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기현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
지난 6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관해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예비판결을 내렸다. '보톡스'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원료인 보툴리눔 균주 출처를 두고, 대웅제약이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 기술문서 등을 훔쳐 갔다는 메디톡스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다만 대웅제약은 예비 판결이 '권고사항'에 불과해 구속력이 없음을 밝힘과 동시에 공식적 이의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제품·서비스 시장 내 국경의 의미가 점점 무색해지는 글로벌 경쟁 시대가 격화되면서 회사가 보유한 각종 유무형 영업비밀의 경제적 가치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오랜기간 연구·투자한 만큼의 효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기술의 실용화와 독자 기술로 유지할 수 있게끔 법적 보호 조치를 취하는 것 역시 중요 과제가 됐다. 그 상대도 국내 기업 뿐 아니라 거대 자본과 값싼 노동력을 보유한 전 세계 기업들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영업비밀이란 무엇일까. 부정경쟁방지법 상의 정의를 따르자면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은 것임과 동시에 독립적으로 경제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국내법상 정의는 미국 UTSA 제1조 제4항 제1호, 제2호 및 일본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6호에서 정하는 영업비밀(비공지성, 경제성, 비밀관리성. 단, 일본의 경우 경제성은 그 요건으로 하지 않음)과도 개념이 일치한다. 영업비밀 침해 문제는 타국 기업 간 국제법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문제가 상당수다 보니, 암묵적인 국제 표준에 따른 입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내에서는 영업비밀 침해의 대표적 케이스가 한 회사의 근속 직원이 직무상 알게 된 영업비밀, 노하우, 재산적 정보 등을 기존의 경쟁사업자 또는 신규사업자에게 유출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던 한국 직원을 중국기업이 높은 몸값에 모셔가다시피 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데, 영업비밀침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국내법만으로 다룰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법적인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형법상 국가나 개인의 비밀에 관한 죄는 외교상 비밀누설죄, 공무상 기밀누설죄, 비밀침해죄 등으로 규율될 수 있으나, 영업비밀의 침해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물론 이를 지득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행위가 형법상 구성요건해당성이 있다면 해당 죄로 처벌할 여지가 있다.
형법상 처벌규정으로 다룰 수 없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현행 부정경쟁방지법 상 영업비밀침해행위에 대한 금지청구 및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며, 특히 외국에서 사용되거나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행위한 자에게는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엄중히 다루고 있다(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이 외 기타 민사적인 방법으로 △금지·예방청구 △물건 등의 폐기·제거 청구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고의·과실의 경우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 등의 구제수단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영업비밀침해 행위 유형은 크게 순수히 영업비밀을 부정하게 취득하는 행위와 취득한 영업비밀을 사용 또는 유포하는 등 공개하는 행위로 나눌 수 있다. 계약관계상 또는 관행에 따라 영업비밀을 유지할 의무가 있는 자에게 주로 인정된다. 우리 판례는 "제조공정에 있어서 일반적 지식 또는 기능이라고 할 수 없는 특수한 기술상의 비밀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비밀정보는 일종의 객관화된 지적재산으로서, 퇴직사원의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하여 회사와의 사이에 침해행위 중지 및 위반시 손해배상약정금을 정한 합의가 이뤄졌다면, 그 합의서의 내용을 회사의 영업비밀을 지득하는 입장에 있었던 사원들에게 퇴직 후 비밀유지의무 내지 경업금지의무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직업선택의 자유에 관한 헌법규정에 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러한 특약사항이 무한정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업금지약정에 관해 대법원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경업금지약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봐야 한다"는 입장을 일찍이 밝힌 바 있다. 이는 영업비밀준수의무에 관한 약정에도 직접적용 또는 유추적용될 수 있는 법리로 볼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회사의 노력만큼이나 신의칙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개인이 가진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잠재적 기회 제공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가치다. 이에 영업비밀침해의 건은 굉장히 예민할 수밖에 없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물론 회사와 개인의 이익이 상충하지 않게끔 오해없이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협의를 모색하고 양측간의 신뢰를 쌓아가는 작업이 그 어떤 것보다 실질적이고도 사전적인 구제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자의 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조기현 변호사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
-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법률고문
- 제52회 사법시험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