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조선, 임시정부 선언했지만 정체 묘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북한의 사정은 어떨까요. 대북 제재가 여전함에도 자생적 시장의 활성화로 경제적 타격이 크지 않을 거라는 의외의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또 장마당의 성장이 가져온 인권적 변화와 자유조선을 선언한 ‘천리마 민방위’를 둘러싼 얘기까지 탈북자를 통해 본 북한 동향, ‘시사텔링’을 통해 정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요즘 북한은 3월 10일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 봉쇄하고 검열도 심해지고 사람들 이동하는 것도 제한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북한 사람들은 당에서 뭘 하는지 체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경 써봐야 바뀌는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단지 먹고사는 게 급할 뿐이지, 힘들게 먹고사는 원인을 따지고 논할 때는 지났습니다.
‘김정일 정권’ 때 하도 죽을 쒀서 그에 비하면 한참 좋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중국 쪽으로 물자가 많이 들어오고 식량 사정도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 원래 일 년 중 지금이 제일 어려울 땐데 먹고살만하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립니다.
당 때문에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닙니다. 북한 사람들은 더는 당에 뭘 기대하지 않습니다. 당만 믿고 있다가 많이들 굶어 죽고 그랬으니까요.
고난의 행군을 지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의 지원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생적으로 터득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북한 당국의 공급물자에 대해 막 바라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주면 주는 거고 안 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당에서 주기만 목 빠지게 바랐다면 그 역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지금은 장마당 체제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북제재 상관없이 중국을 통해 온 넘어온 물자가 자생적으로 시장에 공급될 수 있는 이유도 장마당 때문인 셈이죠.
사실상 완전히 시장주의입니다. 그것이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상은 탈북 통신원 A 씨(남 경기 지역 30대)가 지난 5일 <시사오늘>에 전해준 북한 동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수년 전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건너온 그는 브로커를 통해 북한 내 가족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부의 돌아가는 사정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북한도 완전히 시장주의다”
특히 인상 깊은 발언인 가운데 A 씨 얘기로는 최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어도 그것이 북한 주민의 경제생활 면에서 큰 타격은 되지 않을 거라는 입장입니다. 앞선 설명대로 북한 체제와 상관없이 북 주민 스스로의 방식대로 장마당에 기대 살아가기 때문에 대북제재가 지속돼도 중국을 통해 물자를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이유에서 입니다.
시장의 활성화로 인한 북한 주민의 변화상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진단과도 일맥상통했습니다. 그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후 북한의 종합시장 숫자는 크게 늘어났다”며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시민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개인의 판매권을 비롯한 경제적 권리는 점차 확대돼 가는 추세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저항의 시작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습니다.
“한번 눈을 뜨게 된 권리를 침해받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우게 된다. 처음엔 보안원을 피해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상인들이 이제는 진드기처럼 눌러앉아 보안원과 맞상대한다. 나는 외국기자 간담회에서 ‘북한에도 주민들의 저항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메뚜기장이 진드기장으로 변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실제로 화폐개혁에 실패했을 때 들고일어난 주민들의 저항은 북한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시장이 곧 북한 체제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1인당 GDP 4000달러를 넘어서면 민주화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경제 전문가의 진단이 있어왔듯 언제고 북한도 변화의 물결이 일지 모른다는 관측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난 1일 ‘천리마 민방위’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자유조선’으로 명칭을 바꾸고 임시정부를 건립했다고 발표한 점도 일각의 의미심장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단체는 지난 2017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피살된 후 그의 아들인 김한솔을 보호하고 있다고 대외에 알려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번에 단체가 공식 웹 사이트를 통해 게시한 영상에 따르면 모자이크 처리된 한 여성이 3.1운동을 연상시키는 하얀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고 서울의 탑골공원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자유조선’ 이름의 임시정부 건립을 선언합니다. 이 여성은 정부 주도의 감시와 살인, 고문 및 강제 노역, 계급에 의한 강간, 테러 행위 등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지목하며 “오늘까지도 수천만 (북한) 동지들은 타락한 체제의 힘없는 노예로 남아있다. 지난 수십 년간 인도주의에 반하는 막대한 범죄를 저지른 북의 권력에게 맞서고자 일어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을 대표하는 단일하고 정당한 임시정부 건립을 선언한다. 이 정부가 북조선 인민을 대표하는 정당한 조직”이라며 “새 조선을 위한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단체는 탈북자들과 북한NGO 사이에서도 정체가 묘연한 오리무중의 성격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선교회를 통해 북한 이탈 주민의 정착 지원을 돕는 B 씨(여 50대 수원)는 같은 날(5일) 통화에서 “천리마 등의 용어만 봐도 북한 사람들이 주도하는 단체인 것 같아 주목하고는 있다”면서도 “주변의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단체다”라고 했습니다.
탈북 기고가로 잘 알려진 림일 작가(남 50대)도 “천리마 민방위라는 단체가 어떤 곳인지 정보를 얻을 수 없을 정도로 베일에 쌓여있는 조직체”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북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 한광희 북한인권운동가는 통화에서 “남북 출신 모두 함께하는 다국적 국가정보원들의 결사체로 정부 지원을 받다 정권이 바뀌면서 떨어져 나온 조직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사실 확인된 바는 없다”며 “하지만 김한솔을 내세우는 점에서 관련 정치세력이 아닌가 싶다”고 짐작했습니다. 이어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김 씨 일가의 뿌리를 기반으로 임시정부를 선포하고 뭔가를 한다면 민주화에 대한 진정성 여부에서 볼 때 좋은 움직임은 아닌 듯하다”며 저의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한 통일전문 매체 관계자나 앞선 A 씨는 비슷한 견해를 내비치며 “몇 년 전 해외 탈북자 중심으로 임시정부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흐지부지 된 줄 안다”며 “천리마 민방위가 무엇을 목적으로 추구하는지 알 수 없으나 돈이 많은 단체가 아닌 이상 재정 문제가 원활하지 않으면 해프닝 이슈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이 가운데 복수의 매체에 의하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 인권 침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는 통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바로잡으려 하고 있다”고 말해 다시금 북한 인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주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는 암시적인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한편, 북미 회담 결렬 평가 및 비핵화 관련 <시사오늘>과 통화한 탈북자들은 어떤 전망을 내놓았을까요. 저마다 다른 시각을 내비친 상황에서 각각의 답변을 끝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김정은이 비핵화 할 마음이 있었으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앞으로 더 큰 카드를 쥐기 위해 핵 실험 계속할 거고, 핵 계속 만들 것.”(A 씨, 남 30대)
“한동안 공백이 있겠지만 협상을 다시 시작할 것으로 본다. 제재가 걸린 문제라 북한으로서는 한시가 바쁠 수밖에 없다. 추후 김영철 등 협상 라인을 교체하고 새로운 전략으로 밑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림일 작가)
“내가 김정은 이어도 한 번에 비핵화 안 한다. 트럼프 말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볼 일 생기면 어떡하나. 그런데 트럼프가 경제 제재해도 김정은은 잘 먹고 잘 산다. 힘든 건 북한 주민이다. 백성을 정말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한발 물러서더라도 협상을 해야 한다고 본다.”(B 씨, 여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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