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이한 공정위…대형 건설사도, 하청업체도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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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안이한 공정위…대형 건설사도, 하청업체도 ‘눈물’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09.29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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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심사·심의절차종료', 일을 키웠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 국정감사는 일반 증인·참고인을 예년보다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국감 단골손님인 건설사 CEO들도 한숨을 덜 전망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해외 건설현장 하청업체 공사대금 미지급 사건을 다루기 위해 이광일 GS건설 플랜트부문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GS건설의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발전소 공사현장에 참여한 한 하청업체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GS건설의 대금 미지급과 계약 위반, 다양한 방식의 부당행위로 148억 원 가량의 피해를 봤다'는 내용의 글을 지난여름 올려 화제가 됐던 사안이다. 해당 업체는 GS건설로부터 갑질에 시달렸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공정위조차 자신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 본지도 해당 업체로부터 제보를 받고 취재에 착수했으나 보도로 이어지진 않았다. 기사화하기에는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GS건설 측으로부터 "이미 세 차례나 공정위로부터 무혐의 결정을 받은 사안으로, 하청업체의 일방적인 주장이다"라는 입장을 받았기에 '공정위가 설마 아무 이유도 없이 무혐의 결정을 내렸을까'하는 생각에 더이상 취재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뭔가 미심쩍다는 기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공정위에 관련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해 지난달 말 답변을 받았다.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공정위는 "사건 처분에 대한 근거 자료들은 내부적인 조사 정보에 해당하는 것으로 현행법상 법인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사항이 포함돼 있어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등에 해당함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는 문서 2장을 공개했다. 이 서류는 해당 하청업체가 과거 공정위 조치에 항의하며 2018년 GS건설을 상대로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에 대해 재신고한 사건 관련 공정위의 회신이다. 문서를 살펴보면 2019년 재신고사건심사위원회는 "사안을 검토한 결과 공정위 규칙상 재심사 관련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심사불개시'를 주문했다. 이어 공정위는 "위원회가 이미 처리한 사건(원사건 2015서건3870, 처리결과: 심사절차종료)과 동일한 위반 사실에 대해 다시 신고한 사안으로, 재신고사건심사위가 재심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사불개시를 결정함에 따라 동 사건에 대해 심사불개시했음을 알린다"고 해당 하청업체에 통보했다.

역시 기사로 다루기엔 부족한 정보가 담겨 있었으나,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 보였다. '처리결과: 심사절차종료'라는 문구다. 취재 당시 GS건설이 내놓은 입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무혐의'는 아니었고, '사실상 무혐의'였다. 심사·심의절차종료 처분은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혐의가 있다고 보기에도, 그렇다고 무혐의라고 하기에도 어려우니 아예 손을 떼는 것이다. 이 처분을 받으면 피해자가 재신고를 하더라도 재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을 통해 한국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시장생태계를 구축하는 데에 역점을 두겠다'는 공언과는 전혀 상반된, 무책임한 조치가 바로 심사·심의절차종료다.

때문에 공정위의 심사·심의절차종료 처분에 대한 비판은 이전부터 심심찮게 제기돼 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공정위는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독성물질 표시 여부를 다루는 사안에서 "제품의 인체 위해성 여부가 최종 확인된 이후 위법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심사·심의절차종료 처분을 내려 시민사회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다. 공정위의 이 같은 조치로 논란은 더욱 커졌고 그 후폭풍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유선주 전 공정위 심판관리관은 이달 초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정위원장을 역임할 당시 가습기살균제 사건 처리와 관련해 공정위 공무원들에게 위법 행위를 은폐하라고 지시했으며, 여기에는 조국 당시 민정수석도 연루됐다"고 주장하며 두 사람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무책임한 조치가 일을 키운 셈이다.

이번 사안도 공정위의 안이함으로 인해 일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애초부터 공정위가 '혐의 있음' 또는 '무혐의' 판단을 책임 있게 내렸다면 수년 동안 하청업체가 피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건설사 CEO가 국감장에 출석해 의원들로부터 호통 세례를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선량한 시민들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할 공정위가 되레 국민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해서야 되겠는가. 공정위가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질서 구현과 소비자 권익 제고'라는 역할에 보다 충실히 임하길 바란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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