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대표의 의중(意中)은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의원들 입장에서는 공천권을 쥔 당내 최고 ‘권력자’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호흡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원내대표 후보들은 직·간접적으로 당대표와의 인연을 강조하는 전략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는 ‘황심(黃心) 마케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친박(親朴)으로 분류되는 유기준 의원과 윤상현 의원이 사석에서 ‘황교안 대표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지지만, 어디까지나 소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노골적인 ‘황심 마케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흐름을 ‘나경원 교체 후폭풍’으로 본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통해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고 공언한 직후, 지도부가 ‘임기 연장 불가’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나 원내대표가 ‘축출(逐出)’된 것이 상황을 바꿨다는 지적이다. 의원들 사이에 황 대표의 ‘독주(獨走)’ 견제하려는 심리가 형성됐다는 이야기다.
4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국당 관계자는 당내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어제(3일)까지만 해도 나 원내대표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너무 실수가 많지 않았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퇴 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태스크포스 팀에) 표창장 줬던 것도 그렇고 패스트트랙으로 수사 받은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 준다는 것도 그렇고 필리버스터도 그렇고. 나 원내대표로 총선을 치르는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 원내대표가 쫓겨나다시피 나가고 난 뒤에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 원내대표에 대한 동정 여론도 많아지고, 황 대표가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실제로 3일 최고위원회의 임기 연장 불가 결정이 내려진 후, 한국당에서는 황 대표의 리더십을 겨냥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태흠 의원은 4일 의총에서 “최고위에서 의결한 내용은 참 유감스럽고 개탄스럽다. 의총에 (원내대표 선출) 권한이 있는 만큼 당대표를 비롯해 최고위원들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세연 의원도 같은 날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최고위가 원내대표 임기 연장 해석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당 지배구조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라며 “당이 정말 말기 증세를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했다. 김용태 의원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황 대표가 단식으로 얻은 것은 당 혁신이 아니라 당 사유화”라고 지적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적잖은 의원들이 황 대표를 견제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선 관계자는 6일 <시사오늘>과 다시 만나 이렇게 말했다.
“임기가 10일까지였으니 나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건 이상할 게 없는 일이지만 그 과정이 문제다. (임기 연장 불가 결정을) 최고위가 독단적으로 했다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퍼지고 있다. 당직 인선도 그렇고, 황 대표가 단식 투쟁을 끝나고 돌아온 뒤 너무 강경 일변도로 당을 잡으려는 모습이 보이니까 반감도 커지는 것 같다. 솔직히 국회에 황 대표보다 정치 경력이 적은 분이 누가 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내가 황 대표 사람이오’ 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