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장대한 기자]
'수신제가'(修身齊家). 스스로의 심신을 정갈히 해야 집안을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사자성어입니다. 이 뒤에 붙는 말이 '치국평천하'임을 상기한다면, 나랏일을 돌보는 사람이나 경영자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하 한국타이어)을 이끌고 있는 조현범 사장에게 빗대어 본다면, 다소 거리가 있어보이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선 '수신'(修身)부터 난관에 부딪히네요. 조현범 사장은 하청업체로부터 수억 원의 뒷돈을 받아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인정,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기각됐고, 지난 20일 원심 유지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앞서 조 사장은 하청업체로부터 납품 대가로 6억 원 가량을 챙기고, 계열사 자금 2억6000만 원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된 바 있습니다. 특히 지인의 매형 명의로 개설된 차명통장을 제공받고, 뒷돈을 유흥비로 사용하기 위해 고급주점 여종업원의 아버지 명의로 개설된 차명계좌까지 제공받았다는데요. 이러한 꼼수에도 법원의 철퇴를 피해가지는 못했네요.
검은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바로 세우지 못한 조현범 사장의 행실은 지탄받기 충분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조현범 사장은 아버지 조양래 회장으로부터 그간의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회사 지분을 증여받고, 경영권을 독차지하게 됩니다.
결국 이 부분에서 가족 간 불화가 발생했고, 조현범 사장의 '제가'(齊家)에도 먹구름이 끼게 됐습니다. 발단은 고령인 조양래 회장이 2남 2녀의 자식들 중 막내인 조현범 사장에게 보유지분 전량(지분율 23.59%)을 물려준 데서 비롯됐습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한 명의 자식한테만 재산을 물려준다면, 반발하지 않을 자식이 어디있을까요. 물론 부모가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데, 유능한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데 꼬투리를 잡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위해,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친 조현식 부회장의 입장을 고려하면, '낙동강 오리알'이 돼버린 얄궂은 상황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에 나머지 형제들을 대표해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성년후견심판 청구라는 총대를 맸습니다.
조 이사장은 지난 7월 법원에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한 데 이어 지난 25일 첫 면접조사를 마쳤습니다. 그녀는 입장문을 통해 "부도덕한 비리와 잘못된 경영판단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친 조현범 사장을 어떻게 직원들이 믿고 따르겠냐.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던 아버지 조 회장의 잘못된 결정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막내 동생에게만 치중된 편향된 경영권 승계가 형제들간의 반목과 다툼으로 이어진 꼴입니다. 장남(셋째)인 조현식 한국타이어 부회장과 차녀(둘째)인 조희원씨도 조 이사장의 편에 섰습니다.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막내 아들과 나머지 3명의 형제간 재산 분쟁을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 조양래 회장의 마음도 편치 않을 듯 싶네요.
반면에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조현범 사장은 크게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수신제가'를 모두 거스른 상황에서 별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일까요. 오히려 회사 경영권 확보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조현범 사장은 지난 26일 한국타이어 지주사(한국테크놀로지그룹)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됐습니다. 앞선 사법리스크로 인해 핵심계열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지 불과 5개월 만의 일인데요. 당시 대표이사직 사임 이유였던 재판이 마무리돼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만큼, 경영권을 지주사로까지 넓히기 위한 행보로 해석됩니다. 기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대표이사가 형인 조현식 부회장 단독 체제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설득력이 높아집니다.
이와 함께 한국타이어는 한국아트라스비엑스를 흡수 합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단순 자회사 경영권을 보유한 지주사가 아닌 핵심·신규사업까지 총괄하는 사업형 지주사 체제로 거듭나겠다는 것인데요. 42.9%의 지주사 지분을 보유한 조현범 사장으로서는 그룹 내 지배력 강화와 더불어 수익성 도모까지 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니, 날개를 단 셈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어찌됐든 조현범 사장은 명실상부한 한국타이어 후계자로 입지를 굳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이인 조희경 이사장의 일갈이 귀에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더해 조현범 사장이 대표이사직을 맡았던 2018~2019년의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경영실적은 내리막길을 지속, 영업이익률이 2017년 11.6%에서 2019년 7.9% 수준까지 떨어졌음은 불안요소로 지목됩니다. '수신제가'를 이루지 못한 조현범 사장이 앞으로는 '치국평천하'를 이룰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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