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의 임부 근로시간 조정법] “임신한 근로자, ‘지옥철’ 벗어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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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의 임부 근로시간 조정법] “임신한 근로자, ‘지옥철’ 벗어나게 하자”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5.21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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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톺아보기(27)>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대표발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현행법상 13주부터 35주까지 임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없다. ⓒ뉴시스
현행법상 13주부터 35주까지 임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없다. ⓒ뉴시스

“휴….”

아침이다. 하지만 상쾌함 따위는 없다. 그저 두려울 뿐이다. 우리 집은 서울시 마포구, 직장은 서울시 강남구. 오늘도 ‘지옥철(출퇴근 시간대의 혼잡한 지하철)’을 탈 생각을 하니 눈을 뜨자마자 한숨이 나온다.

그나마 홑몸일 때는 버틸 만 했다. 이를 악물고 몸을 끼워 넣으면, 어찌됐건 목적지에는 도달할 수 있으니. 하지만 임신을 하고 난 뒤에는, 출근길이 지옥으로 가는 길처럼 느껴진다. 혹시나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에는 발을 들이기가 어렵다. 한두 번 차를 놓치고 나면 출근 시간을 지나치기 일쑤다. 상사와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은 보너스다.

휴일에 친구를 만나 이런 저런 푸념을 늘어놓자, 친구는 ‘임부(妊婦)는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다’는 말을 들려줬다. 알고 있다. 어떻게 아냐고? 이미 신청해서 써봤으니까! 친구가 준 정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우리 법이 보호해주는 임부는 임신 후 12주가 안 됐거나 36주를 넘는 사람뿐이다. 임신 6개월째를 지난 나는 아침마다 부른 배를 감싸고 한숨을 쉬며 만원 지하철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임신 후 13주부터 35주까지의 여성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 내에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임신 후 13주부터 35주까지의 여성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 내에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뉴시스

13주부터 35주까지 임부, 법적 보호장치 없어

위 이야기는 서울에 사는 임부 김모 씨의 경험을 각색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김 씨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김 씨의 개인적 특수성에 의한 어려움이 아니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우리 근로기준법 제74조 제7항은 ‘사용자는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임신한 지 12주가 되지 않은 근로자, 그리고 36주가 지난 근로자는 임금 삭감 없이 하루 6시간만 근무하는 게 가능하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을 피해 오전 10시까지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임신 13주부터 35주까지의 임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없다. 임신 12주 이내는 유산 위험이, 36주 이상은 조산 위험이 있어 배려가 필요하지만, 13주부터 35주까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기간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러다 보니 임신 13주부터 35주까지의 임부 상당수는 발 디딜 틈도 없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향해야 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등의 근로시간 조정이 가능해진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등의 근로시간 조정이 가능해진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김부겸, 임부 근로시간 조정 법안 대표발의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5월 16일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 같은 사각지대를 제거하기 위한 법안이다. 법안에서 김 의원은 “현행법에 따르면 임신 초기와 말기 여성 근로자는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임신 후 13주부터 35주까지의 여성 근로자는 ‘지옥철’, ‘지옥버스’라고 불리는 혼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법안은 사용자로 하여금 임신 후 13주부터 35주까지의 여성 근로자가 1일 소정 근로시간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업무의 시작과 종료 시각의 조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도록 함으로써 임산부인 여성 근로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근로기준법 제74조에 ‘사용자는 임신 후 13주부터 35주까지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의 소정 근로시간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업무의 시작 및 종료 시각의 조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된다.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 여성 근로자처럼 단축 근무를 할 수는 없지만,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유사하게 ‘한 시간 늦게 출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즉,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거나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등의 근로시간 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한 산모는 5월 17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임신 5~6개월이 지나면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는데, 정작 이때는 출퇴근할 때 법적인 배려가 없다”며 “차가 없어서 부푼 배를 안고 지옥철을 타야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법일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출산휴가 쓰는 것도 회사에 눈치가 보이는데, 공무원이 아닌 이상 저런 제도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임신한 근로자들이 혼잡한 출퇴근 시간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우리 공동체의 당연한 의무”라면서 “단순히 법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근로 현장에서 입법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지 모니터링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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