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중견건설사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정부와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의 규제로 올해 정비사업 위축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대형업체들이 중견사 일감까지 눈독을 들이자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글로벌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그룹은 지난달 30일 미국 LA에서 주상복합 프로젝트 'The BORA 3170' 본 착공에 들어갔다고 밝히며 미국 주택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LA 한인타운 중심가에 조성되는 The BORA 3170은 지하 1층~지상 8층, 총 252세대 규모 아파트와 상업시설로 구성된다.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반도건설은 2년 전부터 전문가를 영입해 미국사업 TF팀을 구성, 철저한 시장조사와 사업성 검토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사업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미국에서 우리나라 건설사가 직접 아파트를 짓는 보기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미국 주택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리스크 최소화·수익성 극대화 차원에서 단순 투자가 아닌 직접 설계부터 시행·시공까지 맡기로 결정했다는 게 반도건설의 설명이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주택 브랜드(유보라)를 해외에서도 그대로 유지(The BORA)하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반도건설이 본격적으로 해외사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실제로 반도건설 계열 반도종합건설의 미국 현지법인인 반도델라 측은 "LA 한인타운의 랜드마크로 건설될 The BORA 3170은 미국에서 해외사업의 새로운 성공모델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양질의 사업지 발굴을 통해 미국, 유럽 등에서 해외사업 활로를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시공능력평가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며 대형건설사 반열에 올랐지만 업계 내에선 아직 중견업체로 분류되는 호반그룹도 최근 연이어 해외사업 진출을 위한 포석을 두고 있다. 호반그룹 계열 호반산업은 지난달 29일 독일계 TBM(Tunnel Boring Machine, 회전식 터널 굴진기) 제작업체 헤렌크네히트와 국내 TBM 관련 기술개발과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호반산업의 자회사 호반TBM이 앞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5공구 그리퍼(Gripper) TBM 건설공사를 수주한 만큼, 해당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업무협약이라는 게 중론이지만 해외사업 교두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호반산업 측은 "이번 협약을 바탕으로 TBM 시공능력을 고도화하고 전문 인력을 지속 양성해 국내외 TBM시장에서 추가적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호반건설은 총 70개 협력업체를 초청해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 태국 방콕, 12월 베트남 호치민 등에서 동남아 시장 개척을 위한 해외 시찰을 진행한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호반그룹은 오래 전부터 해외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2015년 금호산업, 2018년 대우건설 인수를 추진했던 주된 목적도 이들 건설사들이 가진 해외사업 역량과 노하우에 있었다"며 "연내 상장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해외사업 진출을 모색하는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 추진 당시 "앞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기회가 많을 것이다. 이것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핵심"이라고 복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중흥그룹은 M&A를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해 속내를 최근 내비쳤다.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은 지난달 21일 광주 지역 기자간담회에서 "3년 내 대기업을 인수해 재계 서열 20위 안에 진입하겠다. 3년 안에 4조 원 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중 1조 원 이상을 투입해 대기업을 인수하고 나머지 3조 원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것"이라며 "경험이 없는 제조업 분야는 잘 모른다.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된 '해외사업'을 많이 하는 대기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대우건설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 회장의 공언대로 자금력은 충분해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중흥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중흥토건과 중흥건설의 현금성 자산은 2018년 기준 약 7000억~8000억 원으로, 과거 대우건설 인수 추진 당시 호반건설의 현금성 자산과 비슷한 규모다.
이밖에 우미건설도 지난 2017년 베트남 호치민에 현지법인 우미 비나(WOOMI VINA)를 설립한 이후 현지 투자사 지분을 인수하고 현지 건설업체에 자금을 투자하는 등 동남아 시장 개척을 위한 잰걸음에 들어간 양상이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텃밭인 공공택지 매물이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지방이나 중소규모 정비사업까지 대형사들이 가져가니까 중견건설사들 입장에서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조만간 비상장 중견건설사들의 지난해 실적이 공개될 텐데, 아마 예상대로 우울한 성적표를 받을 것"이라며 "중견업체의 해외사업 진출, M&A 등이 앞으로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다. 이건 경영전략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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