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정치, 좌절과 희망.’
지난 23일 국민대에서 열린 ‘강의실 정치인’. 이재준 고양시장이 후배들에게 들려준 내용이었다. 강의 내내 귀에 팍 꽂이는 첨예한 논쟁거리나 거창한 이슈는 없었다. 본인의 경험과 롤 모델 정치인들의 좌절과 희망의 기록들, 신념과 삶에 대한 반추를 소담스럽게 들려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잔잔한 가운데 울림은 컸다. 진영과 편 가르기,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성숙한 민주주를 여는 소신파. 강의 내용의 일부를 몇 가지로 나눠 전한다.
1. 정치인의 고민
“이번에 되자마자 공공기관 정원을 동결하고 공공기관장 인건비를 10% 삭감했다. 산하기관 예산도 줄였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공공기관 단체들이 지방단체에 맞는 역할을 하느냐. 제 판단에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우리 고양시 출산율이 0.96%다. 인구는 계속 감소되는데 모든 시설이나 공공기관을 확대하는 것이 나중에 재정적으로 맞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거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으로 반발도 적지 않다. 욕먹고 사는 것이 시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것이 정치인의 운명, 비애라는 생각을 한다.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은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자기한테 냉혹해져야 하고 좀 더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당장의 포퓰리즘이 아닌, 지금만 보지 말고 정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
2. 신념과 시대의 만남
“정치를 하면서 좌절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늘 돌파하려 했다. 신념이 있다면 뭔가를 돌파해낼 수 있음을. 신념이 힘이었다.
처음 정치를 하게 된 것도 신념과 시대의 만남 때문이었다. 대학시절인 1979년 3월 학생들 전체를 모아놓고 동아리를 알리는 계기가 있었다. 한 분이 올라와서 동아리 안내를 하는데 용어 한 자를 잘 못 썼다. 용어가 ‘이승만의 독재. 박정희의 독주.’ 딱 두 글자였다. 그걸로 ‘점철된 현대사.’ 이러고 나니까 어디서 벌떼같이 사람들이 왔다. 학생과 직원이었고, 그 선배를 체포해 갔다.”
“선배 내 놔라”
“학생처장실을 쫓아갔다. 그 계기로 1984년 4월 18일 국민대에서 첫 번째 집회를 하게 됐다. 서클연합회에서 4·19부활과 혁명이라는 주제로 연 집회였다. 원래는 그날 5·18 광주 비디오를 틀어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학회연합이 다 도망가 버렸고, 순식간에 지도부가 없어져버렸다. 체육관에서 2호관 앞으로 진군할 때였다. 누군가는 대표로 나와 진군을 독려해야 했다. 그날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84년도 11월 학생의 날 기념식까지 마이크를 쥐게 된 계기였다.”
“돌이키면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면서 가졌던 민주주의 신념. 그것이 정치를 만나게 했다. 이 모두가 우연과 우연의 점철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필연적 시대와의 만남이 아니겠는가.”
3. 또 하나의 만남 - 노무현
“반추해보면 정치인에게 만남은 굉장한 의미다.
또 하나의 만남이 ‘노무현’이었다. 1996년 노 전 대통령이 도전한 종로 선거에서였다. 사실상 지는 선거였다. 누구라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자원봉사를 가게 됐다. 그 계기로 98년 보궐선거, 2000년 부산선거, 2002년 대선까지 함께하게 됐다. 대선 끝나고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6년도였다. ‘노무현 참여정부’ 지지율이 바닥을 치던 시기였다. 지역에서 후보도 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저는 다시 정치에 뛰어들었다.
“‘시대를 바꾸자’ 는 각오로 출사표를 던졌다. 저는 지역에서 시민활동, 지역봉사활동도 많이 했던 경우였다. 지역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관련해 책을 낸 것이 민원의 정치학이었다. 민원을 통해 지역문제를 해결한 성공사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졌다. 상대는 용인에서 막 이사 온 후보였다. 18일 만에 당선되더라.(웃음)”
“6개월 간 외국을 갔다 왔다. 여전히 많이들 제게 오셔서 민원을 해결해달라고 청했다. 그때 제가 한말이 그거다. ‘아니, 그렇게 원할 것 같으면 저를 뽑아주셨어야죠. 저 사람들한테는 귀찮게 안 하고 왜 저를 귀찮게 합니까.’ 저는 여느 정치인들과 달리 이해 타산적이지 않아 믿고 오게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시 지역운동에 뛰어들었다.”
4. 정치인의 기본 소양 - 인문
“정치인들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소양이 인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 역사에 대한 고찰, 신념 등. 경기도의회 시절 일 년 60권 이상의 책을 봤다. 철저하게 다작 생활을 했다. 차를 타고 다니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 다녔다. 그 길에는 항상 배낭이 짊어져 있었다. 배낭에는 책이 한 권 두 권, 자료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어디서든 의회 활동을 위해 밤샐 수 있는 자세를 지녔다. 다른 당 의원들과도 잘 지냈다.”
“치열하게 주어진 직분의 사명을 다하려했다. 중앙정치권력. 자본주의 본질, 인권에 대한 문제, 양극화, 평화통일, 역사와 환경 등. 대한민국에서 도정질문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이 이재준이다. 경기도의회 등 8년간 조례를 제일 많이 만든 사람도 이재준이다. 146개의 조례를 만들었다. 제가 얘기하기 전에는 친일명사전이 보급되지 않았었다. 이를 서울과 경기도에 다 보급토록 힘썼다. 환경도 4대강 관련 잘못된 것도 밝혀냈다.”
5. ‘용기 있는 좌절’을 선택한 정치인들
“권력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버려야 되는 것인가?
이에 대한 질문을 늘 하곤 한다. 그러나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밝혀내는 것. 그것이 정치가의 운명이라는 생각이다. 설사 그것에 의해 당선이 안 된다 하더라도 신념을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자존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세계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 노동자의 투표권도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 실패하고 만다. 결국 이분이 돌아가신 뒤에야 이상은 실현되게 된다.”
“슈뢰더 총리의 경우도 좌절에서 희망을 일군 정치인이었다. 그분은 2000년대 초반 독일의 개혁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현재 독일은 유럽에서 제일 건실한 경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는 좌절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이분은 그 길을 갔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해야 될 일을 해야 되는 것이 정치인의 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독일은 영원히 회복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설사 좌절이 온다 하더라도 용기 있는 결정을 했을 때 언젠가는 옳은 평가를 받게 된다는 교훈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제가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분이었다. 당신께서는 정치철학이 강했던 분이었다. ‘정치가 자본보다 앞서야 한다.’ ‘양극화 해소’ ‘지역차별의 벽을 넘자’ 등. 이 같은 소신은 당대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아픈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분이 해결하고자 한 문제들이 지금은 어느정도 해소가 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계승되고 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정책을 끌고 가지 않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이 문 대통령으로 인해 반추되고 계승되고 있음이다.”
6. 정치인과 ‘분노’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것은 분노라고 생각한다. 차별에 대한 분노, 인권에 대한 분노, 지배에 대한 분노, 반민주주의 세력들에 대한 분노, 양극화에 대한 분노…. 이를 단순히 분노의 감정이 아니라 정책이나 이상으로 실현해 내는 일. 공공영역으로 가져오는 것. 그것이 정치 사명이라는 생각이다.”
“80년대 때 유행한 책 중 하나가 독일의 백장미 사건을 다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죽음>이란 책이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발발시켰을 때 단 한 명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인 중 이것에 분노한 이들이 있었다. 백장미 사건을 통해 반체제운동을 한 거였다. 독일이란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반인권 독재체제로 전락했을 때 이들은 민주주의로의 회복을 주장했다. 그 하나로 독일의 양심이 지켜졌다. 독일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준 거였다. 그 가치는 수십 년이 흘러도 기억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들을 기억하며 생화를 갖다놓곤 한다.”
“이렇듯 분노의 감정. 그것은 민주주의나 정의에 대한 강한 응집력,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반드시 선과 정의에 대한 이상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 그것에 반대되는 것들에 대해 분노하고 같이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분노하는 마음속에서 더 자기 자신이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이 형성되지 않을까 싶다.”
7. 정치, 지양해야 할 것들…
“공공영역의 승리. 그 기준은 무엇일까. 불평등, 소외, 차별 등 이런 것들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 그런 과정들이 현대정치사의 60년을 이끌어온 힘이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합리적인 타협점이 지금의 현재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6.13선거도 우려스럽다고 본다. 이렇게 한쪽이 싹쓸이 하고 한쪽이 싹쓸이 당하는 것은 다양성과 균형 감각이 필요한 민주주의에서 아니라고 본다. 경기도의회는 4석밖에 안 된다. 비교섭단체 다 붙여봐야 모두 8석밖에 안 된다. 이런 정치구도가 되면 올바른 논의자체가 안 된다. 하나의 어젠다가 형성되면 다 싹쓸이되지 않나. 좀 더 성숙한 민주주의 체제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P.S. 이재준 고양시장은…
2018년 6·1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58.5%로 당선됐다. 충남이 고향이다. 1960년생으로 만58세, 국민대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 후 민족문제연구소 고파지부 지부장, 국가균형발전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경기북부 조직위원을 거쳐 정치활동을 했다. 2000년 부산 북강서을 노무현 국회의원 선거캠프,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대위 덕양갑 부위원장, 2012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민캠프 경기본부장 등을 지냈다. 2010년부터 제8·9대 경기도의회 의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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