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당은 정치적 견해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기본적으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총론이 유사하다고 각론까지 같진 않다. 바라보는 방향은 일치하더라도, 최종 목적지는 다를 수 있다. 가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정당 내엔 노선 투쟁이 생긴다. 그게 당연하고, 그게 정상이다.
때문에 당내 갈등이 아예 없는 정당은 민주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당내에서 이견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게 하는 강압적 분위기. 최대한 효율적으로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잡음을 용납하지 않는 건 전체주의의 신호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매일 같이 내분에 휩싸이는 것도 문제다. 정당은 당원과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비행기를 탈지 버스를 탈지 싸우다가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건 직무유기다. 어느 한 쪽을 택하거나 타협점을 찾아 움직여야 하고, 도저히 안 되면 헤어져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거대 정당들을 보면 ‘안 좋은 사례’만 모아 놓은 것 같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에선 이견이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반대해왔으면서도, 이재명 대표가 변심하자 하나 같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비단 금투세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사안에서 민주당은 ‘이 대표 마음이 전체 당원 마음’이다. ‘이심전심’이랄까.
그나마 국민의힘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생산적이지 못하다. 국민의힘이 하는 건 노선투쟁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따르는 쪽과 한동훈 대표를 따르는 쪽의 ‘감정싸움’ 수준이다. 애초에 윤 대통령의 노선이 뭔지, 한 대표의 노선이 뭔지 명확하지도 않다. 그저 동지에서 적으로 돌아선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에 계파 의원들이 따라 움직이는 모양새다.
앞으로 나아갈 기미도 없다. 한 대표가 당대표 자리에 오른 지 넉 달이 넘었다. 그럼에도 한 대표가, 국민의힘이 지향하는 가치가 뭔지 보이지 않는다. 계속 싸우긴 하는데, 뭘 위해 싸우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친윤(윤석열)과 친한(한동훈)의 사이가 나쁘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라면, 최소한 ‘정치적 견해’를 두고 다투는 게 정상 아닌가.
대한민국 정치학계의 거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평소 지론을 통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민주정부를 강하고 능력 있게 만드는 일”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가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하고, 그 중심적 메커니즘이 정당정치이므로 정당과 정당체제를 바로 세우고 튼튼한 사회적 기반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해온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정당체제는 특정 인물 중심의 위인설법(爲人設法·특정인을 위해 법을 뜯어고침)식, 주먹구구식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건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서로를 악마화해 반사이익만 노리는 정치가 횡행한다. 대체 언제쯤 이 ‘쉬운 정치’가 종언을 고하고 진정한 정당 정치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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