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눈 들어 중동을 보라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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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눈 들어 중동을 보라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3.12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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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네옴시티·튀르키예 지진 복구 등 대규모 건설 발주 채비
“국가 간 약속은 첫 단추에 불과…미국 업체와 협력관계 중요”
“건설, 고급 기능인력 필요해져…업체들 덤핑행위 삼가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2일 오전 세종시 연기면의 한 건설 현장을 방문해 타워크레인 관련 안전수칙 준수 등 운영상황을 점검한 뒤 관계자들과 간담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2일 오전 세종시 연기면의 한 건설 현장을 방문해 타워크레인 관련 안전수칙 준수 등 운영상황을 점검한 뒤 관계자들과 간담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구촌에 다시 대규모 건설 붐이 일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대규모 건설이 첨단도시 프로젝트와 지진, 전쟁 등의 영향으로 이미 시작됐거나 잇따라 발주될 채비에 들어갔다. 사우디의 네옴 프로젝트, 튀르키예의 대지진 복구 사업,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사업 등이 그것들이다. 아랍 에미리트는 바라카 원전 건설에서 보여준 한국 건설사의 기술력과 공기 이행 능력을 높이 평가, 최우선으로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한국, 중국, 미국이 중동지역의 대형 공사 수주전에 뛰어들었으며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물밑 수주작업도 상당 부분 진척됐을 것이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의 수주 작업은 통상 정부의 뒷받침 아래 민간 업체들이 공동으로 진행한다.

중동지역을 시작으로 일고 있는 건설 붐과 관련, 건설업 주변 인사들이 요즘 궁금해하는 게 많아졌다.

“우리 업체들의 수주는 어느 정도까지 구체화했을까. 업계와 정부 간의 협력 체제는 제대로 갖춰졌나. 미국 대형업체들과의 협력관계가 잘 구축돼있을까. 우리 근로자들이 40여 년 전처럼 한밤에 횃불 밝혀가며 공사를 진행해 공기를 단축시킬 수 있을까. 다시 한번 현지인들을 감동시켜 제2의 중동 건설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

국가 간 약속만으론 수주 어렵다

현재까지는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각국의 수주전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중국·한국이 먼저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의 중동 건설 실적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과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간의 회담을 통해 일단 가시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중국은 최근 소원해진 미국과 사우디 간의 관계를 파고들어 사우디를 공략하기 위해 시진핑이 사우디를 방문했다. 원유 값을 달러화 대신 위안화로 지불하는 방식까지 논의하면서 양국 간 포괄적 동반자 관계 협정에 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진핑 방문 때 호위한 공군기들도 미국에서 구입한 F-15기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란의 압박에 맞서려면 사우디는 여전히 미군의 보호가 필요하다. 저임금 근로자를 앞세운 중국의 대사우디 수주전은 네옴 시티 프로젝트에서 일찌감치 둥지를 튼 미국 업체들의 영향권 아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네옴 시티 사업도 결국 우리로서는 미국 업체들과의 협력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네옴 프로젝트 실무를 맡고 있는 미국 업체는 대형 건설사 벡텔과 인프라 컨설팅사 에이콤, 그리고 건축회사 모포시스가 기본 도시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의 주체나 발주처는 사우디이지만 프로젝트 전반의 실무는 기술력과 노하우가 쌓인 미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업체들은 1차 중동 붐 과정에서 미국 업체들의 철저한 감리로 적지 않은 불이익을 본 경험도 안고 있다. 일례로 건물 외관을 옅은 노란색으로 칠하도록 주문받고 짙은 노란색으로 칠해 모든 공사를 다시 해야 했던 식이었다. 그래서 중동 붐 속에서도 건설사들 사이에선 “까다로운 감리 때문에 아까지(손해) 났다”라는 소리가 자주 터져 나왔다.

그런 경험을 참고해 우리나라에도 1990년대부터 종합적인 건설사업관리(PM) 업무를 수행하는 업체가 탄생했다. PM은 건설 사업을 기획부터 설계, 시공, 유지관리까지 도맡는 일종의 종합건설업이다. 명실상부한 종합건설업체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첫 주자인 한미글로벌(종전 명칭 한미파슨스)은 이미 네옴시티 프로젝트에서 PM 용역 서비스 수주 성과도 올렸다. 건설사들과 협력 진출해 성과를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일부 대형 건설사도 유사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렇더라도 미국 업체들과의 협력 강화는 필수적이다. 중국, 일본과의 수주 경쟁에서도 발주처와 함께 미국 업체들의 협조가 긴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업체들이 걱정하는 가장 큰 문제는 건설인력, 건설근로자 문제들로 꼽힌다.

지금 행태론 제2의 중동 붐 어림도 없다

1970~1980년대 초반의 중동 건설 붐 때와 현재의 근로 및 근로자 환경은 판이하다. 그때는 인건비가 쌌고 단순 시공 일을 많이 땄으며 인력 수출 효과도 컸다. 이제 그런 공사의 상당량은 중국, 인도 등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 주로 기술과 기획력으로 차별화하면서 제조업 투자, 원전 기술 등과 연계하는 쪽에 집중해야만 한다.

건설인력도 따라서 단순노동보다는 고급 기기와 결합 기술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고급 기능인력을 더 필요로 하게 됐다.

공사판에서 일자리 장사를 하거나 웃돈 성격의 월례비가 안 나온다고 작업하다 말고 타워 크레인을 세워둔 채 퇴근하는 식의 태업이나 하는 행태로는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키지 못한다. 정부가 노조 탄압한다고 시위나 하면서 집안에서 티격태격하는 사이, 정부가 길 터놓은 대형 수주 건들도 모두 제3국으로 넘어가기에 십상이다. 예전의 우리처럼 노사가 똘똘 뭉쳐 달려드는 개도국들과 또 좀처럼 자리를 내주려 하지 않는 선진국들 사이에 끼여 한국 건설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국가 간 약속은 첫 단추에 불과하다. 마무리는 업체들이 해야 하는데 업체들이 힘이 빠져버렸으니 시장 공략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거다. 북한 근로자 태국 근로자들의 근로 질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지만 한국 근로자만큼 우수할 수 없고, 업체들 입장에서도 현장에서 한국 근로자 비중이 높을수록 좋은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노사, 반세기 전 자세로 돌아가기를

네옴시티를 시작으로 각국 건설 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튀르키예의 지진 복구 사업, 우크라이나의 전후 복구공사 등이 당연히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비롯한 중동 지역의 건설 상황에 주목하게 돼 있다. 지진 복구나 전후 복구공사나 모두 첨단 기술도 첨단 기술이지만 근로자들의 공사 능력을 더 필요로 하는 성격의 공사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근로자들, 정확하게는 노조 활동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쩨쩨하게 국내 시장에서 제살깎아먹기 할 게 아니라 멀리 중동의 오일 머니를 벌어오는 데 역량을 집중하자는 말이다. 국제시장에서 건설인력도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 시대다. 노조가 시간을 쪼개서라도 직업 훈련, 기술 훈련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차제에, 업체들에도 과거의 잘못된 습성에서 벗어나기를 권한다. 담합행위도 삼가야겠지만 특히 덤핑 경쟁 자제가 긴요하다. 일본 업체들의 주특기인 담합(談合, 당고) 행위를 깨기 위해서는 발주처뿐만 아니라 일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미국 업체와의 긴밀한 협조도 필요하다. 대한건설협회, 해외건설협회 등의 역할도 중요하겠다.

우리의 고도성장을 견인해 주던 게 상품 수출과 해외 건설 두 축이었다. 계속되는 무역 적자가 회복되기엔 상당 기간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해외 건설 부문은 앞에 얘기한 대로 곧 대규모 시장이 열릴 예정이다. 당분간 해외 건설 수주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근로자들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던 대한항공기에 얽힌 얘기, 한국 근로자들의 파이팅과 근면성, 정주영 최원석의 대형 공사 수주 뒷얘기들이 이제는 모두 전설이 됐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하면서 함께 국민들에게 꿈도 심어줬던 일들이다.

건설노조! 국민 속을 그만큼 썩였으면 이제 그만 하고 국민들에게 ‘중동 붐’의 꿈을 선물해줄 때도 됐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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