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딸아이와 함께 올랐던 한라산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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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딸아이와 함께 올랐던 한라산 백록담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0.01.27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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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언젠가 다시 찾을 추억의 장소를 만들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백록담으로 가는 마지막 가파른 계단 길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너른 벌판이 나타난다. 기나긴 숲길을 뚫고 나오면 그렇게 드디어 한라산의 진수와 만나는 것이다 ⓒ 최기영
백록담으로 가는 마지막 가파른 계단 길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너른 벌판이 나타난다. 기나긴 숲길을 뚫고 나오면 그렇게 드디어 한라산의 진수와 만나는 것이다 ⓒ 최기영

딸아이는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나는 아이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의 기운을 받으러 가자고 했다. 가장 높은 산이라는 말에 아이는 망설였지만, 한라산은 지리산이나 설악산보다 오르기가 훨씬 쉽다고 아이를 꼬드겼다. 결국 우리 부녀는 등산 장비를 꾸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에 도착하자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우리가 등산하게 될 다음 날에는 눈비까지 예보돼 있었다. 아이에게 백록담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의 풍경과 그 위에 한라산과 경계도 없이 떠다니는 구름, 그리고 정상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눈꽃을 보여주고 싶은데 어떡하지 하며 일기예보가 빗나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제주에 도착해서 가벼운 관광을 즐긴 후, 우리가 묵을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 등산 준비를 하며 제주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우리는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성판악으로 향했다. 

성판악에 도착하자 정말 많은 사람이 한라산에 오르기 위해 운집해 있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 바람은 어찌나 차갑고 매섭던지…. 딸아이는 심히 걱정되는 말투로 "아빠! 꼭 한라산 올라야 해? 제주도에 볼 것도 많은데…"라며 심란해 했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괜찮다며 나는 아이의 장비를 점검한 뒤 우리는 산행을 시작했다. 

진달래밭 대피소다. 성판악에서 이곳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그러나 이곳부터 백록담까지 진짜 산행이 시작된다 ⓒ 최기영
진달래밭 대피소다. 성판악에서 이곳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그러나 이곳부터 백록담까지 진짜 산행이 시작된다 ⓒ 최기영

한라산(漢拏山)은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을 만큼 높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있는 백록담(1947m)은 명실공히 한반도 남쪽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백록담으로 가는 길은 두 개 코스가 있다. 이날 우리처럼 한라산 동쪽에 있는 성판악에서 오르는 길이 있고, 한라산 북쪽 코스인 관음사에서 출발하는 길이 있다. 우리가 이날 올랐던 성판악 코스는 한라산 등산로 중에 가장 길지만,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완만하다. 관음사코스는 성판악 길보다는 짧지만, 한라산 등산 출발점 중 고도가 가장 낮아 그만큼 가파르고 고단하다. 하지만 한라산을 아는 사람들은 관음사코스를 들머리로 잡는다. 계곡이 깊고 산세가 좋아 한라산의 참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판악 길은 오르기에는 편하지만, 좌우로 울창한 숲이 시야를 막고 있어 볼만한 것이 없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면 사라오름을 지나고 진달래밭 대피소가 나온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가 9.6㎞인데 진달래밭 대피소까지가 7.3km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백록담을 향한 가파른 본격적인 산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백록담을 만나기 위한 마지막 가파른 계단 길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너른 벌판이 나타난다. 기나긴 숲길을 뚫고 나오면 그렇게 드디어 한라산의 진수와 만나는 것이다. 

백록담으로 가는 마지막 가파른 계단 길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너른 벌판이 나타난다. 기나긴 숲길을 뚫고 나오면 그렇게 드디어 한라산의 진수와 만나는 것이다 ⓒ 최기영
백록담으로 가는 마지막 가파른 계단 길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너른 벌판이 나타난다. 기나긴 숲길을 뚫고 나오면 그렇게 드디어 한라산의 진수와 만나는 것이다 ⓒ 최기영
대피소를 지나 백록담으로 가는 길에 딸아이의 모습. 딸아이의 산행 실력이 이제는 제법 수준급이다 ⓒ 최기영
대피소를 지나 백록담으로 가는 길에 딸아이의 모습. 딸아이의 산행 실력이 이제는 제법 수준급이다 ⓒ 최기영

능선이 이어지는 육지의 고봉준령(高峰峻嶺)과는 다르게 높고 큰 누각처럼 한라산은 그렇게 홀로 서 있다. 이날은 눈발이 날렸고 거센 칼바람으로 몸을 가누고 눈을 뜨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야리야리한 딸아이도 거센 바람이 힘겨운지 계단 난간을 붙잡고 바람을 등지며 내 뒤를 조심조심 따라 올라왔다. 그리고 드디어 백록담에 도착했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일기 예보는 정확했다. 둥둥 떠다니는 구름, 그 아래 보이는 제주도 그리고 바다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아래 백록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운무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딸아이는 그리도 고생스럽게 올라왔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빠가 날을 잘못 잡았다며 아쉬움에 나를 타박했다. 티격태격했지만 우리 부녀는 백록담 표지석을 뒤로하고 멋진 인증사진을 찍고서 거친 바람이 불었던 백록담을 떠나 관음사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백록담 표지석의 모습이다. 바로 저 아래에 있는 백록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날 날씨가 좋지 못했다 ⓒ 최기영
백록담 표지석의 모습이다. 바로 저 아래에 있는 백록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날 날씨가 좋지 못했다 ⓒ 최기영

관음사로 내려오며 숲을 만나자 그 거센 바람은 잦아들었다.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며 한라산의 멋진 겨울 풍경을 그제야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삼각봉 대피소와 개미등, 탐라계곡 대피소까지 이어지는 멋진 그러나 몹시도 위험한 산길을 내려오니 드디어 편안한 길을 만나며 험난했던 한라산 산행이 마무리됐다. 

다음 날, 제주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는 화창했다. 전날 그리도 짙은 구름에 가려있던 한라산의 웅장한 모습이 선명한 것이 오히려 속상했다. 딸아이와 나는 숙소를 일찌감치 나서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있는 바닷가에 내려 산책도 하고 차도 마시며 여유롭게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겨울 산의 날씨는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육지에서 뚝 떨어진 섬에 홀로 높게 서 있는 한라산은 더욱더 그렇다. 차디찬 겨울의 바닷바람이 불어 닥쳤고 눈발까지 날리며 한라산의 냉랭함은 그칠 줄 몰랐다. 그곳을 처음 올랐던 딸아이를 한라산은 그렇게 맞이했다. 하지만 산을 타다 보면 날씨라는 게 우리 바람대로 늘 좋지만은 않다. 비를 쫄딱 맞기도 하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산길을 덮어 길을 잃기도 한다. 그래도 산을 찾는다. 우리가 모두 굴곡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딸아이는 다음 날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다리에 근육통을 느끼며 나를 원망했다. 어제의 기나긴 산행이 고생스러웠는지 날씨 좋을 때 다시 한번 오자는 나의 말에 "싫어! 다시는 한라산에 오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날처럼 냉랭했던 그곳도 화창한 햇살이 있던 그곳도 모두가 똑같은 한라산임을 아이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각각의 삶의 모양이 어떻든 다 똑같은 인생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딸아이는 아빠와 함께했던 한라산을 추억하며 이곳을 또다시 찾으리라는 것도 난 잘 알고 있었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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