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최신형 기자]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 문 이사장은 지난달 20일 뉴시스와 모노리서치가 공동 조사한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11.8%를 기록하며 손학규 민주당 대표(11.3%)를 제쳤다. 다른 여론조사기관의 지지율도 비슷했다. 리얼미터가 7월 넷째 주 차기 대선주자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손학규 8.7% vs 문재인 8.2%’의 구도를 보이며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쳤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문 이사장의 지지율 추세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모노리서치의 6월 여론조사 결과는‘문재인 8.5% vs 손학규 16.5%’였다. 문 이사장이 전월대비 3.3%의 상승추세를 보인데 반해, 손 대표는 무려 5.2%의 지지율이 하락했다.
문 이사장의 대망론이 정치권 안팎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지지율의 상승 추세 때문이다. 더불어 민주당은 문 이사장에게 지지부진한 야권통합의 불쏘시개와 박근혜 대항마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망론…‘태풍이냐, 미풍이냐’
문 이사장은 아직 정치권 입문 전이다. 차기 대권 출마와 관련해서도 침묵 내지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대권잠룡들을 위협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문 이사장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사실이 방증된 셈이다. 그의 저서 <운명>이 베스트셀러를 기록 중인 이유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주식 상장 전임에도 불구하고 우량주로 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문 이사장의 최대 강점은 ‘신뢰·강직’ 등으로 대변되는 이미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한 결과, 그에게서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문 이사장은 부산경남(PK) 출신이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각각 ‘DJ와 노무현’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영남표의 분산 때문이었다.
1997년 대선 때는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2002년 때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각각 한나라당의 PK표를 분산시켰다. 지극히 공학적인 표 계산이지만, 결국 2012년 대선 판도도 한나라당의 PK표를 야권이 얼마나 선점할 수 있는냐에 따라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문재인 역할론과 동시에 남부민주벨트라는 대선 승리 전략을 설파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 그는 새 인물이다. 한국 정치의 특징 중 하나는 대선 때마다 어김없이 부는 ‘새 인물론’이다. 1992년 대선 때는 정주영 국민당 후보, 1997년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 2002년 노무현 민주당 후보, 2007년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등 그간 대선 때마다 ‘제3 인물’의 득표력이 기존의 정치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 중 ‘정주영 이인제 문국현’ 등이 대선에 실패했고, 노무현만이 집권에 성공했다. 창당을 한 후보는 모두 패했고, 기존의 정당에서 출마한 노무현 후보만이 대선에서 이겼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본지가 <야권통합 가능한가>라는 시리즈로 민주당 인사들과 접촉한 결과, 한결 같은 주장은 바로 ‘문재인 역할론=야권대통합’이었다. 문 이사장이 지리멸렬한 야권대통합을 성사시킨 다음, 민주당 안에서 대권후보로 나선다면 대세론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시소게임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 새 인물론’ 등은 오히려 문 이사장에게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문재인 바람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나 정치평론가들은 문 이사장의 검증을 문제 삼으며 문재인 경쟁력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시사평론가 박상병 박사는 기자에게 “문재인 대망론이 불거지는 이유는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는 등 친노진영의 좌장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면서도 “아직 정치권 입문 전이고, 검증이라는 절차가 남아있다”고 선을 그었다.
시민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신뢰감을 주기는 한데, 대권까지는 아직 판단 유보”라는 것이다.
마산이 고향인 직장인 이승엽(32·남)씨는 문재인 대망론과 관련해 “문재인 이사장의 인기는 미디어의 힘이 크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PK에 반 한나라당 정서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자연스럽게 PK에 반 박근혜-비 박근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문재인 이사장이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대권후보로서는 아직까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직장인 심표근 씨(31·남)도 “문재인 이사장이 언론에 떠오르고 있기는 한데…뭐랄까, 아직까지 정치인으로서 리더십 등을 보여준 적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지난 4월 재보선 이후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하락하면서 문재인 이사장이 대안론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권 후보로서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친노 박재호 전 국민체육공단 이사장은 문재인 검증과 관련해 “정치인에 대한 검증은 국민들이 하는 것이지, 정치권이 하는 게 아니다”라며 “노무현 대통령도 2002년 당시 대선 때 기득권 층에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비토했다”고 전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문 이사장이 야권통합 역할을 넘어 본격적인 정치판에 뛰어들지에 의구심을 던진다. 문 이사장이 권력을 쟁취하려는, 권력의지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정치권에 입문하지 않는 이유도 권력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정치권에 입문한 뒤 PK 지역의 바람을 태풍으로 만드는 진용을 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도 문 이사장의 정치권 입문과 관련해 “본인이 결정할 일”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는 문 이사장이 원탁회의에 참여한 만큼, 빠르면 추석 이후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 때 민주당이 PK 지역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영남 분열’ 전략을 위해선 문 이사장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문 이사장의 PK 바람이 ‘태풍인지, 미풍인지’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대세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PK 영향력이 극대화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탄핵정국 속에서도 한나라당은 ‘박근혜 바람’을 통해 PK 지역에서 한 석을 제외하고 모두 석권했다.
문재인의 PK 바람이 태풍으로 전환되기 위한 조건이 이 지점에 있다. 문 이사장이 내년 총선 때 ‘문재인 vs 박근혜’ 라는 방정식에서 이겨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승리시 문재인 바람은 태풍으로, 패배 혹은 정치 외유를 계속 할 경우 문재인 바람은 찻잔 속에 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