자유선진당 소속 후보들에게 금배지를 선사했다. 제19대 총선과 동시에 치러진 세종시 초대 시장선거에서조차 자유선진당 유한식 후보가 당선됐을 정도다.

제18대 대선에서도 보수 강세가 나타났다.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이 통합해 치른 이 선거에서, 세종시민들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3만3587표(51.91%),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3만787표(47.58%)를 던졌다. 자유선진당 표가 새누리당으로 흘러간 데다, 박근혜 후보가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면서 충청 지역 표심을 흡수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하지만 제18대 대선을 끝으로 세종시의 보수 성향은 거의 소멸한다. ‘노무현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정부 부처들의 이전이 완료되면서 젊은 공무원들이 대거 유입된 까닭이다. 2012년만 해도 11만5388명에 불과했던 세종시 인구는 2015년 21만4364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이때부터 세종시는 완벽한 친(親) 민주당 지역으로 탈바꿈한다.

실제로 제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51.08%를 획득,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15.24%)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21.02%),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6.03%)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제7회 지선에서 세종시장 후보로 나선 민주당 이춘희 후보는 무려 71.30%를 얻기도 했다.

세종시는 전국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도시다. ⓒ시사오늘
세종시는 전국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도시다. ⓒ시사오늘

‘젊은 도시’ 세종시…여도야촌 경향까지

이 같은 친 민주당 성향은 더욱 심화될 공산이 크다. 도시 특성으로 보나 인구 구조로 보나, 세종시는 민주당 선호도가 높고 앞으로도 더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민주당은 공무원 증원과 복지 확대 등의 정책에 힘을 쏟는 반면, 상대적으로 시장주의적인 한국당은 공공부문 개혁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5월 16일 <시사오늘>과 만난 30대 남성은 “공무원들은 당연히 연금개혁이니 뭐니 하는 한국당보다야 민주당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아이들 교육 문제가 있는 나이 지긋한 공무원들은 여기로 안 내려오고, 젊은 사람들만 내려와서 사는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인구 구조 역시 민주당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형태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20~40대의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 <리얼미터>가 5월 7일부터 10일까지 수행해 13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38.3% vs. 22.3%)와 30대(51.0% vs. 27.1%), 40대(46.0% vs. 28.8)까지의 젊은 층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았다.

공무원들이 주로 거주하는 행정신도시의 경우, 제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밀어주는 경향이 강했다. ⓒ시사오늘
공무원들이 주로 거주하는 행정신도시의 경우, 제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밀어주는 경향이 강했다. ⓒ시사오늘

그런데 세종시는 전국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도시(32.4세)다. 정부종합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함에 따라 젊은 공무원들이 대거 유입된 결과다. 실제로 행정신도시인 한솔동(6866표 vs. 3926표), 도담동(8839표 vs. 6021표), 아름동(7378표 vs. 4138표), 종촌동(9132표 vs. 5829표), 고운동(6730표 vs. 4447표), 보람동(5684표 vs. 3705표) 등은 제19대 대선에서 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표를 모두 더한 것보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 득표수가 더 많았다.

같은 날 <시사오늘>과 만난 세종시 장군면의 한 식당 주인은 “(세종시는) 노무현이 만든 동네고, 민주당이 작정하고 밀어주려고 하는데 당연히 민주당이 세다”면서 “이 동네는 나이 먹은 사람들도 (민주당과 한국당 지지율이) 반반”이라고 귀띔했다.

읍·면 지역은 아직도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강하지만, 인구가 적어 큰 변수가 되기는 어렵다. 사진은 세종시 장군면의 모습. ⓒ시사오늘
읍·면 지역은 아직도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강하지만, 인구가 적어 큰 변수가 되기는 어렵다. 사진은 세종시 장군면의 모습. ⓒ시사오늘

물론 읍·면 등 외곽 지역은 보수세가 강하다. 조치원읍(1만1360표 vs. 9859표), 연기면(963표 vs. 789표), 연동면(1158표 vs. 601표), 부강면(2011표 vs. 1368표), 금남면(2954표 vs. 1954표), 장군면(1605표 vs. 1221표), 연서면(2463표 vs. 1819표), 전의면(2120표 vs. 1141표), 전동면(1277표 vs. 686표), 소정면(943표 vs. 492표) 등은 세 후보 표수를 합칠 경우 문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런 구도가 형성되면 보수 정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제19대 대선을 기준으로 6개 동의 선거인 수가 9만1770명인 반면, 10개 읍·면의 선거인 수는 7만2486명에 불과했다. 더욱이 세종시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조치원읍의 경우, 고려대 세종캠퍼스와 홍익대 세종캠퍼스가 위치하고 있어 꼭 보수 우위 지역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여러모로 한국당에게는 까다로운 조건이다.

세종시 인구가 32만 명을 돌파함에 따라, 제21대 총선에서는 선거구가 분할될 가능성이 높다. ⓒ세종시
세종시 인구가 32만 명을 돌파함에 따라, 제21대 총선에서는 선거구가 분할될 가능성이 높다. ⓒ세종시

한국당이 기대해볼 만한 유일한 변수는 선거구 획정이다.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는 선거법 제25조 제2항에 의한 선거구 획정의 위헌 여부를 심판해달라는 헌법소원에 대해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3대1에 달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인구 편차를 2대1로 조정하라는 입법 기준도 제시했다.

헌재 결정에 따르면, 선거구 상한 인구는 27만여 명이 된다. 2019년 3월말 기준 세종시 총인구는 32만7976명으로, 선거구 상한 인구를 초과한다. 2020년 총선에서는 선거구 분할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세종시 선거도 갑·을 선거구로 나눠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앞서 살펴봤듯이 인구 구성이 워낙 젊은 층 위주다 보니,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 이뤄지지 않는 한 선거구가 분할된다고 해도 한국당이 당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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