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예상대로입니다. 제22대 총선 결과를 본 모든 사람이 예견했던 것처럼, 비토크라시(vetocracy)가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비토크라시란 미국 스탠퍼드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미국 양당 정치를 비판하며 만든 용어로, 상대 정파의 주장이라면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 정치를 의미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비토크라시가 ‘야당의 입법독주-대통령의 거부권’ 형태로 발현되고 있습니다.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주요 법안을 밀어붙이고,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활용해 법안을 무효화하는 행태가 반복됩니다. 국회 내에서도, 국회와 행정부 사이에서도 조정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늘 강조하듯, 이 같은 극단적 갈등의 피해자는 국민입니다. ‘밀어붙이기’와 ‘거부권’이 오가는 무의미한 시간 속에, 정작 민생에 필요한 법안들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방 소멸을 넘어 국가 소멸을 걱정할 정도의 위기가 닥쳐오는데도, 눈앞의 권력을 향한 탐욕에 우리 정치권은 파멸을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이 정신 나간 질주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국민뿐입니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 시절에도 손대지 않았던 법안들을 충분한 검토 없이 ‘일단 내밀고 보는’ 야당이나, 야당의 말이라면 비난부터 하고 보는 정부여당 모두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가 바뀌고, 대한민국이 바뀝니다.
이에 <시사오늘>은 야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시키고,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야당 지지자는 무조건 윤 대통령을 욕하고, 여당 지지자는 무조건 야당을 욕하는 이 공멸의 정치를 끝내기 위해선 먼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본 기획이 정치 복원의 작은 단초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
일명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
야당 입장
“경기 활성화 위해 뭐라도 해야 할 때”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지원법은 말 그대로 모든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했던 2020년, 전 국민에게 4인 가구 기준 100만 원을 긴급 재난지원금으로 지급했던 것을 떠올리면 됩니다. 워낙 경제가 어려우니, 1인당 25만 원씩을 나눠줘서 소비를 진작시키자는 거죠.
1인당 25만 원 지원법을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이렇습니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건 사람들이 쓸 돈이 없어 소비를 안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가가 돈을 뿌려서 사람들에게 쓸 수 있는 돈을 마련해 주면 소비가 진작될 것이고 경기도 활성화될 것이다. 1인당 25만 원 지원법은 복지 정책이 아니라 재정 정책이다.”
실제로 정부가 매월 내놓는 ‘최근 경제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음식점 등을 포함한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 7월 동기 대비 2.3% 하락했습니다. 16개월 연속 감소세입니다. 2분기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도 75.60으로 1분기 대비 3.68포인트 낮아졌습니다. 서울시에서만 올 1분기 6000개가량의 음식점이 폐업했을 만큼 내수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반면 수출은 11개월 연속 증가세입니다. 집값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서울 강남 3구를 중심으로 신고가 아파트가 속출합니다. 거시 경제 지표는 좋아지고 있는데, 정작 국민들은 경기 회복 효과를 못 느끼고 있습니다. 민간 경제연구원에서 ‘수출-내수 간 경기 양극화가 한국 경제의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침체된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가가 ‘뭐라도 해야’ 하고, 1인당 25만 원 지원법도 그 일환이라는 게 민주당의 설명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창고에 금은보화가 가득 쌓이면 뭐하나. 길거리에선 사람이 굶고 병들어 죽어 가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장한 건 이런 맥락입니다.
정부여당 입장
“효과 적다는 것 입증돼…조삼모사식 정책”
그러나 정부여당은 1인당 25만 원 지원법이 ‘포퓰리즘’이라는 입장입니다. 정부여당이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현금성 지원금 지급이 내수 진작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 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소비 증대 효과는 0.26~0.36배였습니다. 100만 원을 받았을 때 추가 소비로 이어진 건 26만~36만 원에 불과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대한경영학회지에 수록된 ‘긴급재난지원금의 소상공인 지원 효과’ 보고서를 보면, 추가 소비조차도 소비를 ‘앞당겨서’ 한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원금을 받아서 외식 한 번을 더 한 게 아니라, 나중에 하기로 했던 외식을 앞당겨서 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한 달에 한 번 외식을 하는 가족이 ‘이번 달에 지원금이 나와서 외식을 두 번 했으니 다음 달에는 건너뛰자’는 식으로 대응했다는 거죠.
이처럼 효과는 미미한데 빚은 수십조 원이 늘어나니 ‘해선 안 된다’는 게 정부여당의 주장입니다.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을 지원하려면 13조~18조 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추경호 원내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환경 분야의 1년 총 예산이 약 12조 원, 전국의 도로·철도·항만 등을 건설하기 위한 예산이 26조 원 정도라고 합니다. 1인당 25만 원씩을 나눠주는 데 드는 예산이 환경 분야 1년 예산보다 많고, 사회간접자본 건설 예산의 70%에 달하는 셈입니다.
자칫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인당 25만 원이 지원되면 시중에는 13조~18조 원의 돈이 풀리게 되는데요. 시중에 많은 돈이 풀리면서 물가가 오르고, 이건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밖에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말처럼 “물가로 인한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물가를 상승시킬 것”이라는 걱정이죠.
정리하면, 1인당 25만 원 지원법은 ‘민생이 어려우니 뭐라도 해 보자’는 쪽과 ‘효과도 별로 없는 정책을 위해서 13조~18조 원을 뿌리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쪽의 대립인 겁니다. 어느 한 쪽이 완전히 틀렸다기보다는 좀 더 논의해 볼 가치가 있는 주제가 아닌가 싶은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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