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한일 관계가 극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7월 4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발동했기 때문인데요. 양국의 외교적 갈등에 국민들까지 반응하면서, 반일(反日)·반한(反韓)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뜬금없이’ 수출 규제 조치에 들어간 것일까요. 지지율이 떨어진 아베 신조 총리가 민족주의를 자극해 반등(反騰)을 꾀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만, 일단 일본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신뢰 관계 훼손’입니다. “징용재판 등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한국을 믿을 수 없게 됐다”는 거죠.
이번 사건의 시작을 살펴보려면 1965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965년 6월 22일, 박정희 정부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해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협정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 협력에 관한 협정 △문화재 및 문화 협력에 관한 협정 등 5개 조약을 정식 발효합니다.
이 가운데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 협력에 관한 협정’이 바로 청구권 협정인데요. 이 협정은 일본이 3억 달러에 해당하는 생산물 및 용역을 10년에 걸쳐 무상 제공하고 2억 달러는 장기 저리 차관으로 공여하며(제1조), 이로써 한일 양국과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제2조)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청구권 협정 제2조입니다. 우선 우리나라는 ‘최종적 해결’이라는 문구를 ‘외교보호권 포기’로 정의합니다. 외교 보호권이란 자국민이 다른 국가에 의해 손해를 입었을 때 국가가 나서서 그 권리를 챙겨주는 것을 말하는데요. 1965년의 청구권 협정은 ‘더 이상 국가가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한 데 불과하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죠.
그러니까 국가 차원의 배상 요구는 더 이상 불가능하지만, 개인 차원의 청구권은 남아있으므로 전범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2012년 5월 대법원이 ‘한일 협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개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최종적 해결’이란 말 그대로 ‘모든 문제의 해결’을 뜻한다고 역설합니다. ‘1965년에 양국 간 조약으로 이미 모든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 와서 한국 대법원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하는 것은 약속 위반 아니냐’라는 것이 일본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주장에 더 타당성이 있을까요. 참고가 될 만한 선례가 있습니다. 1972년 9월 29일, 중국과 일본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문구가 포함된 중일공동성명을 체결했습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7년 4월 27일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니시마츠 건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피해자 개인들의 실체적인 권리까지 포기·소멸된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했습니다. 우리 대법원 입장과 일치하죠. 이후 니시마츠 건설은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47억 원을 배상했습니다.
일본의 고노 다로 외무상 역시 지난해 11월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일 양국 갈등의 불씨가 된 청구권 협정 제2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