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뿌리채소! 감자전 [이순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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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뿌리채소! 감자전 [이순자의 하루]
  • 이순자 자유기고가
  • 승인 2023.07.16 2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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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뿌리채소 중에서 썩어도 먹는 채소는 감자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감자는 특성상 성질이 순하고 조용해서 캐는 도중에 호미에 찔리고 돌멩이에 끼여도 제 몸을 망가트리지 않는다. 

감자가 얼마나 온순하고 얌전한 채소인가 하면 햇볕에 여러 시간만 노출시켜도 하늘색을 닮아가며 파래진다. 감자를 캐고 난 뒤 남은 감자잎은 또 어떤가. 잘 섞어 훌훌 밭에 뿌린 뒤 밭을 갈면 어느새 거름이 돼 있었다. 
 
이렇게 착한 감자의 전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감자철을 맞이해 나는 많이 사고 싶어서 멀리 구로구 고척시장까지 갔다. 유독 채소와 과일 등을 값싸게 파는 가게가 있다. 

그 가게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11시 30분쯤이었는데도 많은 손님이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우선 감자를 한 박스 샀다. 좀 잘기는 했어도 한 박스에 9000원밖에 안 했다. 이번엔 당근 한 소쿠리와 무 2개, 알타리 3단, 국산마늘 까놓은 것을 열 봉지 샀다. 마늘 분량 또한 100개짜리 한 점은 될 것 같이 많았다. 

그래 봐야 물건값이 모두 합해 4만 8000원밖에 되지 않았다. 시중에서는 마늘 한 접만 사더라도 3만 원 내지 3만 5000원 한다. 감자나 알타리 등까지 샀다면 지금 낸 돈보다 배는 많이 들었을지 모른다. 

나는 가게 주인한테 감자 박스를 길 건너 택시 잡는 곳으로 운반해 달라고 했다. 족히 그 무게가 15kg 이상일 것 같았다. 나는 택시를 열심히 잡아봤다. 그러나 택시는 짐이 무거운 것은 실을 수 없다면서 세대나 그냥 지나갔다. 

그러다 마음씨 고운 한 택시 기사님이 짐과 나를 싣고 신월동 집까지 데려다줬다. 나는 감자 박스를 들고 3층까지 올라갈 수가 없어서 집에 모아 놓은 검은 비닐봉지를 다섯 장 들고나와 감자를 다섯 봉지에 나눠 집으로 옮겼다.

이튿날 감자전을 하기 위해 약 5kg이나 되는 감자를 감자 칼로 일일이 까서 믹서기에 갈았다. 믹서기에 갈 때는 감자를 너무 곱게 갈면 좋지 않다. 어느 정도는 감자의 맛이 느껴질 정도로 갈아줘야 한다. 

5kg이나 되는 감자를 갈았더니 분량이 꽤 많다. 나는 우선 감자의 겉물을 짜내기 위해 스테인리스로 만든 바구니를 감자 간 것에 담그고 페트병에 물을 담아 소쿠리 안에 넣고 큰 국자도 넣어놓았다. 그리고 고명으로 쓸 부추와 당근을 썰고 다져 놓았다. 

그러다 보니 감자 겉물이 흥건히 고이기 시작했고 나는 한동안이나 감자의 겉물을 국자로 퍼냈다. 어지간히 퍼낸 다음에는 약간의 꽃소금을 감자전 반죽에 섞었다. 국자로 반죽을 동산처럼 앞쪽으로 높게 쌓아 올린 뒤 그 아래쪽에는 제일 작은 바구니를 또 넣어놓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직도 남은 겉물을 퍼내기 위함이었다.  

깨끗한 모조지를 깔고 부탄가스버너를 켜서 불조절을 적당히 해놓고 감자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감자전은 작은 국자로 한 국자씩 퍼서 한 대여섯 살짜리 아이 손바닥만큼의 크기로 떠서는 한 프라이팬에 세 장씩 부쳤다. 

쟁반에 키친타월을 몇 겹 깔고, 그 위에 감자전을 한 소당씩 차례대로 빙 둘러놓았다. 

감자를 닮아서 은은한 고소함이 환풍기를 타고 밖으로 퍼져나갔고, 부치고 있는 나의 코끝도 간지럽혔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멀리에서 자취하는 아들도 오라고 했다. 양념간장도 짜지 않게 만들고 한소당 맛을 보니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아들은 무려 다섯 소당이나 먹었고, 또 여섯 소당이나 싸줬다. 

부추의 톡 쏘는 맛과 달큼한 당근의 맛이 고소하고 담백한 감자전의 맛을 더욱 북돋아 줬다. 아들과 딸들, 자식들이 맛나게 먹는 것처럼 뿌듯한 일이 없다. 고마운 뿌리채소 감자! 며칠 후에 감자전을 또 해먹어야겠다.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7세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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