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그레샴의 법칙’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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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 ‘그레샴의 법칙’ [기자수첩]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4.01.11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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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진영논리로 인한 무조건적 비난, 좋은 정치인 탄생 어렵게 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극단적 진영논리는 좋은 정치인의 탄생을 어렵게 만든다. ⓒ연합뉴스
극단적 진영논리는 좋은 정치인의 탄생을 어렵게 만든다. ⓒ연합뉴스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란 게 있다. 흔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로 번역되는 개념이다. 금본위제 하의 시장에서는 순수 금화가 사라지고 저질 주화만 통용된다는 경험칙으로, 어떤 이유로 인해 ‘좋은 것’은 퇴출되고 ‘나쁜 것’만 남는 경우에 자주 활용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정치권에서도 ‘그레샴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 같다. ‘좋은 정치인’은 밀려나고 ‘나쁜 정치인’만 남는 모양새다. 얼마 전 만난 한 여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인재 영입이 쉽지 않다. 다들 거절부터 한다. 흠 잡을 데 없는 분들일수록 더 그렇다. 지금까지 인생을 잘 살아왔는데 국민 절반한테 괜히 트집 잡히면서 ‘공개 처형’ 당하는 일을 왜 해야 하냐는 거다.”

비단 인재 영입 문제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어떻게 해서 우리 정치판은 귀하고 좋은 사람이 먼저 배제되고 그러지 않은 사람이 더 오래 버티는가”라고 일갈했다.

원인이 뭘까. 단순하다. 모두에게 존경 받을 만한 삶을 산 사람은 정치를 하는 게 손해다. 하루아침에 국민 절반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상대 진영을 ‘적’으로 규정하는 시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적진’에 가담하면 ‘나쁜 인간’이 돼버리는 시대가 만든 산물이다.

반면 잘못이 많은 사람은 정치 활동에서 이득을 얻는다. 국민 모두에게 지탄받을 사람이라도 정치를 하면 적어도 절반은 ‘내 편’이 되는 까닭이다. 맹목적인 진영논리 하에서, 정치를 할 유인이 더 큰 쪽이 누구인지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잘못이 있거나, 없어도 국민 절반의 비난을 버틸 수 있는 ‘멘탈’을 갖춰야만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게 현실이다.

당연히 피해자는 국민이다.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사회적 희소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 했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모두가 가질 수는 없는 가치. 이를 배분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그 누구보다도 높은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 정치인이 사익(私益)을 우선시하면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지녀야 할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제시한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진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고 악마화하는 풍토 속에선 열정과 책임감, 균형감각을 갖춘 정치인이 탄생할 수 없다. 오히려 ‘같은 편’임을 방패삼아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만 활개칠 뿐이다. ‘나쁜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을 구축(驅逐)하는 구조다.

결국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선 국민의 ‘현명함’이 필요하다. 진영이 다르더라도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은 칭찬해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트집을 잡으려는 ‘같은 편’을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일반 국민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덕성을 갖고 사익을 편취하려는 정치인이 사라진다. 그래야 정치인이 국민을 무서워하고, 국민을 위해 일한다. 이제는 이 ‘편 가르기’ 정치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군지 돌아보고, 정치권에 ‘경고’를 줘야 할 때가 아닐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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