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혹시나’ 했습니다. ‘역시나’ 였습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봇물 터지듯 쏟아졌던 청년들의 목소리는, 겨우 몇 달 만에 메아리처럼 사라졌습니다. 정치권에서 ‘청년’이라는 단어가 전면에 내걸렸던 시간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많은 청년 정치인들은 우리 정치 문화를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선거 때만 청년을 이용하고 선거가 끝나면 나 몰라라 한다”는 겁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분명 정치권에는 그런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다른 생각도 듭니다. ‘정말 정치 문화만의 문제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원칙을 중시하고 옳은 것을 지켜야 한다. 그런 사람은 철학이 있고 비전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현실 문제도 잘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DJ의 충고였습니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DJ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청년 정치인’들이었습니다. 26세 5개월에 금배지를 단 YS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3선 제한 철폐를 위한 ‘사사오입’ 개헌을 감행하자 자유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했을 만큼 ‘원칙’에 천착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과 맞선 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동료 정치인에게 공공연히 ‘구상유취(口尙乳臭·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장유유서(長幼有序) 문화가 지배적이던 시절. YS는 불과 33세의 나이에 원내부총무를 맡았습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뛰어난 ‘정치력’을 인정받은 덕분이었습니다.
윤보선과 유진산의 갈등으로 야권이 분열됐을 때는 적극적으로 ‘교통정리’에 나서면서 통합을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군사독재정권과 치열하게 싸우되, 내부적으로는 정치력을 과시하면서 ‘대체 불가능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던 거죠.
DJ도 마찬가지입니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당시 야당과 대학생들은 모두 반대 투쟁에 나섰지만, DJ는 공산권의 위협에 대처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정치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철학을 지키는 꼿꼿함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회도서관 대출 1위’, ‘5시간 19분 동안의 원고 없는 필리버스터’ 등의 기록을 세우며 ‘실력 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쌓아갔습니다. 그저 쓴소리만 할 줄 아는 청년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준비된’ 면모가 그를 대형 정치인으로 만든 거죠.
반면 지금 청년 정치인들에게선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서생적 문제의식만 갖고 옳고 그름에만 천착해 비판만을 일삼거나, 상인적 현실감각에만 집중해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노회(老獪)함’을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풍부한 공부량과 색다른 시각으로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청년 정치인은 찾기 어렵습니다.
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게 재선(再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정치권은 경쟁이 치열한 곳입니다. 때문에 정치에서는 어떤 측면으로든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 되지 않으면 ‘교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활동하는 수많은 청년 정치인들 중,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정치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청년 정치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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