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원 메모 논란, 진위 여부 놓고 증언 엇갈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유경민 기자]

양심선언으로 드러난 박재규 의원 독직 사건의 전말은?
1988년 4·26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보수의 아성이었던 진해에서 육사 14기 하나회 멤버이자, 전두환 정권 시절 보안사 인사과장 출신인 배명국 의원이 통일민주당의 정치신인인 박재규 의원에게 금배지를 빼앗기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총재의 최측근이었던 서석재 의원의 생질인 박재규 의원은 1989년 9월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박재규 의원 독직 사건’ 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1989년 9월6일. 박재규 의원의 비서관이었던 전대월 씨는 박 의원이 뇌물을 받았다며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1989년 3월 임시국회에서 이건영 방제협회장의 청탁을 받고 방제 사업을 허가제로 고쳐 기존 업체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내용의 농약관리법 개정안을 제출·통과 시켜준 대가로 이 회장으로부터 2억 2500만 원 사례를 받았다는 내용인데요.
박 의원은 이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사례비를 받았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이 소환하면 즉시 응해 진실 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박 의원에 대한 법원의 구속 동의요청서를 국회가 처리하지 않고 폐회했습니다. 그러자 그해 12월 영장이 기각됐다가 1990년 2월 13일 검찰의 영장 재청구로 전격 구속됐습니다. 이후 박 의원은 2억 25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징역 5년·추징금 2억 2500만 원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당시 법원은 고발인의 증언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속전속결로 재판을 마무리했는데요.
그렇다면 배명국 의원 측은 박재규 의원을 구속하는 데 왜 그토록 적극적이었을까요. 사건 발발 후 4개월 만에 3당 합당을 했다는 점에서 당시 김영삼 민주당 대표가 여당으로부터 무수한 견제를 받는 등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도 제기됐었습니다. 또한 6공 정권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국 돌파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 박 의원을 희생양으로 삼았을 것이라는 게 정설인데요.
그런데 ‘박재규 의원 독직 사건’에 대한 고발 경위·수사·재판 과정에 의문만 남긴 채 4년이 지난 1994년 2월1일,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박재규 의원의 비서관이었던 전대월 씨가 ‘양심선언’을 하면서입니다. 전 씨는 박 의원이 구속 후 89년 여름부터 배명국 의원에게 3년여 동안 8500만 원을 건네주는 등 자신을 계속해서 ‘특별 관리’를 해왔다고 폭로한 건데요.
전 씨는 박 의원의 수뢰 사실을 전혀 몰랐었는데, 89년 6월 말 배명국 의원 측에서 자신에게 “박 의원이 이건영 방제협회장으로부터 2억여 원을 받았으니 고발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착수금으로 2백만 원을 건냈고, 최소 2억 원 이상 주기로 약속했다는 겁니다.
또한 89년 8월 말에는 하얏트호텔 중식당에서 배 의원과 김영일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만나 저녁식사를 하면서 고발 문제에 대해 최종 협의했었다고 알렸는데요. 당시 배 의원과 김 비서관은 “우리가 터뜨리면 야당 탄압이니 뭐니 해서 시끄러워진다”며 “신변 문제와 생활 문제는 우리가 책임질 테니 걱정말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청와대 옆 카페에서 김 비서관과 이승구 검사를 만나 인근 청와대 안가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이 검사의 조언을 받아 고발장을 작성했습니다.
그 후 전 씨는 3년여 동안 배 의원으로부터 매달 한두차례 씩 총 8500만 원을 받았고, 건설회사를 차려 배 의원의 친동생이 운영하는 장복건설로부터 15억여 원 상당의 골조·도배 공사를 하도급 받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웠으나 배 의원 측이 양심선언을 할 경우 보복하겠다고 수시로 압력을 가해 주저해 왔다”고 말하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배 의원은 전 씨의 주장이 제기된 직후 민자당 기자실로 찾아가 “전 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전 씨로부터 간접적인 공갈협박을 받았으며, 금품 제공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는데요. 하지만 전 씨의 ‘양심선언’ 폭로 직후 배 의원은 “당과 총재에 누를 끼친데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 ”며 당무위원과 경남도지부위원장직 등 자신이 맡고 있던 당직에서 사퇴했습니다.
홍장원 메모 논란, 비상계엄 당시 ‘체포 지시’의 진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당시 ‘정치인 체포’를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홍장원 메모’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해당 메모 관련해 홍 전 차장의 증언이 계속해서 바뀌자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6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비상계엄 선포 당일 윤 대통령으로부터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는 지시를 직접 받았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면서 여인형 전 방첩 사령관으로부터 정치인 등 체포자 명단을 듣고 수첩에 받아적다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해 그만뒀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논란의 발단인 이른바 ‘홍장원 메모’는 같은 달 11일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국회에서 공개했는데요. 하지만 홍 전 차장이 작성했다는 메모의 신빙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바로 헌법재판소 심리 과정에서 홍 전 차장이 그동안 밝히지 않았던 얘기들이 나오면서인데요.
지난달 4일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5차 변론에서 홍 전 차장은 “원본은 내가 봐도 알아보기 어려워 보좌관을 불러 정서(正書)를 시켰다”며 “메모엔 보좌관 글씨와 흘려 쓴 내 글씨가 섞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은 “홍 전 차장 메모가 박 의원에게 넘어가면서 탄핵부터 내란죄 등 모든 프로세스가 시작된 것이라고 본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8차 변론 이후 홍장원 메모 논쟁이 더욱 뜨거워졌는데요. 이날 조태용 국정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소위 ‘홍장원 메모’로 알려진 메모의 작성 과정과 사실관계를 확인해 왔다”며 “옮겨 적은 보좌관으로부터 메모의 종류가 네 가지라고 들었다. 그렇게 되면 홍 전 차장이 5차 변론에서 설명한 내용의 뼈대가 사실과 다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로소 국정원장의 진상 파악을 통해서 몰랐던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홍장원 메모’는 4차례에 걸쳐 수정된 건데요. 홍 전 차장이 지난해 12월 3일 여인형 전 방첩 사령관과 통화하면서 포스트잇에 체포 명단을 적은 것이 첫 번째 메모입니다. 이를 보좌관에게 정서를 부탁해 보좌관이 다시 옮겨 적었는데요. 이 메모가 두 번째 메모였습니다. 세 번째는 바로 다음 날 오후 ‘기억을 더듬어 다시 써달라’는 홍 전 차장의 요청에 보좌관이 새로운 종이에 다시 기록한 겁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메모는 보좌관이 기억을 더듬어 파란색 펜으로 다시 쓴 메모에 검은색 펜으로 쓰여있는 글자와 보좌관이 작성한 것이 아닌 동그라미나 글씨가 대거 추가된 메모였습니다.
보좌관이 쓰지 않은 내용 중 새롭게 추가된 내용에는 ‘검거 요청(위치 추적)’, ’축차 검거 후 방첩사 구금 시설에 감금 조사’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홍 전 차장은 이 메모에 대해 “파란색으로 적힌 체포 대상자 명단은 보좌관이 작성했고, 그 아래에 검은색으로 적힌 ‘검거 요청’ 같은 문구는 내가 추가로 적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맨 처음 작성했던 ‘메모 원본’은 구겨서 버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두 번째 메모도 폐기했다고 알려졌는데요.
이에 홍 전 차장은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이지만 방첩사에서 비상계엄 기간에 왜 이런 사람들을 체포하려고 했는지 궁금증이 있었다”며 “명단에 관심을 가져봐야겠다고 해서 나름대로 메모해서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를 두고 조 원장은 “홍 전 차장이 왜 메모를 새로 작성했는지 보좌관도, 저도 잘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첫 메모를 제 공관 앞에서 썼다고 하길래 CCTV를 확인해 봤더니 그 시간 청사 내 본인 사무실에 있어 사실관계가 다르더라”고 설명했는데요.
홍 전 차장의 진술 과정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서로 상반된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제아무리 안갯 속이어도 해가 뜨면 걷히기 마련입니다. 과거 박재규 의원의 사건처럼 시간이 지나서야 진실의 퍼즐이 맞춰질지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한편, 박재규 독직 사건 경우는 현재에 이르러 어떻게 조명되고 있을까요.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이에 대해 지난 12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박재규 의원이 정보부 출신 배명국 의원의 공작 정치에 놀아난 것이 아니겠느냐”고 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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